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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공연 당일! 온종일 동네방네를 쏘아 다니던 전날의 피로를 무릅쓰고 일찍 일어나 장을 봤다. 무와 파, 마늘, 어묵과 버섯 등이 그 내용물. 그것의 용도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집에 돌아와 재료들을 씻고, 조리하기 좋게끔 간단하게 손질을 했다. 그러고 있으니 은정 누나와 지완이 왔다. 동아리 연합회에서 빌린 장비들을 모아 함께 신이문역으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산더미와 같은 앰프와 믹서 따위를 어떻게 역까지 이동할 것인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학교와 역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옮기기엔 음악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픽픽 쓰러질 정도로 만만찮은 거리였다. 기본요금이 나오는 택시로 몇 번 왕복하여 운반하는 방법도 고려했으나 용달 대용으로 기분 좋게 자신의 택시를 내줄 기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용달 트럭을 빌리면 간단하겠지만 가난뱅이들에겐 돈을 들이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단 말이다!)

리어카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절박할 즈음 구원 투수가 등판했다. 지혜가 동대문 구청에 부탁하여 미화 용도로 사용하던 트럭을 빌려온 것! 공무원 아저씨들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감읍하며 인사를 올렸다… 하면 거짓말이고, 퇴근 시간이 밀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저씨들이 투덜거리기 전에 미리 준비한 짐들을 서둘러 트럭 위에 실었다. 적재를 마치고 출발! 지완과 나는 짐칸에 매달려 역까지 달려갔는데, 이런 식으로 차를 타기는 굉장히 오랜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날씨가 무척 쾌청했다. 비가 갠 다음날이어서 그런지 늘 칙칙하던 석관동 하늘도 맑아 얼굴이 훤히 비칠 지경이었다.

쓰레빠 음악회 사진 (6) 장비를 옮기자! 동아리 회관에서 신이문역으로~
▲ 쓰레빠 음악회 사진 (6) 장비를 옮기자! 동아리 회관에서 신이문역으로~
ⓒ 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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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시작하자!

신이문역에 도착하니 먼저 와있던 단편선과 하헌진이 어슬렁어슬렁 어디선가 기어 나왔다. 여유부릴 틈도 없어 우리는 곧바로 트럭의 장비들을 내리고, 무대를 꾸미기 시작했다. 먼저 무대의 위치를 선정해야 했는데, 공중 화장실을 등지고 노래를 부르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역을 오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자리를 지정해 앰프를 설치했다. 그 과정에서 까다로운 과일 가게 할머니가 조금만 영역을 침범해도 벼락 같이 화를 냈다. 공무원 같은 꼰대 같았으면 눈을 부라리며 싸웠을 텐데, 노점상 할머니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으니 그저 굽실거릴 뿐이었다. 쩝!

그동안 은정 누나와 지혜는 벽에 음악회 포스터를 붙였는데,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답게 포스터를 붙이는 것 역시 남달랐다. 포스터들의 정렬을 나란히 하여 테이프를 테두리에 알맞게 착 붙이는데, 그것이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다. 단편선과 하헌진이 믹서를 조작하며 사운드를 점검했고, 일찍 도착한 팀 순서대로 리허설을 시작했다. 그 사이 명교는 무대에 전등을 설치하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뒷골목에서 부러진 자동차 와이퍼를 주어와 테이프로 칭칭 감아 간이 가로등처럼 조명을 만들었다. 비록 남루하긴 해도 제법 운치 있었다.

쓰레빠 음악회 사진 (7) 포스터 테두리에 붙힌 청테이프가 가히 예술!
▲ 쓰레빠 음악회 사진 (7) 포스터 테두리에 붙힌 청테이프가 가히 예술!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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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옆의 여자 화장실에서 비상벨이 마구 울리는 것이었다. 화장실 앞에는 '화장실의 벨이 울리면 위급상황입니다. 도와주세요'란 내용의 표지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후다닥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기도 뭣한 상황인지라 우린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렇게 한참 멍청히 있는데, 화장실에서 한 외국인 여자가 나오더니 "Can you speak english?" 하고 묻는 거였다. 하헌진이 나서 대화를 몇 마디 나눴는데, 들어보니 비상벨을 잘못 누른 모양이었다. 다행이구먼! 그녀에겐 다른 외국인 동행이 몇몇 있었는데, 우리가 무대 앞에 돗자리를 깔고 객석을 마련하자 냉큼 앉아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역시 외국인은 다르다니까!

