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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 '애교', '수줍음', '여림' 등은 걸그룹의 주된 이미지 전략이다. '오빠'로 대표되는 수동적 여성성의 회귀는 무기력해진 남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사진은 소녀시대의 '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순진', '애교', '수줍음', '여림' 등은 걸그룹의 주된 이미지 전략이다. '오빠'로 대표되는 수동적 여성성의 회귀는 무기력해진 남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사진은 소녀시대의 '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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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 성평등 지수가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2010년 세계성평등도 조사에서 한국은 134개국 가운데 104위를 했다. 20대 여성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가 넘고, 50대 여성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 차별과 불행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별안간 '오빠' 바람이라니. '오빠 나 좀 봐', '너무 부끄러워', '몰라몰라', '처음이야', '떨려와요', '동생으로만 생각하진 말아', '난 울지도 몰라', '나는 바본가 봐요', '난 다 믿었어'. 아니,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가정에서는 폭력, 사회에서는 차별을 재생산해 온 오빠를 믿는다니. 이 척박한 야만의 땅에서 한국 여성들은 차별과 고정관념에 맞서 끈질기게 싸워오지 않았던가. 내가 보기에, 이 난데없는 '오빠 바람'은 명백한 퇴행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오빠가 이렇게 믿음직스런 존재가 됐을까? 한국여성의전화 2009년 조사에 따르면, 데이트를 해 본 젊은 여학생 중 78%가 정서적 폭력을 경험한다. 결혼 후에는 절반이 남편, 즉 '옛 오빠'가 휘두르는 폭력과 학대를 겪는다는 게 2011년 여성가족부 '가정폭력실태조사' 결과다(한국 남성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은 영국이나 일본의 다섯 배가 넘는다). 직장에서도 남성에 비해 38%나 적은 보수를 받아, OECD 평균 임금격차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언니'들이 이런 차별을 지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복고가 유행하더니, 젊은 여성세대가 전통적인 '의존형'으로 회귀하기라도 한 것일까?

착각하지 말자. '오빠' 바람이 보여주는 건 아저씨들의 욕망일 뿐이다. 어린 소녀들을 고용해 '오빠' 노래를 부르게 하는 기획사 대표들 대다수가 남자고, 이 노래를 쓴 사람들 역시 예외 없이 남자다. 원더걸스의 대표곡 '텔미'와 '노바디'는 박진영이 곡과 가사를 썼고, 소녀시대의 히트곡 '소원을 말해봐,' '오!', '지(GEE)', '훗'의 가사를 쓴 것도 유영진, 김정배, 김영후, 안명원/김영득, 이현규 등 모두 남자다. 

물론 남자들이 여자 가수의 곡을 쓰는 경우는 흔하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걸그룹이 외치는 '오빠'가 '동생'들의 욕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중년 남자들이 쓴 남성적 욕망을 립싱크하고 있을 뿐이다. 하긴, 오빠만큼 오빠의 욕망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겠는가. 머리만한 리본을 달고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얼굴은 아이고 몸은 어른인 반인반수 아니, '애교 소녀'. 남자들의 욕망은 이렇게 단순하다. 

걸그룹 기획사는 어린 멤버들의 신체를 거리낌 없이 사물화한다. '지(GEE)' 뮤직비디오에서 소녀시대 멤버들은 쇼윈도의 마네킹으로 등장한다. 남자 출연자는 이 '인형들'을 보고, 만지고, 원하는 방식으로 재배치한다.
 걸그룹 기획사는 어린 멤버들의 신체를 거리낌 없이 사물화한다. '지(GEE)' 뮤직비디오에서 소녀시대 멤버들은 쇼윈도의 마네킹으로 등장한다. 남자 출연자는 이 '인형들'을 보고, 만지고, 원하는 방식으로 재배치한다.
ⓒ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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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남자의 욕망에 기초한 '오빠 산업'

'오빠' 노래가 최근 처음 등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여자 가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오빠'를 불러대는 모습은 과거에도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대체 어떤 연유로 '오빠 강풍'이 불기 시작했을까?

