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누구나 간직할만한 성장기의 추억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나 간직할만한 성장기의 추억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 소중한 날의 꿈


<슈렉>·<월E>·<쿵푸 팬더>… 볼거리는 물론 재미와 감동까지 던져주는 할리우드의 대작 애니메이션들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와 가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일본도 뒤지지 않는다. <원령공주>·<천공의 성 라퓨타>·<시간을 달리는 소녀>등 흥미는 물론 보편적 공감을 울리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류바람이 거세다는 21세기.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산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점령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전 세계 수많은 작품들에 참여하며 기술은 물론 감성까지 갖춘 것으로 평가받지만, 관객의 뇌리에 자리 잡을 우리만의 대표적 작품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주저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에서 건져 올리고 매만져진 우리들의 이야기. 한국판 더빙이 아닌 우리의 입모양에 맞게 만들어진 그런 애니메이션, 나아가 피부색 다른 민족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잊고 있었지만 관객 누구라도 바라고 있던 바는 아니었을까.

복고 바람이 거센 2011년. 비교적 그 기대에 부합할만한 애니메이션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1년간의 제작기간, 10만 장의 작화가 소요된 영화 <소중한 날의 꿈>이다.

우리 모두가 거쳤던 성장통의 이야기, 추억으로 새겨지다

 주인공 이랑은 달리기에서 스스로 넘어지고 만다.

주인공 이랑은 달리기에서 스스로 넘어지고 만다. ⓒ 소중한 날의 꿈


주인공 오이랑(목소리 : 박신혜)은 70년대 말을 살고 있는 여고생이다. 얼굴이 특별하게 예쁘지도 않고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남보다 잘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달리기. 그런데 교내 이어달리기 대회에서 다른 친구가 자신을 앞지르는 순간 덜컥 겁이 난다. 그 순간 스스로 넘어지고 만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된 것. 이젠 정말 평범한 여고생이 됐다. 그때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심지어 교복까지도 몸에 딱 맞게 입는 세련된 서울 전학생 수민이 등장한다. 남학생들은 수민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관심받기 위해 그 또래만의 장난을 보낸다. 곁의 이랑은 자신감이 없다.

그런데 수민을 보기 위해 교실로 몰려든 남학생들 틈에서 우연히 철수(목소리 : 송창의)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평소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인 철수. 학교 옥상에서 비행실험을 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되고 이랑은 이런 철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라디오를 고치기 위해 전파상을 찾은 이랑은 삼촌 대신 수리를 맡고 있는 철수와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어느덧 친한 사이가 된다. 발명품으로 가득한 아지트를 공개하고, 라디오를 핑계로 직접 집까지 찾아오는 철수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가지게 된 이랑. 순진한 철수는 이랑에게 말한다.

"나 여자한테 돈 쓰는 거 처음이다."

아름답지만, 충분히 힘들고 괴로웠던 청춘의 기억들

 군산 철길 등 전국의 아름다운 장소가 등장한다.

군산 철길 등 전국의 아름다운 장소가 등장한다. ⓒ 소중한 날의 꿈


어른이 되어 사는 삶. 흔히 어린 시절은 즐겁기만 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말 그랬을까. 늘 웃음만 터져 나오고 고민은 없었을까. 또 어른들은 말한다. 그때의 고민은 행복한 거라고. 어른이 되어 하는 고민은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깊다고. 정말, 그럴까?

커나간다는 것은 한편 끊임없이 남과 나를 경쟁시켜가는 과정. 이랑은 달리기에서 추월을 당하려는 순간, 자신의 패배를 피하기 위해 넘어짐이란 '포기'를 택한다. 패배가 아닌, 무한 경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겨야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선한 고민과 자의식이 깨어나가는 과정들이 과연 어른들의 그것보다 가치 없는 일일까. 친구들과 끊임없이 나누는 대화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커서 무엇이 될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하는 궁금증과 기대들. 하지만 내일을 꿈꾸기에 앞서 오늘을 힘들게 하는 여러 요소들.

영화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특별히 교훈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고, 여러 사건과 상황 속에서 천천히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듣고 느끼며 이랑은 어느덧 포기하지 않는 것도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 간다.

영화 곳곳에 깔린 복고의 느낌, 재미를 더해 줘

 깨알같은 기억이 기록 된 아름다운 영화.

깨알같은 기억이 기록 된 아름다운 영화. ⓒ 소중한 날의 꿈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공원에서 소녀를 만났다네~>
김만수 - 푸른 시절

30~40대 이상의 관객이라면 영화의 첫 배경음악에서부터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가 쳐놓은 추억의 그물은 매우 촘촘하다. 떡집을 하는 이랑의 집에는 기억에도 흐릿한 삼륜차가 서 있고, TV에선 '원더우먼'이 등장한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 눈물 흘리고 교실에선 쪽지를 접어 던지며 의사소통을 나눈다.

그리고 소담스럽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배경들. 서울 이화동· 전주 기전여고 골목· 군산 철도 길· 해남 땅 끝 마을 등. 아직 부스러지지 않은 추억의 장소들이 작품의 배경이 되어 녹아든다. 너무나도 친근한 화면에 만화영화지만 오히려 기성세대가 더욱 반가워할 듯하다.

얼핏 영화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소재나 화풍이 비슷한 것이 아닌, 작화 솜씨나 이야기 전개가 그만큼 수준 이상이라는 뜻이다. 실제 지난 해 열린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 열리고 있는 <안시국제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극장용 부문 본선에 진출해 있는 상태다.

"윽박지름이 아닌 담소 나눔의 영화가 되길 바란다"

 안재환 감독은 '담소 나눔'의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재환 감독은 '담소 나눔'의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소중한 날의 꿈


한편 상영 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안재환 감독은 작품의 배경이 70년대 말로 그려지는 이유에 대해 "작품에서 보여주는 고민들은 예전이나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답했다.

"애니메이션으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어색하지 않은 판타지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어른들은 기억으로, 젊은이들은 흑백칼라로 알고 있는 이미지를 멋있는 칼라로 재현해보고 싶었다. 한국적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기억의 흔적을 공유하는 작업을 누군가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

영화는 성장통의 시기를 그렸지만, 지금 이 순간도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감독은 그런 이들이 영화를 봐 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직업을 갖게 되시거나, 혹은 직업에 대해 고민이 있으신 분들. 또는 택한 직업에 대해 너무 많은 자신감을 가진 분들이 보면 좋겠다. 교훈이 아닌 자신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실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든 10년간의 노력이 윽박지름이 아닌 담소 나눔이 될 듯하다."

소중한 날의 꿈 박신혜 송창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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