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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유적과 함께하는 '2011 겨울 만주기행' 여섯째 날(1월 15일). 아침 8시45분 연길(옌지)을 출발하여 윤동주 묘소, 3·13반일 열사 묘역, 홍범도 장군 전적지, 도문대교 등을 둘러보고 도문(투먼)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바라본 도문시. 한마디로 산뜻했는데요. 잘 정리된 북한의 어느 도시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차역에서 바라본 도문시. 한마디로 산뜻했는데요. 잘 정리된 북한의 어느 도시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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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13분에 출발하는 심양(선양)행 열차 시각까지는 1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해서 인력거와 삼륜 택시도 타보고, 도문시장도 둘러보는 등 잠시 시내관광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차역에 짐 보관소가 있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1933년 이전까지 '회막동(灰幕洞)'으로 불리던 도문, 인구가 약 15만으로 1965년 시로 승격되었다 한다.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 남양시와 마주하고 있으며 하얼빈, 단둥, 심양, 북경 등지로 출발하는 열차 시발점으로 철도 교통의 중심지란다. 도문(圖們)에는 '만갈래 하천의 근원'이란 뜻이 담겨 있다고.

하얼빈이 '만주의 파리'면 도문은 '만주의 작은 북한'

일행 한 사람과 짝지어 도문시장으로 향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택시는 돌아올 때 타기로 하고 걸어서 갔다. 도문에는 남시장, 북시장, 서시장, 중앙시장, 건설시장 등 재래시장이 여러 곳 있다고 했다. 15만 인구에 시장이 그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옛날 고향동네 신작로를 떠오르게 했던 비포장 길.
 옛날 고향동네 신작로를 떠오르게 했던 비포장 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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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공기가 맑았다. 고향에서 보던 벽돌담과 유행에 뒤처진 듯한 행인들 옷차림, 특유의 북한 사투리, 어색한 한글 간판 등은 향수를 자아내게 했다. 조금 부족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긴 여정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화려한 유럽풍 건축물이 많은 하얼빈은 '만주의 파리'로 통한다. 그에 따른다면 도문은 '만주의 작은 북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경도시여서 왕래가 잦은 이유도 있겠지만, TV에서나 볼법한 북한 서체와 구호성 글들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었다.

곧게 뻗은 도로는 정결하면서 단아한 맛이 풍겼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자동차도, 행인도 뜸했다. 고요가 흐르는 북한의 어느 작은 도시처럼. 흙냄새 짙게 풍기는 비포장도로는 시간이 60년대 언저리에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뛰놀던 그 옛날 고향동네 신작로를 떠오르게 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지나가기에 말을 걸었더니 힐끗 쳐다보고는 도망치듯 달아났다. 호의적으로 답하면 빵집에라도 들어갈 요량이었는데 실망이었다. 한족인지 조선족인지도 모르고 말을 건넨 경솔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애틋한 정과 동포애 느꼈던 '도문시장'

도문시장 입구. 노점상 상인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대했습니다.
 도문시장 입구. 노점상 상인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대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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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 가게 골목. 가게마다 고유번호가 붙어 있고 허가증이 걸려 있어 믿음을 주었습니다.
 생활용품 가게 골목. 가게마다 고유번호가 붙어 있고 허가증이 걸려 있어 믿음을 주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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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쯤 걸어가니 도문시장 건물이 보였다. 입구에는 노점상 아저씨들이 처음 보는 과일과 이름 모를 약초, 잡곡 등을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목을 잔뜩 움츠리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만 할 뿐 호객행위는 하지 않았다.

시장은 생각보다 활기가 넘쳤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질서가 있었는데 주로 조선족 동포들이 이용한다고 했다. 조선 말기에 만주로 건너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난전을 펼쳐 생계를 유지했다는 이주 1세대들의 생활상이 그려졌다.

노점상이 많은 심양의 '서탑거리' 시장과 새벽에 열리는 연길의 '수상시장'과도 비교되었으나 인구비례로 보면 상당한 크기였다. 저녁장 보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이 많았다. 상인들 표정이 하나같이 밝고 친절해서 부담 없이 아이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채소 가게의 다양한 채소들. 한겨울에 만주에서 여름 채소를 보니까 무척 반갑더군요.
 채소 가게의 다양한 채소들. 한겨울에 만주에서 여름 채소를 보니까 무척 반갑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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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과 오이 냄새가 싱그러운 채소전은 고향동네 재래시장을 옮겨놓은 듯했다. 영하 20도~30도 추위에도 풋고추, 호박, 가지 등 여름 채소들이 좌판에 가득 쌓여 있는 걸 보니 만주에도 하우스재배 전문 농가가 많은 모양이었다.