물론 '오빠' 소리를 듣고 싶은 남자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걸그룹에 열광하는 남자팬들의 다수가 연애조차 하기 힘든 비정규직 세대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걸그룹에 환호하는 이유는 소위 '초식남'이 만화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들에게 걸그룹은 '망가걸'의 실사판인 셈이다.

한국 걸그룹이 외환위기 이후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한국 경제가 장기침체로 들어선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원더걸스나 소녀시대는 1990년대 후반의 에스이에스(S.E.S.)나 핑클 등의 '1세대 걸그룹'과 구별되는 특성을 보인다. 훨씬 어리고, 노출 정도가 크고, 몰개성적이며, '리드보컬' 개념이 매우 약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며, 대규모 오디션과 '연습생' 제도에 의존한다.

한국 걸그룹은 '망가걸'의 실사판 이미지에 가깝다. 리본, 분홍, 천진한 표정이 드러내는 유아적 여성 이미지와 검은 눈썹에 금발을 한 인물의 탈국적성 등은 일본 만화캐릭터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이다.
 한국 걸그룹은 '망가걸'의 실사판 이미지에 가깝다. 리본, 분홍, 천진한 표정이 드러내는 유아적 여성 이미지와 검은 눈썹에 금발을 한 인물의 탈국적성 등은 일본 만화캐릭터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이다.
ⓒ Kodansah/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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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세대착취'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우선 '어린 나이'와 '노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롤리타 콤플렉스'라 불리는 소아성애는 약화된 남성성과 관련이 있다. 경제적 능력이 남성 권력의 토대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력의 상실은 곧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하게 된다.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들어서며 어린 '2세대 걸그룹'이 등장했듯, 일본 역시 1980년대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로리콘(ロリコン) 캐릭터'가 급부상했다. 한국 걸그룹과 일본의 '로리콘 캐릭터'의 속성은 동일하다. '어린 얼굴에 성인의 몸을 가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다. 약화된 남성들에게 성숙하고 당당한 여성은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게으름뱅이 정신분석>의 저자 기시다 슈도 비슷한 맥락에서 성범죄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성범죄자는 남성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정상적인 교류상황에서는 성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고자' 혹은 '불능남'이기 때문에, 여성을 위협해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거나 아예 저항 능력이 없는 연소자나 장애인을 택해 범죄를 벌인다는 것이다. 

스티븐 엡스타인과 제임스 턴블이 잘 정리했듯, 한국 걸그룹은 '순진', '애교', '수줍음', '수동성', '도발' 등의 특성을 갖는다. 얼핏 보면 '순진', '수줍음,' '수동성'은 '(성적) 도발'과 대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도발'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무기력한 남성을 도발하기 위해서는 순진하고, 여리고, 수동적인 여성 이미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등장한 '꽃미남', '화장하는 남자', '초식남'은 일본이 앞서 경험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 걸그룹이 해외에서 얻는 인기는 경기침체로 인한 '롤리타 콤플렉스' 및 일본 '로리콘 캐릭터'의 보편화와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일본 '로리콘' 캐릭터. 1980년대 일본 경제침체가 심화되면서 '위협적이지 않은' 어린 소녀를 성적 대상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무기력한 남성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한국의 걸그룹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로리콘' 캐릭터. 1980년대 일본 경제침체가 심화되면서 '위협적이지 않은' 어린 소녀를 성적 대상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무기력한 남성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한국의 걸그룹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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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세대'의 이중착취

아이돌 바람을 일으킨 기획사 대표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연예계에서 활동하며 발을 넓힌, 중장년층의 남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위기 이전에 사회에 진출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기성세대면서도, '비정규직 세대'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아이돌 기획자들은 무력한 남성들의 욕망을 이해할 만큼 젊고 영악한 '동료 남자'들인 동시에, 이 수요를 가공해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을 만한 돈과 연줄을 지닌 사람들이다. 반면에 대다수 젊은 세대가 지닌 건 욕망과 (아르바이트로 모았을) '미니앨범'을 겨우 살 주머니 푼돈뿐이다.

