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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50) 서울시장은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선거 운동기간 내내 오 시장의 여유로운 낙승을 점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명숙 후보와 종이 한 장 차이의 초박빙 승부였다. 사상 첫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은 거머쥐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당장 그 앞에는 야당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지난해 이맘때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대화 또 대화, 인내심이 여소야대 돌파 해법")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나갈 복안을 물었을 때, 그는 어느 때보다도 '소통'을 강조하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압도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무슨 지름길이 있겠나? 꾸준하고 계속된 대화, 또 대화, 그리고 인내심이 해법이지,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6개월간 칼 갈고 몸 만든 '검투사 오세훈'

 

그랬다. 소통과 대화, 그리고 인내심 말고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던 그였다. 지난 4년간 시정(市政)을 잘못해서라기보다는 MB(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더 크게 작용한 탓 아니냐는 질문에도 "내 탓이 더 크겠죠"라며 겸양을 앞세웠다. 그랬던 그가 그때와는 '180도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면 남자의 변신은? 뭔가 이유가 있을 터.

 

지난 20일 서울시의회 정례회에 출석한 오세훈은 예전의 '부도남'(부드러운 도시 남자)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 12월 시의회가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에 반발해 출석을 거부한 지 6개월여 만의 '귀환'이었다.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제안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는 마치 지난 반년간 숨어서 칼을 갈면서 '몸만들기'를 하고 나온 검투사(劍鬪士) 같았다.  

 

'비장의 무기'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그는 최근 간부회의에서 "(주민투표에서) 지면 각자도생(各自圖生) 해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필즉사 필즉생 모드'다. 문제는 이 싸움이 그리 승산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투표 운동기간이 7~8월 휴가철과 겹치는 것도 불리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원군이 되어도 시원찮은 친정(한나라당)에서조차 엉거주춤하거나 반대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는 턱 하니 중앙당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이미 등록금 부담완화 카드를 내민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색할 리 만무하다. 당대표에 출마한 그의 오랜 동지 남경필 의원은 "주민투표로 가면 또 갈등이 생긴다"며 "정치권이 나서 (철회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당에서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친박계를 대표해 당대표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은 "(대표가 되면)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은 정책목표가 옳기 때문에 과감하게 받겠다"면서 아예 전면 무상보육까지 주장한다.

 

한나라당 전대에서 어떤 지도부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지금 당내에서 오세훈은 '미운오리 새끼' 아니면 '닭갈비'(계륵) 신세다. 4·27 재보궐선거 이후 한나라당에는 '보편적 복지'에 전향적인 입장을 가진 계파가 늘고 있다.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질문 프레임에 따라서 상반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주민투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패배 이후 '좌클릭'으로 가는 분위기여서 오 시장이 포지션 상으로 불리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세훈의 대권 놀음 꽃놀이패'

 

그러나 오 시장은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서울시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청구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무상급식 내가 막겠습니다'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각자도생'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려고 '오기'를 부리는 데는 필경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터, 이른바 '오세훈의 대권 놀음 꽃놀이패'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주민투표에서 이기면 '박근혜 대항마'로서 대선가도에 날개를 다는 격이고, 지더라도 대권 도전을 위한 시장 사퇴의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거는 이렇다.

 

우선, 오세훈 시장에게는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 타임이다. 이를 테면 2010년 지방선거 직후의 정치인 영향력·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록 초박빙 승부였지만 사상 첫 재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오세훈 시장은,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지사와 함께 상위권(1~3위)에 랭크되었다. 그러나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박근혜 독주'가 지속되고 손학규 등 야권후보들이 부상하면서 두 사람은 중위권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갈수록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위기감과 초조함이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지게 했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이름과 달리 '친이'계와 '친박'계가 동거하는 '한 지붕 두 가족'이다. 그런데 친이계에 MB의 대(代)를 이을 '박근혜 대항마'가 없는 상황이다. 겉으로야 늘 웃고 있지만, 친이계는 박근혜 집권시 '각자도생'을 꾀할 만큼 척진 관계다. 친이계 주변에서 끊임없이 김문수·오세훈을 친이계 주자로 내세우자는 '대선 차출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이명박의 호각지세였던 지난 대선 경선과 달리, 이번엔 '박근혜 독주'가 요지부동인 상황이어서 '대선 차출론'은 나름 명분도 있다. 야권에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외에도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정길 전 장관 등이 자천타천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데, 한나라당에 '박근혜 대항마'가 없다는 것은 당내 경선의 흥행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의 본선 경쟁력에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주민투표, '짜고 치는 고스톱'일까 '이심오심'(李心吳心)일까

