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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오세훈 시장 : "솔직히 말해서 작년에 감추경(과다하게 책정되거나 불요불급하지 않은 예산을 추경을 통해 감액하는 것) 제출했으면 시의회에서 통과됐겠습니까?"

서윤기 시의원 : "제출해보셨습니까?"

 

오세훈 시장 : "6개월 동안 조직개편 못 하게 한 데가 어디입니까?"

서윤기 시의원 : "조직개편 못하게 된 원인이 뭡니까?"

 

오세훈 시장 : "작년에 소통하려고 시의원들과 일주일에 저녁식사 다섯 번씩 했던 것 기억 안 납니까?"

서윤기 시의원 : "저녁식사 다섯 번 한 게 소통입니까?"

 

오세훈 시의원 : "일례를 든 겁니다."

서윤기 시의원 : "흥분하지 마십시오, 흥분하지 마십시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회의 시정 질문 얘기입니다. 이게 정말 평균나이 45.5세 '어른'들의 대화 맞나요(참고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50세, 서윤기 민주당 의원은 41세입니다). 오늘(22일) 오전 상황입니다.

 

지난해 7월, 민선 5기 출범 이후 6개월간의 충돌, 6개월간의 '소통 중단'을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기 때문일까요. 민주당 의원들과 오세훈 시장 사이에 오고가는 날 선 공방이 때로는 '소모적인 입씨름'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등병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흘러간 6개월 안 아깝나"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이번에는 평균연령 47세입니다(김종욱 민주당 의원은 44세).

 

"오세훈 시장 발언대로 나와주십시오."

 

시정 질문 첫 주자로 나선 김종욱 의원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부릅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습니다. '자료를 놓고 왔나, 기계가 고장 났나' 갸우뚱하는 순간, "들어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당황한 오 시장, "네? 들어가라고요?"라고 되묻습니다. 김 의원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후 1분도 안 돼서 김 의원이 오 시장을 다시 부릅니다.

 

"오세훈 시장, 발언대로 나와 주십시오."

 

그리고 오 시장에게 묻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오 시장, 빈정 상했습니다. 말없이 김 의원을 쏘아봅니다. 그러자 김 의원이 다시 묻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시냐고요."

 

오 시장이 "낮은 자세로 의원님 해주시는 말씀 들어야 하겠다는 마음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때야 김 의원이 오 시장을 '나와라, 들어가라' 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시장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저희 의원들의 심정은 지금 시장의 심정보다 백배는 더 아팠고 안타까웠습니다."   

 

현장에서 이러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저는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지난 12월 2일 예정돼 있던 시정 질문에 오 시장이 돌연 불출석한 이후, 무려 반년 만에 진행되는 시정 질문입니다. 시의원들뿐만 아니라 1000만 서울 시민들도 기다려온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골탕먹이기'식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날 제가 쓴 현장기사에 '황금골든벨'님이 단 댓글을 보시죠.

 

"참말로 이상하네요~~6개월 동안 양쪽 간의 의견 불일치로 의회가 제대로 안 돌아갔으면 국민의 돈으로 시 의정을 하는 사람은 흘러간 6개월이 아까워서라도 밀려 있는 안건 처리를 하나라도 빨리 처리해야지... 무슨 군대에서 이등병 훈련시키는 것인가요?? 이 정도밖에 의정활동을 못하는 것인가요?? 좀 논리적으로 따질 것은 따지고 사실에 근거한 질의를 해야 상대방을 설득을 시키지 무슨 들어가세요, 나오세요, 이런 것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쌍방 의견교환이 되겠습니까??

 

서울시민들은 다음부터 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시의원 좀 뽑읍시다. 주민투표제는 이제 화살촉이 날아가고 있는데 이것을 논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밀려있는 민생과 관련된 안건들을 빨리빨리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민투표제의 화살촉이 날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투표 실시의 의미 그리고 절차적 합법성은 계속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질 것은 따지고 사실에 근거한 질의를 해야 한다"는 '황금골든벨'님의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비아냥', '윽박지르기' 하라고 댁들을 그 자리에 세운 게 아닐 텐데"

 

그러나 이날 오후 시정 질문에서도 '공방'이라고 표현하기엔 민망한 '입씨름'은 계속되었습니다. 김미경 민주당 의원과 오세훈 시장의 대화입니다.

 

김미경 시의원 :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알고 보니 이 운동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보수단체의 상당수가 연간 수천만 원의 지원금을 서울시에서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오세훈 시장 : "글쎄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건지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김미경 시의원 : "자, 정당은..."

오세훈 시장 : "진보시민단체는 정부로부터 지원 안 받습니까?"

