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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는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야 한다
▲ 열무김치 열무김치는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야 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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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매콤달콤... 때 아닌 무더위에 잃어버린 입맛 되살리는 열무김치. 열무김치가 초여름 밥상 아우르는 감초가 되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마치 "올 여름 무더위 쫓으려면 날 밥상에 올려!"하는 투다. 잎과 뿌리가 연해 '여린 무'라는 말에서 이름 붙은 열무는 예로부터 여름철 땀방울로 빠져나간 원기를 북돋워주는 보양제로 통한다.

열무가 잎과 뿌리가 여린 것은 자라는 기간이 꽤 짧기 때문이다. 열무는 겨울 텃밭에서는 60일, 비닐하우스에서는 25일이면 다 자란다. 봄과 가을에는 40일, 여름에는 25일로 네 계절 내내 우리들 밥상 위에 올릴 수 있다. 열무를 자식처럼 키우는 농가에서는 1년에 다섯 차례 정도 씨를 뿌리고 거둔다.

열무는 두 가지가 있다. 총각무와 열무가 그것이다
▲ 열무 열무는 두 가지가 있다. 총각무와 열무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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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물김치로 만들어 먹는 열무는 여름철에 가장 많이 먹는다. 농민들이 여름 열무보다 봄 열무가 더 맛있다고 하는 까닭은 줄기가 연하고 아삭거리기 때문이다. 까닭에 열무를 고를 때는 너무 자란 것은 줄기가 질겨 맛이 없다. 사람들 입맛을 새롭게 돌게 하는 좋은 열무는 줄기에 연두빛이 예쁘게 돌면서 통통해야 한다.  

열무는 두 가지가 있다. 총각무와 열무가 그것이다. 총각무는 무처럼 제법 굵은 무 뿌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열무(얼갈이)라고 하는 것은 무 뿌리가 얇고 길쭉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열무는 뿌리를 쓰는 무보다 잎이 연하고 맛있는 까닭에 잎을 이용하는 채소다. 열무 잎은 열량이 적고 섬유질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이다.

열무손질이 끝나면 소금(천일염이 좋다)을 척척 뿌려 재워두고, 갖은 양념 준비에 들어가자
▲ 열무 열무손질이 끝나면 소금(천일염이 좋다)을 척척 뿌려 재워두고, 갖은 양념 준비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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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이 열무김치를 담그는 법은 조금 특이하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 찹쌀풀에 배와 사과를 갈아 넣는 것이다
▲ 열무김치 재료 길손이 열무김치를 담그는 법은 조금 특이하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 찹쌀풀에 배와 사과를 갈아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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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맨은 아가 그래도 맛은 알아가지고"

"옴마(엄마)! 노르스럼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는 없나?"
"와? 올 밥상 위에 올린 열무김치가 맛이 없나?"
"내는 금방 담은 열무김치캉, 잘 익은 열무김치로 좋아한다 아이가. 어중간하게 익은 이런 열무김치가 제일 맛이 없더라."
"쯧쯧쯧! 쪼맨은(아주 작은) 아(아이)가 그래도 맛은 알아가지고."

열무김치, 하면 늘 그때가 떠오른다. 1970년대 끝자락 길손(나)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그해 초여름 이맘 때. 주말에 고교 반창들과 창원 비음산(486m) 자락에 있는 불곡사(통일신라 때 고찰,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 1036번지)에 들놀이를 갔다가 집으로 떼지어 몰려와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 위에 놓인 그 잘 익은 열무김치.

반창들과 함께 쌀 몇 알 섞인 보리밥에 척척 걸쳐 허겁지겁 먹었던 그 열무김치. 그땐 열무김치와 풋고추, 된장만 있어도 왜 그렇게 밥맛이 좋았던지. 지금도 이맘때만 되면 어머니께서 시커먼 보리밥과 함께 내주시던 그 잘 익은 열무김치를 볼 터지게 먹고 싶다. 멸치국수 위에 척척 올려 먹어도, 보리밥에 된장 몇 수저 떠 넣고 열무김치 올려 쓱쓱 비벼먹어도 기가 막힌 맛이 나는 열무김치.