리허설도 마치고, 객석도 만들고, 이제 모든 준비는 마무리되었다. 공연만 시작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우습게도 공연 순서를 여태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지완은 막연히 "당일에 대충 정하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단편선과 하헌진은 "기획하신 분들이 정하세요" 하고 떠넘겼다. 누구나 첫 번째와 마지막 순서를 좋아하지 않을 터이니 결국 사다리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맙소사, 내가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꼭 이렇다니까… 사다리 타기를 제안한 것도 나고, 그걸 그린 것도 나이니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단편선과 이류에게 순서를 바꿔 달라고 졸랐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단념하고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본격적인 공연 돌입, 신이문 대혼란!

사실 리허설까지 혼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으나 공연 직전, 밴드에서 피아노를 치는 빠순에게 같이 하자고 했다. 그 효과는 정말 지대했으니… 혼자 있으면 어딘지 위축되고, 힘이 나지 않던 것이 밴드에서 오래 합을 맞추던 동료가 옆에 있으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덕분에 큰 실수 없이 공연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의외로 호응이 좋아 속으로 뛸 듯 기뻤다. 믹서 오퍼레이션을 맡고 있던 단편선도 잘 한다고 칭찬했다. 에헤헤.

쓰레빠 음악회 사진 (8) 풍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소프트 크림~ 공연.
▲ 쓰레빠 음악회 사진 (8) 풍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한 소프트 크림~ 공연.
ⓒ 이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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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연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포크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록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을 아연실색케 한 단편선, 이 시대 청년들의 영원한 송가'죽고 싶어라'를 불러 포장마차 아저씨에게 퇴폐적이란 딱지를 얻은 이류, 예의 '아저씨 풍' 블루스로 시선을 끈 뒤 미모의 여성들로부터 앵콜 요청이 쇄도하자 입이 찢어져라 웃은 하헌진, 매번 공연 때마다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악어들(이번엔 동물들이 울부짖는 성대모사를 했다)까지…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지켜봤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비상벨을 누른 외국인 여성과 그녀의 외국인 친구들은 여전히 뒷자리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고, 돗자리 군데군데에서 낯익은 학교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역을 찾은 사람들이나 전철에서 막 내려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벼락처럼 시작된 기상천외 라이브를 구경하는 통에 신이문역은 순식간에 대공황! 그런데 불청객이 눈치도 없게도 끼어들었다. 역장의 극진한 안내를 받고 동대문구 국회의원 어르신이 친히 납신 것! 나는 나중에 그가 한나라당 출신의 의원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우리가 온갖 고생할 때엔 콧방귀도 끼지 않던 꼰대들이 판이 커지니 어떻게든 한 몫 잡아보려고 기어 나오는 꼴이라니! 게다가 축사랍시고 하는 말도 가관. "저는 쓰레빠 음악회라고 해서 쓰레빠가 무슨 프랑스 말인가 했는데, 그 쓰레빠인 줄은 또 몰랐습니다. 핫핫!" 이걸 웃으라고 내놓은 농담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은실이 축사 도중에 난데없이 "비정규직 투쟁! 결사반대!" 하고 외치며 응수를 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쓰레빠 음악회 사진 (9) 즐거운 자리에 끼어든 불청객 꼰대들! 에잇~ 솜방망이를 받아라아아하압!
▲ 쓰레빠 음악회 사진 (9) 즐거운 자리에 끼어든 불청객 꼰대들! 에잇~ 솜방망이를 받아라아아하압!
ⓒ 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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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0) 구름 같이 몰려든 관중들!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0) 구름 같이 몰려든 관중들!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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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1) 열혈 포크라고 불러다오~ 회기동 단편선의 공연.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1) 열혈 포크라고 불러다오~ 회기동 단편선의 공연.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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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2) 서글서글한 미소의 이류 씨.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2) 서글서글한 미소의 이류 씨.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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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3) 늘 굉장한 공연을 보여주는 하헌진.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3) 늘 굉장한 공연을 보여주는 하헌진.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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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4)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는 형제 밴드 악어들.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4)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는 형제 밴드 악어들.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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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5) 충격적인 데뷔 무대를 치룬 무키무키 만만수. 그녀들의 다음 행보는?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5) 충격적인 데뷔 무대를 치룬 무키무키 만만수. 그녀들의 다음 행보는?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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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6) 댄스 댄스 댄스!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6) 댄스 댄스 댄스!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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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빠 음악회 사진 (17)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은정 누나(가운데)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7)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은정 누나(가운데)
ⓒ 주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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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보랏빛으로 물든 초저녁의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어지던 공연이 이제 대단원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이자… 쓰레빠 음악회에서 데뷔하는 대형 신인, 무키무키 만만수!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돌비의 멤버이자 친구 사이인 은실과 민휘가 결성한 밴드로, 무엇보다 은실이 직접 만들었다던 "구장구장구"의 경천동지할 사운드가 가히 압권. 그런 그들이 드디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첫 번째 노래를 시작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긴장을 해선지 갑자기 노래를 중단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는데, 심지어 은실은 아주 조금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다시 도전!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비롯하여 2주 만에 만들었다던 자작곡까지 멋지게 불렀다. 그녀들의 공연은 남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는지 하헌진과 명교는 물론,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외국인 남성까지 끌어 들여 주목을 받았다. 마지막에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그렇게 쓰레빠 음악회가 준비한 팀들의 모든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우리의 밤은 이제부터 시작!