 

그런데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보기에 박근혜는 대세론에 갇혀 몸을 사린다. 이들은 진보세력과 전선(戰線)을 만들 수 있는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같은 각종 복지현안들에 대해 박근혜가 '침묵'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크다. 그의 주민투표 승부수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이심오심'(李心吳心)인지 알 수 없지만, '박근혜 독주'가 그에게 절호의 기회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당장 '친박'계 좌장에서 친이로 변신한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 의원은 22일 중진의원 회의에서 "국가 운명을 가를 반(反)포퓰리즘의 '낙동강 전선'이 8월 말로 예정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인데 이 문제에 당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심지어 "당이 비굴하고 기회주의적인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면서 "재정 건전성에 타격을 가하는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막지 못하면 보수우파라는 한나라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 전선'에 올인 하자는 취지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박근혜를 겨냥한 것으로 비친다. 그런 점에서 '낙동강 전선'으로 비유된 주민투표는 '박근혜 독주'를 견제하면서 오세훈을 위기에서 구하려는 양수겸장이다. '낙동강 전선'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이면서, 실은 퇴로가 차단당한 오세훈이 처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이명박에게 '청계천'이 대권의 디딤돌이었다면, 오세훈 시장은 또 다른 전시성 토목사업인 '한강 르네상스'를 대권의 징검다리로 삼으려 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그의 '야심작'은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고 온갖 특혜와 비리는 충만한 '비리 르네상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느라 서울시 살림은 지난해에도 3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대권놀음을 위한 전시성 사업을 고집하고 있다. 주민투표도 마찬가지다.

 

오세훈은 박근혜와 김문수에 견주어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 스스로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권력 의지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난 아직 젊다. 그래서 느긋하다. 조급하게 권력의지를 불태운들 무슨 일이 되겠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된 친환경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데 정치 생명을 거는 것을 보면, 오세훈이 대권욕에 눈이 멀어 180도 변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낙동강 전선'에서 헤매다가 '낙동강 오리알' 되기 십상?

 

무명의 변호사 오세훈이 대중에게 부드럽고 친숙한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90년대 MBC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하면서부터다. 그는 방송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과 함께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서 시민사회에 '클린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 강남구에 출마해 정계 입문했다. 시민환경단체의 기대에 걸맞게 의정활동도 모범적이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

 

그랬던 그가 180억 원이 넘는 주민투표 예산을 들여 친환경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데 온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그와 미래연대 대표직을 바톤 터치했던 남경필 의원마저 "아이들 밥 먹이자는 데 웬 '낙동강 전투'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전투를 하려면 수도권과 중도를 장악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해야지"라고 '철없는 5세 훈이'에게 일침을 놓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미래연대'의 대표가 '미운오리 새끼' 신세가 된 것이다.

 

사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이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이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된 뒤, 일선 학교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올 1학기에 보면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대구를 제외한 15개 광역단체에서 모두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기초단체는 전국 229개 곳의 80%인 183곳이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낙동강 전선'은 이미 무상급식 지도에서 하나의 고립된 섬이다. 오세훈은 지금 서울시를 대구시에 이어 또 하나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보수세력을 등에 업고 '박근혜 대항마'로 나선 오세훈이 '낙동강 전선'에서 헤매다가 '낙동강 오리알'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태그:#오세훈, #한나라당 전대, #무상급식, #주민투표, #박근혜 대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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