한국의 현재 청소년들은 꿈을 꿀 수 없는 불우한 세대다. 유치원 시절부터 학교, 학원, 과외로 이어지는 가혹한 경쟁체제 속에서 고통 받지만, 이들에게 준비된 미래는 없다. 소수의 '좋은' 대학을 갈 경쟁력은 돈으로 길러지고, 운 좋게 입학 기회를 얻는다 해도 돈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도 없고, 살인적인 '스펙' 경쟁도 불가능하다. 졸업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별, 실업, 비정규직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현실이다.

아이돌 그룹은 이 가엾은 세대에게 두 가지 의미의 '위안'을 준다. 하나는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오락이고, 다른 하나는 '나도 아이돌이 될 수 있다'는 꿈이다. 하지만 이 '위안'은 기획사가 비정규직 세대를 피라미드형 착취구조로 이끄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아이돌 음악을 사는 소비자인 동시에, 오디션에 참여해 '아이돌 예비군'인 연습생 자리를 채워주는 '인력풀'이다.

이들은 기획사에 수익과 인력을 댈 뿐 아니라, 열광과 환호로 아이돌에게 매력적인 지위도 부여한다. 결국 '아이돌의 꿈'을 구성하는 부, 인기, 명성은 모두 비정규직 세대 자신들이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오직 기획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걸그룹 기획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의도된 노출에 적합하고 손쉽게 대체될 수 있는 획일화된 신체다.
 걸그룹 기획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의도된 노출에 적합하고 손쉽게 대체될 수 있는 획일화된 신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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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꿈의 비정규직?

오디션은 누구에게나 열린 평등한 기회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다. 기획된 노출 용도에 적합한, '규격'에 맞는 몸을 가져야 한다. 기획사는 창의적 재능을 갖춘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자질은 기획사가 정한 동작을 완벽히,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길들이기 쉬운' 신체다. 

아이돌 지망생들은 1000대 1 가까운 경쟁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해야 겨우 연습생 자격을 얻는다. 물론 다수가 교습소에서 춤과 동작을 배우고, 다이어트와 성형을 거치는 등 '선행 훈련'을 쌓는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연습생 가운데 2~3%만이 그룹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는다.

연습생들이 고된 훈련과 불투명한 미래를 견디는 이유는 하나다. '내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희망'은 대단히 잔인한 훈육 체계다. 연습생들에게 보상이 불확실한 노동을 지속하게 하고, 데뷔한 그룹에게는 '너를 대신할 사람은 널렸다'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룹을 꾸려 데뷔를 준비하는 것도 마음과 취향이 맞는 연습생끼리 어울려 이루는 것이 아니다. 소속사가 기획하는 그림에 따라 멤버가 추려지고, 그룹 안에서 맡아야 할 역할에 따라 지시된 이미지대로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밉보이거나 엇나가면 이들을 자산으로 관리하는 기획사는 본보기로 멤버 가운데 하나를 탈락시킨다. 이런 으름장은 신인 연예인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안, '원더걸스 선미 탈퇴로 비춰본 아이돌에 대한 허상', <미디어오늘> 2010. 1. 26)

과거의 아이돌 그룹은 각 구성원이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고, 서로 구분되는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해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받곤 했다. 한 멤버의 탈퇴로 그룹이 해체되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나타난 아이돌 그룹은 비슷한 키에 비슷한 몸매를 갖고 있고, 그룹 내의 역할도 차별성을 갖지 않는다. 이제 구성원은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규격부품'이 된 것이다.