"여러분, 음악회가 끝나고 이 자리에서 뒤풀이를 할 예정입니다. 전골도 준비했으니 가지 말고 끝까지 같이 놀아요!"

사회를 맡은 현준이 내가 부탁한 대로 전골 파티에 대한 공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게 바로 쓰레빠 음악회의 진면목이자 내가 아침부터 식재료를 준비하던 이유이지롱! 일찍이 "가난뱅이들의 영웅" 마쓰모토 하지메가 고엔지 역 앞에서 전골을 끓여가며 술판을 벌인 일화에서 충격을 받은 나는 쓰레빠 음악회란 기획을 들을 적부터 남몰래 "공공장소 음주가무 대소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바닥만 내려다보며 울적한 기분으로 지나가던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 뒤섞여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술자리를 만들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음악회 전날 은정 누나와 지완, 지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니 퍽 흥미로워 했다. "역장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고 내가 넌지시 말하니 "그거 갖고 뭐라 하려나… 그냥 하자" 하고 오히려 더 대담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이었다. 역시 호방하고, 불온하다! 멋져.

여기서 술? 에엥, 전골?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사이 나는 얼른 준비한 음식과 가스버너 따위를 돗자리 위에 펼쳐놓았다. 친구들과 함께 전골 끓일 채비를 하고 있자니 주변에 멀뚱멀뚱 보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다가와 일을 도왔다. "준하 씨,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이걸 씻어오면 될까요?" 정말이지, 난생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버너 두 개와 냄비 둘,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무와 파, 마늘, 버섯과 어묵, 그리고 물만두 등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런데 버섯전골 냄비에 물을 너무 많이 넣어 낭패! 소금을 끝없이 넣어도 싱거워 결국 요리사의 자존심을 뒤로 한 채 라면 스프를 집어넣었다… 어쨌든,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따끈한 전골이 대충 완성되었다!

동화 '요술 돌멩이 스프'처럼 다함께 만든 요리이어서 그런지 맛보다 감동이 느껴졌다. 여전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다가와 술을 건네고, 계란을 깨트려 전골에 집어넣고, 단편선은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고등학생 교복을 빼앗아 입고 있고… 나중에는 공연 내내 뒤편에 앉아 있던 외국인 일행까지 합석하여 화장실 비상벨의 여성까지 옆에 앉아 전골의 만두를 나누어 먹었다! 짧은 영어를 이용하여 대화를 해보니, 자신은 불란서에서 왔으며 휴가차 한국을 찾았다는 것. (한예종 학생 중 본인의 친구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마음은 불란서"에 있는 나와 정빈은 그녀와 술을 주구장창 마시며 별 시시콜콜한 얘기를 해댔다. 불란서 사람들은 평소에 담배를 많이 피우냐, 담배는 무엇을 가장 많이 피우냐, 영화 좋아하냐, 고다르 아냐, 얼마 전 겨울에 불란서를 갔었다… 등등. 그녀는 예의 불란서 멋쟁이답게 말보로 레드를 연신 피우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역 앞에서 술판을 벌였다고 화를 낼 줄 알았던 역장 아저씨가 사비를 털어 우리에게 맥주를 잔뜩 사준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비록 어마어마한 액수의 술값을 지불하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고, 훈시를 하려다 아무도 듣지 않자 서운해 하며 돌아갔지만) 맥주를 얻자 술자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좋았어, 이대로는 어딘지 심심하지! 하헌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얼른 DJ 자리를 꿰차고 앉아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해피 먼데이스의 '24 hour party people'이 신이문 일대에 울려 퍼질 땐 너무 감격하여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역 앞에서 술판을 벌이다! 거기에 역장님의 맥주, 동네 아저씨의 수박 선물까지!