속내의 가게 앞으로 갔더니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서 오시라요!"라며 10년 만에 찾아온 친정동생 맞이하듯 반겼다. 구경하려고 갔는데 인사를 받으니까 미안했다. 해서 엉겁결에 3위안(540원) 주고 양말을 한 켤레 구입했다. 흥정도 재미인데 워낙 싼 거라서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정육점 아주머니가 고기를 써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팔더군요.
 정육점 아주머니가 고기를 써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팔더군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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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당기는 가게는 정육점이었다. 냉동실에 보관하는 우리와 달리 고기를 좌판에 널려놓고 팔았다. 싱싱한 생고기를 보자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삼겹살이 생각났다. 취급하는 정육 종목과 주인 사진이 담긴 허가증은 더욱 믿음을 가게 했다.

눈이 마주친 정육점 아주머니가 수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수줍음을 타기는 해도 장사 경험이 풍부한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손놀림이 노련했기 때문.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해서 단골도 많을 것 같았다. 잠깐 인사를 나누었는데 조선족 3세라고 했다.  

"고기가 싱싱하고 먹음직스럽네요. 조금 후에 기차를 타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기를 사지는 못하고 사진이라도 찍어가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일 없습네다. 많이 찍으시라요!"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도 안 했는데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살코기를 칼로 자르는 자세까지 취해주었다.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쳐났다. 대답은 짧았지만, 친절하고 살가운 목소리에서 애틋한 정과 동포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던 시계 수리 코너. 60-70년대 한국의 시계점 수리대를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던 시계 수리 코너. 60-70년대 한국의 시계점 수리대를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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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을 마치고 나오다가 총각 때 운영하던 가게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40살 안팎으로 보이는 기사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뭐 하는지 소식이 궁금한 30년 전 가게 종업원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모습이어서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기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시계 케이스만 만지작거렸다. 영어로 요일이 적힌 둥근 판이 놓여 있는 걸 보니 20-30년 전에 나온 기계시계를 수리하는 모양이었다.

시계를 비롯한 모든 기계를 고칠 때 한국에서는 '수리(修理)한다'고 하는데 중국은 수표(修表)라고 했다. 낱말 하나에서도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알코올램프, 드라이버, 핀셋, 집게 등 시계를 수리하는 때 묻은 공구들이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게 했다.

"우리 그냥 내려서 걸어갑시다!"

소형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택시에 올라 아이들처럼 재미있어하는 일행.
 소형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택시에 올라 아이들처럼 재미있어하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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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건물 밖으로 나오니 소형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 택시와 자전거 인력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가는 인력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행도 좋다고 해서 연세가 지긋한 아저씨 인력거 앞으로 다가갔다. 

만주는 이동수단 기본요금이 택시는 5위안, 삼륜차는 3위안, 인력거는 2위안, 버스는 1위안(180)이었다. 그중 우리 돈으로 400원도 안 되는 인력거 요금에서 중국의 풍부한 인력자원과 서민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인력거에 오를 때만 해도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출발 2분도 지나지 않아 판단 착오였다는 걸 알았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낑낑대는 아저씨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

좌불안석(坐不安席). 자리가 좁기도 했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앉아 있지도 일어설 수도 없었다. 두 사람 체중을 합하면 80kg들이 쌀 두 가마가 넘는 무게여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일행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 그냥 내려서 걸어갑시다!" 소리가 합창하듯 튀어나왔다.

자전거 인력거 아저씨가 일행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요금을 받고 있습니다.
 자전거 인력거 아저씨가 일행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요금을 받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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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를 세우라고 해도 아저씨는 계속 페달을 밟아댔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느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목소리 톤을 높이니까 그때야 아저씨는 인력거를 세우고 무슨 잘못이 있었느냐고 묻는 표정으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행이 지갑에서 5위안짜리 지폐를 꺼내 "추운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며 건넸고, 아저씨가 잔돈을 거슬러 주려고 허리에 찬 지갑을 여는 순간 "됐습니다. 나머지는 '빙당고' 사드세요"라며 종종걸음으로 도문역을 향해 걸었다. 시계는 오후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10일부터 17일까지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겨울 만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빙당고'는 '얼음 짬짜미'라고도 하며 딸기나 앵두 등 작은 과일 모양의 얼음과자를 말합니다. 단맛이 나지요. 만주에서는 어른 아이 모두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문시장, #자전거인력거, #정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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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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