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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는 백혈병 등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는 백혈병 등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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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결 17번째 이야기다.
①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업무상 재해 일부 인정(6. 23. 서울행정법원)
② '4대강 반대=특정후보 낙선 운동' 아닌 까닭(6. 24. 대법원)
③ 부동산 계약 체결됐을 때만 중개수수료(6. 24. 서울북부지법)

[판결 1]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 업무상 재해" 일부 인정

[사례 1] 황유미는 만 18세에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고3 때인 2003년 가을, 유미는 '일류기업' 삼성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첨단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하지만 '삼성반도체'가 가져다준 긍지과 보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간근무, 초과근무에 유미는 지쳐갔고 이름도 모르는 각종 유해 물질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몸은 병들어갔다. 유미는 입사한 지 20개월 만에 급성골수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그로부터 또 20여 개월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22세.

아버지는 '일류기업' 삼성을 찾아가 딸의 억울함 죽음을 책임지라며 따졌지만 삼성은 묵묵부답이었다. 일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겠다던 근로복지공단도 유미의 죽음과 업무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아버지는 유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2010년 1월 법정소송을 시작한다.

근로복지공단은 황유미씨를 포함한 삼성반도체 노동자 5명의 발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근거로 삼은 것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이다. 역학조사평가위원 절대 다수가 업무관련성이 없다는 의견을 내렸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업무와 재해(발병 또는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때만 인정해왔다. 또한 '상당인과관계'는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례다. 이런 기준에 따르자면 일반인이 업무상재해를 인정받기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판례도 유지해오고 있다.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 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근무기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선 어떻게 되었을까. 법원은 "유미씨의 백혈병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업장내에 환기시스템 등이 가동됐는데도 화학물질이 검출된 점 ▲유미씨가 수동설비에서 공정 중 세척작업을 한 관계로 유해물질에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점 ▲유미씨가 일한 라인이 가장 노후된 점 ▲동일한 근무환경에서 장시간, 지속적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23일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부지급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고 황유미씨와 같은 이유로 세상을 떠난 고 이숙영씨(2006년 사망)가 상재해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원고 5명 중 나머지 3명(1명은 사망, 2명은 투병 중)은 패소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3명에 대해서는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거나 ▲작업 공정에서 피해가 지속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퇴사한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 발병한 점 등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양쪽이 모두 항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급심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결론과 관계없이 이번 판결이 대기업에게 노동자들을 위한 근로환경 개선과 안전장치 확보를 위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원래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이례적으로 근로복지공단 쪽의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적극 관여해왔다. 판결이 미칠 파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소외계층을 위해 사회공헌 성금 6억 원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굳이 깎아내릴 뜻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전에 삼성이 자사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 근로환경부터 챙겼으면 좋겠다. 그게 일류기업 아닐까. 

4대강 사업 공사가 한창인 경북 상주시 낙동강 33공구 '상주보' 하류 좌측 제방에서 26일 오전 수백미터가 무너져 내린 것이 확인된 가운데, 현장 조사를 나온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붕괴되 제방을 지나고 있다.
 4대강 사업 공사가 한창인 경북 상주시 낙동강 33공구 '상주보' 하류 좌측 제방에서 26일 오전 수백미터가 무너져 내린 것이 확인된 가운데, 현장 조사를 나온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붕괴되 제방을 지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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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2] 4대강 반대, '선거쟁점'이면 선거운동?

[사례 2] 환경단체 활동가인 A씨와 B씨는 작년 지방선거를 앞둔 4월~5월에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안양의 한 성당 앞에서 4대강 공사 전후 사진 등 광고물과 현수막을 게시했다. 행인들에겐 유인물을 나눠주고 반대서명을 받기도 했다.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이라며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두 사람은 피고인석에 서게 됐다. 

검찰의 주장은 이랬다.

"두 사람의 활동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 찬성하는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4대강이 선거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것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를 반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선거운동이다."

피고인이 된 두 사람의 주장은 달랐다.

"정부는 2009년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후 사업을 급속도로 진행해왔다. 우리는 4대강 사업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으로 반대해왔다. 계속 해오던 일을 선거운동 기간이라 하여 중단할 이유도 없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180일전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는 문서·인쇄물 등을 배부할 수 없다. 쟁점은 '4대강 반대=특정후보 반대=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1심 법원(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이들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후보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해도 간접적, 2차적인 것에 불과하고 ▲통상 해 왔던 활동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선거일 전 180일 동안 공사를 강행하면 되돌리기 어려워 실질적으로 정책비판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는 점 등을 꼽았다.

법원은 이어 "'선거쟁점'이라는 개념은 누가 결정하는지, 어느 정도면 선거쟁점이 되는지, 그 범위가 전국인지 지역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정책을 찬성, 비판하는 행위들에 의해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가 영향을 받거나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그것을 특정 후보자 지지, 반대와 동일시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은, 환경운동 활동가들이 일상적인 업무 범위 내에서 직무상, 업무상 행한 활동으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도 지난 2월 "지방선거 1년 전부터 반대운동을 해온 이들의 활동이 반드시 선거를 겨냥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의 상고로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대법원도 24일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단체의 활동이 선거운동을 위한 목적이 인정된다면 마땅히 규제를 받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선거 이전부터 반대한 특정 정책이 선거쟁점에 해당되더라도 전부 규제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부 언론은 "4대강 반대활동은 무죄"라는 취지로 판결을 소개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약간 차이가 있다. 이번 판결을 정리하면 이렇다.

'시민단체의 활동이 선거 국면에서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를 가져왔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판결 3] 복비 안주려고 몰래 부동산 계약하다가...

[사례 3] C씨는 시가 30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내놓았다. 며칠만에 여러 군데서 높은 값에 팔아주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중개사 D씨는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는 상가건물을 눈여겨보던 E씨에게 건물의 현황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거래를 성사하려고 노력했다. D씨는 C씨와 E씨 사이에서 구체적인 액수까지 조정해가며 성사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갑자기 E씨가 포기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계약은 물건너가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후 E씨가 상가의 주인이 됐다. 알고 보니 E씨는 건물주인 C씨와 직접 매매가격을 흥정한 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D씨는 "사실상 거래를 성사시킨 사람은 나"라며 E씨를 상대로 중개수수료 청구소송을 냈다.

원래 공인중개사는 계약체결까지 성사되어야 수수료를 받게 된다. 그런데 D씨를 보면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다. 법원의 기준은 이렇다.  

"부동산중개는 원칙적으로 계약체결까지 완료되어야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중개업자가 계약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도 중개행위가 그의 책임 없는 사유로 중단되어 최종적인 계약서 작성 등에 관여하지 못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중개업자는 의뢰인에 대하여 이미 이루어진 중개행위의 정도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다."

재판은 어떻게 되었을까. 1심은 원고 패소였다. 1심(서울북부지법)은 C씨가 직접 매매를 의뢰한 사실이 없었는데도 D씨가 자진하여 매수인을 구하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계약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서울북부지법 항소부)은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E씨가 중개업자 없이 C씨와 매매계약을 직접 체결하였으나 그전에 D씨가 두 사람 사이에서 매매를 알선하고 대금을 협의하는 등 중개행위를 하였다"며 "거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E씨가 갑자기 D씨를 통한 매수를 거부하여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계약 체결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E씨는 D씨에게 중개수수료로 1500만 원(중개수수료 상한선의 50% 정도)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태그:#삼성, #백혈병, #업무상재해, #부동산,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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