술자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믹서 앞에 앉아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음악이 다소 시끄럽다는 지적에 소리를 줄여야 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고,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것도 지하철 역 앞, 고가도로 아래에서! 지나가는 행인들도 퍽 황당하고 궁금한지 걸음을 옮기면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했다. 대개는 힐끗 보곤, "별 일을 다 보겠네" 하는 얼굴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잠시 자리에 멈춰 서서 우리를 보며 매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갑작스레 떠오른 옛날 생각 때문인지, 내가 조금만 어렸어도 저 사이에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스냅 사진처럼 선명하게 여운을 남겼다. 물론, 술자리의 아이들과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옆에 있던 과일 가게에서 수박 한 덩이를 사와 나누어 먹으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 멋진 아저씨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저들도 외롭고, 심심하지 않았을까?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끼어 앉아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고 갔으면… 하고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우리 상사가 말이야! 빌어먹을 사회 같으니라고! 하고 속 시원히 소리라도 질렀을 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동호회 모임처럼 너무 친한 젊은이들끼리 야외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인상도 없잖아 있어, 만약 다음에 술자리를 벌인다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자리에 합석할 수 있는 편안함과 배려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술판이 우리끼리 재미있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 거지 같은 사회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이라도" 즐거웠으면 하는 자리이니까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않겠어? 정말이지, 나는 외로운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광기 어린 사회에 편입하고자 기를 쓰고 노력하는 대신 주변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불편함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가 늘어난다면,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말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술자리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불만은 주변 노점상 주인들이 터트렸는데, 특히 과일 가게 할머니는 공연 때는 흐뭇한 표정으로 잘 듣더니 나중에는 혼자 있던 내게 다가와 쌍욕을 뒤섞어가며 저주의 말들을 퍼부었다. 이는 맞은편의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래도 소동 때문에 가게의 매상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여 분노하는 것 같았다.

참 어려운 얘기였다. 아무리 노점상이라도 그들의 생계가 달린 영역이고, 이는 엄연히 존중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온갖 욕설을 혼자 들으며 마쓰모토 하지메 생각을 많이 했다. 도시와 자연을 오가며 숱한 난동을 벌인 그 역시 이런 식의 마찰을 많이 겪었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넘어갔을까? "에이, 뭘 이런 것 같고 그러슈? 할매도 같이 놀고 가요!" 하고 대강 얼버무렸을 것 같긴 한데… 어찌 보면 팍팍한 노점상 상인들의 한 단면 같기도 하고, 휴우. 

쓰레빠 음악회 사진 (18) 광풍이 휩쓸고 간 술자리. 소강 상태에 진입한 듯하다.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8) 광풍이 휩쓸고 간 술자리. 소강 상태에 진입한 듯하다.
ⓒ 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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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소 음주 대난장 쇼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든 쓰레빠 음악회 술자리는 막차 시간이 다가올 즈음에 점차적으로 소강되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불란서 일행들이 인사를 하고 떠나자("Good to see you!"), 이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물품들을 한데로 모으고, 쓰레기들을 종류별로 정리했다. 문제는 마찬가지로 장비들의 운송! 하나씩 끌어안고 택시로 이동해야 할 판이었는데, 아주 운이 좋게 차를 가져온 지인의 도움으로 가뿐히 해결할 수 있었다. 장비와 함께 사람들이 학교로 떠나자 정빈과 은실, 지완을 비롯하여 역에 남은 친구들과 함께 난리법석을 부렸던 현장을 깨끗이 정리했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부터 바닥의 담배꽁초까지… 캬, 내가 생각해도 멋진 청년들이야.

정리를 마치고 남은 이들과 동아리 회관으로 이동하여 조촐하게 우리만의 뒤풀이를 가졌다. 모두 진이 빠져선지 오자마자 피식 쓰러져 잠이 들거나 금방 자리를 떴다. 결국 시가지 정키 3인조인 정빈과 영조, 그리고 나만 남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졌던 은정 누나가 불현듯 찾아왔다. 사라진 이유를 물어보니 머리가 아파 잠깐 자취방으로 돌아가 쉬고 있었단다. 우리는 먼저 음악회가 사고 없이 무사하게 끝났음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획자들의 진솔한 이야기… 하늘이 밝아오자 은정 누나는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들은 소파에 파묻혀 눈을 붙였다. 하길 잘했어. 잠이 오는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민들레 씨앗처럼, 연기처럼 퍼져 나가는 문화

