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범죄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의 부모가 가해자와 합의했더라도, 합의과정에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피해아동의 의사가 없었다면, 부모와 가해자가 작성한 합의서만으로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로 고소가 취소됐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45)씨는 지난해 7월 25일 새벽 인천 계양구의 한 편의점 앞에서 배회하던 B(11)양을 성폭행하기로 마음먹고, B양의 손목을 잡고 인근 다세대 주택 주차장으로 데리고 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방법으로 성추행했다. A씨는 당시 2회에 걸쳐 강간을 시도했으나 B양이 어리고 반항해 미수에 그쳤다.

B양은 사건 발생 2주 뒤 친언니와 함께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 등을 지원하는 인천 원스톱지원센터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경찰관과의 영상녹화에서 "가해자 A씨가 잡히면 처벌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A씨는 B양의 법정대리인인 아버지 C씨에게 100만 원을 주고 합의하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처벌은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냈다.

이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약취·유인 등), 성폭력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13세미만 미성년자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은 인정했지만, "B양이 스스로 자신을 따라왔을 뿐 B양을 간음하기 위해 약취한 사실은 없다"며 약취 혐의는 부인했다.

하지만 1심인 인천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1월 검찰의 공사사실유죄로 인정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개인신상정보를 10년간 공개할 것과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나이가 어려 사리분별력이 떨어짐을 이용해 피해자를 약취한 다음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며 "불과 11세인 생면부지의 피해자를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상처가 매우 큰 것으로 보여 엄하게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성폭행 가해자 "피해자 부친과 합의해 고소가 취소됐으므로 공소기각해야"

그러자 A씨는 "1심은 약취·유인죄에 관해 유죄 판결을 했으나, 이 죄는 친고죄인데 피해자의 부친과 합의해 고소가 취소됐으므로 공소기각 판결을 하지 않은 원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물론 "피해자의 아버지와 합의된 점과 강간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등을 이유로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점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11형사부(재판장 강형주 부장판사)는 지난 4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로 고소가 취소됐다고 볼 수 없고, 11세에 불과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충격에 비춰 형량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친고죄에 있어서 고소는 고소권 있는 자가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하고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로서 서면뿐만 아니라 구술로도 할 수 있고, 다만 구술에 의한 고소를 받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조서를 작성해야 하나, 그 조서는 독립된 조서일 필요는 없고, 수사기관이 고소권자를 피해자로서 신문한 경우 그 진술에 범인의 처벌을 요구하는 의사표시가 포함돼 있고, 그 의사표시가 기재됐다면 적법하게 고소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언니와 인천 원스톱지원센터에 출석해 피해자 진술을 했는데, 경찰관이 영상녹화와 아울러 피해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처벌을 희망하고, 진술조서를 증거로 함에 동의한 이상, 위 진술조서는 형사소송법 제237조 제2항의 조서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에 대해 피해자의 적법한 고소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의사불벌죄에 있어서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돼야 하고, 이는 친고죄 고소 취소의 경우에도 동일하다"며 "피해자가 나이 어린 미성년자인 경우 법정대리인이 피고인에 대해 밝힌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에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포함돼 있는지는 피해자의 나이, 합의의 실질적인 주체 및 내용, 합의 전후의 정황, 법정대리인 및 피해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C씨는 피해자의 친모와 이혼한 후 재혼했고, 할머니 집에 거주하던 피해자는 범행 당일 할머니의 술주정을 피해 밤늦게 집밖으로 나왔다가 피해를 입은 점, 경찰이 합의서를 확인하기 위해 C씨에게 계속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은 점 등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현재 병원에 격리 수용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치료 중인데, 부친이 아닌 고모가 병원을 오가며 돌보고 있는 점, 치료기간 중 피해자는 대인기피 등의 정신증상과 극도의 불안증세가 다소 안정됐을 뿐, 피고인을 용서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는 없는 점, 평소 가정환경에 비춰 피해자가 C씨로부터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제출된 합의서만으로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로 고소가 취소됐다거나, 취소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 징역 6년과 개인신상정보 공개 10년 및 전자발찌 부착 10년 확정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11세 여아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A(45)씨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공개 10년과 전자발찌 10년간 부착을 명한 원심을 24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제출한 합의서에 피해자의 서명이 기재돼 있기는 하나 피해자의 날인은 없고,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인 부친의 무인 및 인감증명서가 첨부돼 있을 뿐이어서, 피해자 본인이 고소를 취소한다는 의사표시가 여기에 당연히 포함돼 있다고 볼 수는 없고, 다른 기록을 살펴봐도 피해자가 1심 판결 선고 전에 고소 취소의 의사표시를 했다거나 법정대리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고소를 취소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설령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인 부친 C씨의 고소는 취소됐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본인의 고소가 취소되지 않은 이상 공소제기 요건은 여전히 충족돼 있다 할 것이므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조치는 정당하고,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고소 취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성폭행, #고소취소, #친고죄, #반의사불벌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