원더걸스의 경우, 현아와 선미가 탈퇴한 자리는 곧 다른 멤버로 채워졌고 아무 문제 없이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 걸스데이 기획사 역시 지선과 지인의 탈퇴 발표 후 나흘 만에 새 멤버를 영입했다. 남성 아이돌 그룹 유키스 또한 기범과 알렉산더가 남긴 빈자리를 신인으로 보충해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아이돌 시스템은 노동을 손쉽게 대체하기 위한 '연예계의 노동유연화' 또는 '비정규직화'인 셈이다. 

아이돌 그룹의 특성은 몰개성과 획일화다. 표준화된 이미지와 역할분산은 멤버들을 '부품화'함으로써 언제라도 대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원더걸스의 경우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이 교체되었지만, 큰 타격 없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특성은 몰개성과 획일화다. 표준화된 이미지와 역할분산은 멤버들을 '부품화'함으로써 언제라도 대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원더걸스의 경우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이 교체되었지만, 큰 타격 없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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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과 환호 속의 착취

아이돌 시스템을 '착취'로 보는 데 모든 이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되고 불확실한 과정이라지만,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 아니냐고.

그렇다면 가혹한 입시제도도, 살인적 등록금도, 젊은이의 미래를 절망스럽게 만드는 비정규직도 별 문제가 아니다. 누가 대학 가라고, 누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라고 강요하던가. 선택이 제한된 사회에서 '자발적 선택'이란 얼마나 허망한 말인가.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 아이돌 지망생의 말을 들어보자. 이 고등학생은 어렵사리 쌍꺼풀 수술을 한 후, 이제 코 성형을 목표로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힘든 일을 감내해가며 연예인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뭐냐고, 이른바 '불공정 계약서'를 쓰고 젊음과 재능을 착취당하는 아이돌 얘기 못 들어봤느냐고 겁주는 소리를 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기자 언니, 솔직히 말해보세요. 나처럼 돈 없고 '빽' 없고 성적도 그저 그런 애가 그럭저럭 대학 가면 그다음엔 뭐 있어요? 지금은 좀 힘들어도, 기획사에만 들어가면 나한테는 진짜 '기회'가 오는 거잖아요." (<한겨레신문> "빽 없는 연예지망생 '성공시대' 저무나" 2011. 6. 17)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연예인(지망생 포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보면, 미성년자 연예인들의 '자발적 선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응답자의 36%가 하루 8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고, 41%가 야간과 휴일에도 일하고 있었다. 미성년자인 이들 중 10%가 신체 노출을 경험했다고 말했고, 그중 60%가 강요에 의해서라고 답했다.

앞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더 읽어 보면 이런 기회조차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돈 없고 빽 없는"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듯했던 연예기획사들이 이제 돈과 배경을 갖춘 지망생을 선호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헝그리 정신 덕분에 빨리 성장하긴 하는데, 성공한 뒤에는 집안의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기 때문에 계약서 관련 소송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논리라고 한다. '반면 있는 집 아이들은 돈 문제에 민감하지 않고 '강남 키드', '엄친아' 이미지에 힘입어 광고계에서도 각광받는다'고 했다."

일부 아이돌 지망생이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돌 시스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체계는 피라미드 하층부 다수의 희생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교육이 소수에게 혜택을 준다고 해서 절대 다수를 '들러리'로 희생시키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듯 말이다. 

당신이 아이돌의 팬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들이 좇는 꿈이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그 꿈이 행복한 결실을 맺도록 보살필 일이다. 만일 그 꿈이 철부지들의 몽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입시와 오디션을 거치지 않아도 기쁘게 살 길을 마련해 주자. 그게 진정 '오빠'와 '누나'가 할 일이다.

아이돌 기획사는 창의적 재능을 갖춘 지망생을 원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후보는 정해 준 동작을 그대로 익혀 따르는 기계적 완벽성이다. 사진은 소녀시대의 '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아이돌 기획사는 창의적 재능을 갖춘 지망생을 원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후보는 정해 준 동작을 그대로 익혀 따르는 기계적 완벽성이다. 사진은 소녀시대의 '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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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걸그룹, #오빠, #경기침체, #아이돌, #롤리타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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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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