내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만든 음악회의 "영화 같은 순간"들을 보다 세밀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당사자로서의 욕심이랄까, 좋은 갈무리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언젠가 정빈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기록"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간 무수히 많은 기획과 행사와 활동, 술판, 난장판, 싸움판, 밤을 홀딱 샌 이후에야 찾아오는 새벽하늘의 고적함을 보아왔음에도 이런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충실하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정빈은 개인적으로 조금씩 기록하고 있는 듯했지만) 단지 그것을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너무 미화되거나 퇴색될 것 같아 보다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황당할 정도로 장황한 이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가 읽은 뒤 "어, 이 사회에 이런 녀석들이 있단 말이야? 거참… 우리도 한번 동네에서 저질러 봐야겠구먼!" 하는 생각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음악회 얘기하며 잠깐 언급한 노래와 동명인 영화 <24 hour party people>을 보면, 지역 문화를 폭발적으로 부흥시키는데 일조한 클럽 "하시엔다"가 고질적인 자금난과 갱스터들의 마약, 폭력 사건 등의 이유로 결국 문을 닫게 되는 장면이 있다. 하시엔다의 마지막 공연 날, 클럽의 공동 소유주 중 하나인 토니 윌슨이 방송을 통해 관중들에게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무실에 들러 음악 장비며, 컴퓨터며, 모든 물건들을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챙겨 가라고 말이다. "천 명의 맨체스터 주민에게 꽃을 피우십시오" 하는 말과 함께.

나 역시 문화는 일종의 민들레 씨앗이나 연기라고 생각한다. 개별적으로 보면 코웃음이 나올 만큼 미약하고 가능성이라곤 희박하지만 그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새롭게 표출되기 마련이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자신과 비슷한 얼간이들이 한국에서 소동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고 있는 내게 큰 영감을 줬던 사람들 역시 정작 본인들은 인지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제2의 쓰레빠 음악회, 혹은 더 기상천외하고 시끌벅적하며, 훨씬 불온한 가난뱅이 청년들의 놀이판이 불쑥불쑥 솟아나기를 바란다. 사실 쓰레빠 음악회가 환장할 정도로 새로운 것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니지 않나. 이걸 준비한 사람들도 글을 읽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로 불안한 청년들이고. 때문에 술김에 확 저지르는 대담무쌍함과 앞뒤 따지지 않는 저돌성을 갖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라. 그런 젊은이들이 보다 많아진다면, 한국의 GDP는 조금 내려갈지언정 행복 지수는 상승하지 않을까?

광기와 야만의 사회 속에서 우린 어떻게 놀 것인가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논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 사실 오늘날의 청년들이 전혀 놀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밤중의 신촌이나 홍대 앞, 강남을 가보라. 술집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꺼질 줄을 모르고, 길바닥엔 흩뿌려진 키스방 명함들이 즐비하다. 허나 놀이와 소비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본 중심의 소비적 향락 문화는 필연적으로 당사자들을 배반하고, 끝내 허무에 빠트리기 마련이다. 우습지 않은가? 즐겁기 위해 그토록 많은 돈을 지불함에도 정작 즐겁지 않은 현실이라니!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놀자"가 아니라 "어떻게 놀 것인가"이고, 그 실천적 대안 모색으로 고민을 전환해야 한다. 이는 더 나아가서 한국의 사회 운동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시니컬하게 얘기하자면, 과거의 집회와 문화제는 더 이상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흥분시키지 못 한다. 서울 곳곳에서 연일 진행되고 있는 집회 현장을 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참여 연령층은 대부분 치열한 과거를 보냈던 "왕년의 용사" 어른들이고, 청년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의에 의지한 참여 독촉은 단순한 동원에 불과하고, 이는 결국 운동의 경직과 쇠락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운동권"의 과거와 문화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감성에 맞지도 않는 옛날 민중가요와 엄숙한 분위기 아래에서 펼쳐지는 형식적인 연설, 군 장병들을 연상케 하는 딱딱한 구호를 젊은이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솔직히 나는 노동절 때 "일하고 싶다!"가 아니라 "일하기 싫다! 더 놀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고 싶었다)

나는 대안으로 문화, 그것도 젊은이와 지역에 기반을 둔 문화 활동에서 찾고 싶다. 멋들어진 엘리트 예술가들이 봉사하듯 "내가 들려줄게, 너는 그냥 들어" 하는 식의 일방적인 공연 형태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나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능동적이고도 자율적인 화학작용"이 우리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고로 놀이는 직접 참여해야 진정으로 즐겁기 때문이다.

쓰레빠 음악회 사진 (19) 아름다운 순간.
▲ 쓰레빠 음악회 사진 (19) 아름다운 순간.
ⓒ 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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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놀 것인가― 고민과 불안이 여전히 발목을 끈질기게 붙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놀아야 한다. 자본가와 주류 기득권 세력들이 부러워 눈물을 철철 흘릴 정도로 재미있게. 자, 그러니 다 같이 놀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도와 가능성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웹진에 오시면 완전본 열람 가능! http://si-g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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