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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빚 얻어 집 사라 정책' 이미 위험수위

 MBC 새 월화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네 주인공들. 왼쪽부터 김승우(장명훈 역), 이다해(장미리 역), 강혜정(문희주 역), 박유천(송유현 역).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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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짝패>가 끝난 이후 무난히 시청률 1위 자리를 이어받은 MBC <미스 리플리>가 방영 2주차에 들어서는 KBS <동안미녀>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로맨틱 코미디물에는 일가견이 있는 윤은혜, 강지환, 두 톱스타를 내세운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공감을 얻지 못하는 캐릭터와 개연성 없는 이야기 전개로 꼴찌로 밀려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특히 지난주 강렬한 인상을 주며 기세 좋게 시작을 알린 <미스 리플리>가 2주차에 들어 속력을 내긴 커녕 2위로 밀려난 것은 꽤나 뼈아픈 일이다. 물론 전반적인 드라마의 시청률 하락으로 1, 2위의 차이가 크지 않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낙관하기엔 이번 주 <미스 리플리>가 보여준 내용물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드라마 시작 30분만에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미스 리플리>는 빠른 드라마다. 어느 정도로 빠르냐 하면 드라마가 시작되고 정확히 30분 만에, 남자주인공 송유현(박유천 분)은 여자주인공 장미리(이다해 분)를 사랑하게 된다. 첫 만남에, 그것도 자신에게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미리에게 유현은 사랑을 느끼고, 그 순간부터 그의 구애가 시작된다.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는 친구의 물음에 유현은 "사람 좋아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되냐?"고 반문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드라마라면 왜, 그리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청자가 납득을 하고 그의 사랑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미스 리플리>는 이 "왜?"라는 질문을 극중 유현의 말처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원천봉쇄한다. 유현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나완 다르게 자기주장이 선명한 사람처럼 보인다"며 마음에 두고 있는 그녀를 위해 대답한다. 그러나 자기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여자라서 매력을 느끼기엔 아직 유현과 미리 사이에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만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리의 이야기로 넘어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미스 리플리>는 주지하다시피 한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한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그 거짓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 위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첫 회 70분 분량을 통째로 미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그리는 데 할애하여 왜 그녀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당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너무 쉬운 미리의 위기 극복 과정

 우연히 들은 직원들의 이야기로부터 미리는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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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미리는 입양된 후에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무능력한 양부 탓에 대학도 못가고 술집에 나가야 했던 그녀는 가까스로 양부의 빚을 갚고 술집을 빠져나오지만 고졸인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그녀가 직장을 얻기 위해 동경대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대목에서 시청자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납득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거짓말로 회사에 들어온 미리에게 시련이 닥칠 것이란 건 자명한 일. 그런데 미리가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드라마는 허술한 구성으로 시청자의 맥을 빠지게 만들었다.

동경대 졸업장 원본이 필요한 그녀 앞에 동경대 출신의 고아원 친구 문희주(강혜정 분)가 나타나고, 그녀의 집에서 졸업장을 발견해 졸업장 위조에 성공한 일은 다소 찜찜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렇지만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구조조정의 대상자가 된 미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극비보안이 걸려있다는 일본 총리 딸 유우(지연 분)의 객실정보는 담당자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는 미인계를 써 얻어내고,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정보는 그녀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의 여직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우는 일면식도 없는 미리로부터 "나 역시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듣고는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너무나 쉽게 열어버린다.

게다가 미리는 무슨 천운을 타고난 건지 중요한 순간 중요한 정보를 우연히 엿듣게 되는 데는 귀신이다. 유우가 사라져 호텔이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를 만큼 위기라는 사실은 옥상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직원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고, 호텔 직원들의 학력위조 파문과 관련한 특별조사팀의 정보를 모두 명훈이 갖고 있다는 정보 역시 호텔 출입문 앞에서 우연히 직원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다.

빠르기만 해서는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미스 리플리>는 빠른 드라마다. 이제 겨우 4회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유현은 미리를 사랑하게 됐고, 미리는 두 차례 위기를 극복했으며, 명훈은 미리와 키스했다. 빠른 호흡을 가졌다는 것은 때론 드라마에 있어 큰 장점이 된다. 시청자가 지루하다고 느낄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순 있어도 그 다음을 보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하지는 못한다. 미리는 극의 주인공이고, 따라서 시청자는 그녀가 어떤 거짓말을 해서든 그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또 다른 거짓말을 준비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건 과연 그녀가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그 위기란 게 결국 우연에 우연이 거듭되어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 극에 집중하며 잔뜩 가슴을 졸였던 시청자는 허탈해하게 되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 다음 회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지난 주 1위로 출발했던 <미스 리플리>가 <동안미녀>에 추격을 허용한 것은 3회에서의 미리의 위기 극복 과정이 허술했기 때문이 아닐까.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결국 <미스 리플리>는 미리의 드라마다. 극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주인공들은 그녀의 보조적인 존재일 뿐이다. 결국 미리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으면 이 드라마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 리플리>는 빠르게 달리는 것을 잠깐 멈추고 헐거워진 이음새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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