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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국회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검찰은 참으로 희한한 반응을 보였다. 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이던 중수부 검사들이 갑자기 수사 대상자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자신들도 퇴근한 것이다. 이날 밤 중수부의 우병우 수사기획관, 노승권· 윤석열 과장, 윤대진 검사 등 주요 수사진 몇 명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의 한 술집에 몰려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과연 그들이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궁금해진다.

 

지금부터 두 달 남짓 전인 4월 2일, 경기도 용인 법무연수원에서는 전국 검사장급 이상 간부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숍이 열렸다.

 

<한겨레신문>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날 모임에서 김준규 검찰총장은 회의장에서 검사장들에게 회의 자료와 함께 난데없이 봉투를 나눠 줬다고 한다. 봉투 뒷면에는 '업무활동비, 검찰총장 김준규'라고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는 각각 200만 ~300만 원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날 검찰총장이 특수활동비에서 지출한 금액은 총 9800만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참고로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올해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 책정액은 189억 원이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이 회의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건 등 국회 사법개혁특위의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한 대응책이 논의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검찰의 워크숍은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긴급 사태가 발생하자 조직 방어를 위해 패밀리가 긴급 소집되고, 보스는 두둑한 격려금을 주며 내부 결속을 다진다. 총장의 특수활동비라는 명목도 영화의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보스는 자기 돈으로 봉투를 채우지만 검찰총장의 봉투는 우리가 낸 세금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

 

한국 검찰의 권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한국처럼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이런 막강한 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검찰은 법무부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법무부를 온통 장악하고 있는 것은 검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는 뇌물로 떡값을 받아도, 자동차를 받아도, 심지어는 성상납을 받아도 유야무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검찰은 폭력정권에는 약했다. 하지만 민주정권에는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검찰은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검찰은 대통령과도 맞장을 떴다. 물론 잇속이 맞아떨어지는 정권에는 알아서 협조를 하는데 이명박 정권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대검 중수부가 '반부패 엘리트 수사기관'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중수부가 기소한 사건의 1심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보다 무려 몇 십 배나 높다고 알려졌다.

 

이런 중수부를 폐지하는 것은 사법개혁의 본질도 아닌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제도 하나를 약간 개선하자는 것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반발하는 데에는 시대착오적인 오만과 함께 조금만치도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선제 공격적 계산이 깔려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하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먼저 내 목을 치라"고 대들었던 것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 검찰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당시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이번에도 저축은행 수사를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크게 위축되었던 검찰은 검찰총장이 나서 중수부 직접 수사를 자제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2010년 수사를 한 건도 맡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에서 중수부 폐지안이 다시 거론되자 갑자기 중수부가 저축은행 수사팀으로 나선 것은 실로 수상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이른바 '빨대'를 동원하여 교묘하게 언론에 흘렸듯이 이번에도 마치, '수사가 정치권을 겨냥하니까 중수부를 폐지하려 한다'는 식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는 권고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당황스럽다'며,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또는  "또 다른 검찰 간부 역시 '저축은행 수사에서 정치인 이름이 나오는 이때, 국회가 중수부 폐지 법제화를 들고 나온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고 반응했다"는 식의 출처미상 보도가 여기저기 유수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불법파업 "직장폐쇄하고 공권력 투입해라"

 

아무튼 법의 이름으로 소환한 수사 대상자들을 무단으로 귀가시키고 수사를 중단한 채 퇴근해 버린 중수부 검사들의 행위는 전혀 사법기관답지 않은 짓이다. 이런 행위는 검찰 스스로 개혁 대상임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이런 무도한 행위의 책임은 중수부를 방어하라고 격려금까지 지급한 검찰총장부터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누리꾼들과 트위터들은 검찰의 행위를 '파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그렇다면 7000만 원 연봉자들이(부풀려진 금액이지만) 파업을 했다고 비난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검찰의 행위를 뭐라고 평가할지 궁금하다. 아울러 검사들의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국민이 부쩍 늘었다.

 

누리꾼들은 검찰의 수사 중단 행위에 신랄한 조롱을 퍼붓고 있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국민들에게 보여 온 결과라는 게 대검 중수부 폐지이다. 월요일의 출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법파업으로 엄단해야 한다. 파업 찬반 투표도 없었고 노동부에 신고도 안 했으니 불법파업이다. 법과 정의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 공정사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다음> 아고라 떡장수)

 

"검찰, 중수부 폐지 반발…부산저축銀 수사 중단, 자기 부서 폐지 계획에 수사 중단이라? 결국 저축은행 비리수사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조직을 위한 것이었다고 자백하는군. 범죄를 보고도 수사 안 하는 검사가 검산가?" (조능희 문화방송 피디(@mbcpdcho), 한겨레 보도)

 

"검찰파업 대응방안 : 직장폐쇄, 농성현장 대포차로 밀어버리기, 용역투입, 업무복귀 검사들에게 '나는 개다' 세 번 복창시키기, 월급 등 재산 가압류하기...할 게 너무 많습니다."(백찬홍(@mindgood) , 한겨레 보도)

 

검찰이 또다시 '내 목을 치라'고 협박한다면

 

우리는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나눈 대화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검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설득에 논리로 대응하지 못하고, "(대학)학번으로 따지자면 대통령은 나와 동기"라고 하는가 하면, "예전에 검찰에 청탁전화를 하지 않았느냐?"며 폭로전까지 펼쳤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응대했다. 검사들은 막판에는,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지 않나. 우리 검찰을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 안아 달라"고 호소하는 등 다양하게 엽기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우리는 이 대화 후 나온 유행어를 알고 있다.  1.아버지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자식을 빗대는 말, 2.학번과 학벌을 들이대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인간을 일컫는 말은? 정답은 물론 '검사스럽다'이다.('검새스럽다'고 조금 바꿔 표현하기도 한다.)

 

검찰은 3일 국회의 중수부 폐지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그리고 현충일인 6일에 김준규 검찰총장은 다시 검찰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회의를 열고 검찰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검찰개혁은 지난한 일이다.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검찰개혁의 의지가 유달리 강했던 노무현 정부도 검찰의 본질적 개혁은 고사하고 기껏 중수부 하나 폐지하는 일을 끝내 관철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들은 철옹성이다. 또한 정권은 다소간 검찰을 이용하려는 속성이 있고 정치인은 아무래도 검찰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검찰 개혁은 시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6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번의 송광수 총창처럼 '먼저 내 목을 치라'는 식으로 협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또다시 그들의 협박에 굴복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는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터이다. 


태그:#검찰, #중수부, #검사와의 대화, #송광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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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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