그때 어머니께서 열무김치를 담는 법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요즘처럼 찹쌀풀에 갖은 양념을 해서 열무김치를 담그는 것이 아니었다. 보리풀에 빻은 생강, 찧은 마늘, 양파즙, 붉은 고추, 고춧가루, 멸치육젓을 넣고 그저 살살 버무리기만 하면 그렇게 맛난 열무김치가 만들어졌다. 물김치를 담글 때는 물을 많이 부으면 그만이었다.            

잘 쑨 찹쌀풀
▲ 찹쌀풀 잘 쑨 찹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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빻은 생강, 송송 썬 붉은 고추, 빻은 마늘, 양파즙, 멸치액젓, 흑설탕, 소금, 고춧가루를 찹쌀풀에 함께
▲ 열무 양념 빻은 생강, 송송 썬 붉은 고추, 빻은 마늘, 양파즙, 멸치액젓, 흑설탕, 소금, 고춧가루를 찹쌀풀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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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무린 양념
▲ 양념 잘 버무린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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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밥상에 열무김치도 올려줘"

"아저씨! 열무 이거 떨이로 사 가세요. 아까 낮에는 한 단에 이천 원에 팔던 건데, 두 단에 이천 원만 줘요. 요새 열무가 제철이라 연하고 참 맛이 좋아요."
"생강도 끼워 주나요? "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 생강이 너무 비싸 끼워주지 못해요. 생강은 길 건너 저 집에 가서 사면 아주 싸게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렇찮아도 며칠 앞부터 열무김치가 자꾸 어른거렸는데... 오늘 저녁은 열무김치나 담글까나."

열무가 제철을 맞아 아주 싸다. 6일(월) 현충일 저녁 8시께 중랑구 면목동 사가정역(7호선) 옆에 있는 사가정시장에 나가 부드럽고 싱싱한 열무 두 단을 2천 원에 샀다. 횡재한 기분이었다. 마늘 빻은 것 한 봉지와 생강, 붉은 고추까지 샀지만 5천 원 남짓밖에 들지 않았다. 열무김치를 담그기 위한 다른 양념은 모두 집에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 다다른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좀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 맛난 열무김치 생각에 곧바로 열무손질에 들어갔다. 열무는 뿌리부터 먼저 다듬은 뒤 풋내가 나지 않도록 흐르는 물에 씻을 때 애인 눈치 보듯이 살살 다루어야 한다. 만약 열무를 냉장실에 넣어두어야 할 때는 신문지에 싸서 밑둥을 아래로 가게 하면 잘 시들지 않는다.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야 한다
▲ 열무김치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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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에 따라 부추를 넣어도 맛이 참 좋다.
▲ 열무김치 입맛에 따라 부추를 넣어도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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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손질이 끝나면 소금(천일염이 좋다)을 척척 뿌려 재워두고, 갖은 양념 준비에 들어가자. 길손이 열무김치를 담그는 법은 조금 특이하다. 감칠맛을 내기 위해 찹쌀풀에 배와 사과를 갈아 넣는 것이다. 그밖에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빻은 생강, 송송 썬 붉은 고추, 빻은 마늘, 양파즙, 멸치액젓, 흑설탕, 소금, 고춧가루를 찹쌀풀에 함께 넣고 잘 버무린 뒤 재워놓은 열무에 비벼주면 끝. 이때도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비벼야 한다. 입맛에 따라 부추를 넣어도 맛이 아주 좋다.   

"아빠가 김치 담글 줄도 알아? 근데 이건 무슨 김치야?"
"열무김치라고 하는 거야. 아빠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하는 김치지. 우리 큰딸도 열무김치 맛 좀 볼래?"
"조금만 줘봐!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엄청 매울 것 같아."
"이게 생각보다 맵지 않아. 사과즙과 배즙까지 넣었거든. 맛이 어때?"
"응 매콤하지만 달착지근한 맛이 감도는 것 같아. 내일 아침에 열무김치 이것도 밥상 위에 올려줘. 밥이랑 먹으면 맛이 참 좋을 것 같아."
"큰딸도 아빠랑 입맛이 같구먼. 그래. 그 때문에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거야."

아빠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하는 김치지. 우리 큰딸도 열무김치 맛 좀 볼래?
▲ 열무김치와 막걸리 한 잔 아빠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하는 김치지. 우리 큰딸도 열무김치 맛 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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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열무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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