 

김미경 시의원 : "자, 정당은 법적으로..."

오세훈 시장 : "그걸 그런 식으로 폄하하시면 안 되죠." 

 

김미경 시의원 : "폄하 아닙니다. 원래 안 되게끔 법적으로 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말씀드리는 거지, 본인한테 해석하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자, 정당은..."

오세훈 시장 : "그러려면 시정 질문 자리에서 뭐 하러 질문하십니까." 

 

김미경 시의원 : "저는 질문을 해가지고, 그거를 해석하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게 맞냐, 아니냐고 말씀 드린 겁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려면 시정 질문 자리에서 뭐 하러 질문하십니까"라는 오 시장의 발언도 부적절하지만,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발언기회 자체를 차단해 버리는 것도 성숙한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22일 시정 질문에서는 '선수'를 바꿔서 곽노현 교육감이 대답을 천천히 하자 정문진 한나라당 의원이 "시간이 없다,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넘어가겠다, 제가 다음 질문해야 하니까 서면으로 받겠다"며 으름장을 놓더군요. 답변 안 들을 거면 질문은 왜 하나요? 제가 이러한 상황을 트위터로 전하자 한 '트친(트위터 친구)이 '일침'을 가하더군요. 

 

"비아냥', '윽박지르기' 하라고, 국민이 댁들을 그 자리에 세운 건 아닐텐데!"

 

'지역 어르신' 30명 초대하면서 질문요지서는 달랑 두 줄

 

 

시정 질문에 임하는 태도도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21일 오후 시정 질문 시간에는 '부실한 질문요지서' 때문에 소동이 있었습니다. 시정 질문에 나서는 의원들은 본회의 시작 48시간 이전까지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등 집행부에 질문 요지서를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답변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배포된 질문 요지서를 보면 이경애 민주당 의원의 질문 요지는 단 두 줄입니다.

 

'1. 뉴타운 관련'

'2. 재무회계 관련'

 

이와 관련, 서울시가 '이런 식으로는 시정 질문을 진행할 수 없다'고 항의했고 허광태 의장이 '시정 질문 마지막 날로 질문 순서를 바꾸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경애 의원이 "안 됩니다, 의장님, 저희 지역에 어르신들도 많이 오셨고..."라며 반발했습니다.

 

이후 논의를 거쳐 실무적인 부분은 각 부서 실·국장이, 정책의 방향은 오 시장이 답변하는 것으로 협의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다음과 같이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지역에 계시는 분들 주민들 30여 명 정도 오셨는데 48시간 전에 자료 안 낸 것 때문에 시정 질문 안 된다니... 저는 요지를 쪽지로 내지는 않았지만 각 부서별로 이런 질문 할 거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줬습니다."

 

이날 이경애 의원의 질문 내용은 지역구 재개발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 30여 명까지 초대해놓고 왜 기본적인 질문요지서는 보내지 않은 걸까요.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세요?' 비판했지만 '지각'과 '땡땡이' 여전

 

 

더욱더 심각한 것은 상습적인 '지각' 그리고 '땡땡이'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시정 질문 첫 날인 21일, '의원님들,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세요?'라는 기사를 통해 시정 질문 시작 시간이 훌쩍 지나도 출석하지 않거나, 동료 의원들이 시정 질문을 하고 있는 동안 자리를 비운 의원들의 행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인 22일은 어떨까요? 지난 이틀과 마찬가지로 30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시의회 견학을 위해 방청석을 찾았지만, 의원들은 여전히 제 시간에 입장하지 않았습니다. 본회의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 정각, 조규영, 한명희, 김동욱. 단 세 명의 의원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본회의는 제적의원 113명 가운데 절반 정도인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 20분이 넘어서야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한컷뉴스] 대단한 의원님... 113명 중 3명만 정시 출석).

 

'땡땡이'도 여전합니다. 기사를 쓰고 있는 오후 3시 현재, 이행자 민주당 의원이 시정 질문을 하고 있지만 본회의장 1/3도 안 차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의원들은 시의회 1층에 있는 의원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네요. 이럴 거면 왜 지난 6개월간 '오 시장에게 직접 시정 질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가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시의회가 절대다수당이 된 이후, 시민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시의회와는 달리 오세훈 시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시의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시청광장이 열리고, 친환경 무상급식이 시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투표의 힘'을,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시정 질문에서 보여준 의원들의 '구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게 민주당 시의회가 그토록 강조하던 '소통과 대화'의 자세인가요?  다시 한 번, 애들 보기 정말 부끄럽습니다. 


태그:#시정질문, #서울시의회, #오세훈,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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