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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넘게 지하수를 퍼 올려 식수로 먹고 밥도 해먹었다. 그런데 1주일 전부터 흙탕물이 올라온다. 아무리 가라 앉혀도 구정물이라 쓸 수가 없다. 그동안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도랑 건너편에서 하고 있는 저 공사 때문이다."

 

경남 창원시 동읍 본포리 300-3번지. 서영자(63)씨가 아침에 받은 물을 바가지로 퍼 올리며 한 말이다. 수도꼭지를 통해 나온 물을 받아 놓았다고 했는데, 도저히 손조차 담글 수 없을 정도로 보였다. 하루 전날 저녁에 받아 놓았다고 하는 물도 흙이 가라앉지 않아 탁도가 매우 심했다.

 

서씨는 남편 박영복(69)씨와 시어머니,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우사를 지어놓고 소를 30여마리 정도 키운다. 본포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다른 집에는 상수도가 들어오지만 서씨는 지하수를 사용해 왔다. 15년 전 140여m 깊이에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끌어 올린 것이다.

 

서씨 가족들은 오랫동안 지하수로 생활해 왔다. 식수는 물론이고 밥도 지어 먹었고, 빨래도 했으며, 마당에 가꾸는 채소에 물도 주고, 소한테 먹이기도 했다. 물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아왔다. 본포리는 낙동강 본포교 바로 옆에 있는 마을로, 여느 지역보다 물이 풍부하다.

 

그런데 1주일 전부터 물이 이상했다. 흙탕물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씨 가족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보았지만, 계속되자 불안에 떨고 있다. 물은 식수는 물론이고 빨래하는 데도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소한테 주는 정도다.

 

서씨 가족들은 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 원인이라 보고 있다. 서씨 집 앞에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는 '본포지구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한국농어촌공사 창원지사가 발주했는데, 낙동강에서 준설해 온 흙이 매립돼 있었다.

 

서영자씨는 "10년 넘게 지하수를 사용하면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1주일 전부터 흙탕물이 조금씩 나타났다. 처음에는 예사로 생각했는데, 심해졌다"면서 "주변 지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은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임희자 사무국장이 장비를 가져와 지하수의 탁도를 재보았다. 이날 오전에 받은 물의 탁도는 353ntu를 보였다. 임희자 국장은 "어제 저녁에 와서 받았던 물을 갖고 탁도를 재보았더니 498ntu였다"고 말했다.

 

ntu란 물이 탁한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먹는 물은 기준 0.5ntu다. 20ntu가 넘으면 물의 색깔이 누렇게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집 지하수는 500ntu 가까이 타나나고 있으며 어느 정도 탁도가 심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농경지 리모델링이 지하수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박재현 인제대 교수(토목공학)는 "본포교 쪽이면 모래 성분이 많은 지역이다. 농경지 리모델링을 하면서 진흙이나 모래 속 물질이 스며들어 갈 수 있다"면서 "리모델링 영향으로 지하수가 오염될 수 있다. 최근 비가 오면서 지하수위가 변화를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서씨 집에 상수도를 공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 서씨 집까지 관로 매설 비용을 포함하면 총 1700만원 가량 들어간다. 임희자 사무국장은 "4대강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지하수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상수도 매설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창원지사는 농경지 리모델링이 지하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농어촌공사 지사 관계자는 "서영자씨 집 지하수가 농경지 리모델링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면서 "농어촌공사에 지하수 조사팀이 있어 보고하고 정밀조사를 벌여 원인을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태그:#4대강정비사업, #낙동강사업, #농경지 리모델링, #한국농어촌공사,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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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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