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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이 피의자나 피내사자 또는 참고인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거부하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을 줬다면 사실상의 강제연행으로 '불법체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찰관 4명은 충북 증평군 P(46, 여)씨가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제보를 받고 잠복근무를 하다가 2008년 1월 손님과 여종업원이 주점에서 나와 인근 여관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성매매 현장을 덮치기 위해 급습했다.

그런데 손님과 여종업원은 침대에 옷을 벗고 누워 있었을 뿐 성행위를 하고 있지 않았고, 성관계를 가졌음을 증명할 수 있는 화장지나 콘돔 등도 발견하지 못해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성매매를 하려고 한 것이 범죄가 되거나 혹은 유흥업소의 영업자를 처벌하기 위해 두 사람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봐 수사관서로의 동행을 요구했다. 당시 경찰은 "동행을 거부할 수는 있으나,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검찰은 유흥주점 영업실장인 L(34, 여)씨에 대해 여종업원이 영업장인 유흥주점을 벗어나 시간에 따라 돈을 받는 이른바 '티켓 영업'을 나가도록 한 뒤 대가를 받은 혐의로, 업주인 P씨는 이 같은 위반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감독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혐의(식품위생법위반)로 기소했다.

그러자 P씨와 L씨는 "당시 여종업원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손님과 외출을 하도록 한 사실이 없고, 특히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여종업원과 손님의 자술서 및 경찰 진술조서는 임의수사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수사 과정에서 회득한 증거이므로,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청주지법 형사4단독 나진이 판사는 2009년 1월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흥주점 업주 P씨와 영업실장 L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나 판사는 "여종업원은 법정에서 '동행을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해 경찰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 보면, 비록 경찰관이 두 사람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고지하고 물리력을 행사한 바도 없으며 이들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더라도, 경찰이 이들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적법요건이 갖추지 않은 채 경찰의 동행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해진 사실상의 강제연행"이라며 "따라서 적법하지 않은 임의동행을 통해 수집한 증거들은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검사는 "여종업원과 손임에 대한 임의동행은 적법했고, 설령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P씨와 L씨에 대한 사건에서 이들은 참고인 신분이므로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또한 여종업원과 손님의 자술서 등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더라도 정황증거 내지 간접증거에 의해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수 있음에도 무죄 판결한 것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청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연하 부장판사)는 2009년 6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유흥주점 업주와 영업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경찰이 여종업원과 손님을 성매매 피의자로 형사입건하지 않고 그들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피고인들을 식품위생법위반죄로 형사입건함으로써 여종업원과 손님이 이 사건에서 참고인 내지 증인이 됐더라도, 경찰이 두 사람의 진술을 확보할 당시에는 성매매 혐의의 피의자 내지 피내사자로서 조사한 것이서 위 진술은 사실상 피의자 내지 피내사자에 대한 불법체포에 이어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부정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참고인 신분이 됐더라도 경찰이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 위법한 강제연행이었으므로 진술증거 역시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7일 '티켓 영업'을 한 혐의(식품위생법위반)로 기소된 유흥업소 업주 P(46, 여)씨와 영업실장 L(34, 여)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이 P씨의 유흥주점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제보를 받고 잠복근무를 하던 중 여종업원과 손님이 유흥주점에서 나와 인근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여관을 덮쳐 성매매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했으나, 두 사람이 옷을 벗고 있을 뿐 성행위를 하고 있지 않았고 성관계를 가졌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화장지나 콘돔 등)도 발견되지 않자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하고 수사관서에 동행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동행을 거부할 수도 있으나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여관방 침대에 옷을 벗은 채로 누워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관 4명으로부터 성매매 여부를 추궁당한 후에 임의동행을 요구받았고, '동행을 거부하더라도 강제로 연행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으므로, 그런 상황에서 동행을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비록 경찰관이 두 사람을 동행할 당시에 물리력을 행사한 바 없고, 이들이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더라도, 경찰관이 이들을 수사관서까지 동행한 것은 적법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경찰의 동행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심리적 압박 아래 행해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체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위와 같은 불법체포에 의한 유치 중에 손님과 여종업원이 작성한 자술서와 경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어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임의동행, #강제연행, #불법체포, #증거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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