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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시절,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학생들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교련이라는 이름의 군사훈련을 시키던 때가 있었다. 그런 군사훈련을 연상시키는 안보교육이 전북 진안의 한 초등학교에서 치러졌다.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드높이고,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 시도되었던 유사 군사훈련과 안보교육은 민주화의 열망과 투쟁 속에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작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교육 강화 지시 이후 거세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폭력적인 안보교육으로는 결코 국가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을 갖도록 할 수 없으며, 도리어 왜곡된 군사주의, 국가주의의 폐해를 낳을 것"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총기 체험, 꼭 필요한가

 

 

지난 5월 31일 진안의 ㅈ초등학교에서는 '호국보훈의 달 안보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제 103연대 1 대대장 김아무개 중령을 강사로 초빙해 군인 아저씨들이 하는 일 알기, 북한 바로 알기, 나라사랑하는 방법 알기, 여러 가지 총, 박격포 살펴보기, 서버이벌 총 체험하기 따위의 주제로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실제 무기를 앞에 두고 아이들은 군인들로부터 총과 포를 장전하고 쏘는 법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게다가 서바이벌 총으로는 직접 과녁을 쏴보기도 했다니 아이들로서는 가히 전쟁놀이의 완성판을 체험한 셈이다.

 

지난달 25일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방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안보교육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한다.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들을 대상으로 안보영상물을 배포한 데 이어 올해 20만 명의 학생들에게 군부대 시설을 방문하게 하여 안보교육을 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군인을 학교 강사로 참여시키고, 교사들을 군부대 체험에 참여시키겠다는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인권과 평화,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민주시민의 양식을 교육시켜야 할 교육의 장에서 낡고 왜곡된 안보관을 강압적으로 주입시키려는 이 같은 일련의 시도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군사 활동 참가 적극 반대

 

안보교육에 참가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물건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실감 할 수 있었을까? 서바이벌용이라곤 하지만 총을 직접 쏴 보고 너무 흥분한, 상기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른들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어떤 이들은 장난감 무기조차 생명을 상하게 하는 무기의 상징성을 두려워해 아이들에게 사용을 금하기도 한다는데, 천진난만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손에 쥐고 흔들어대는 그 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서운 살상무기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경찰이 천안함 사건 홍보동영상을 학교에서 상영하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군이 나서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보를 주제로 한 글짓기와 그림그리기, 천안함 사건 재연과 경비작전 체험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아동,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의 안보교육 강화는 아동·청소년의 인권에 관한 기본적인 근거인 '유엔 아동권리 협약'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행위이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은 "아동은 국제연합헌장에 선언된 정신 특히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되어야"하며, 아동교육은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 평등 및 우정정신에 입각한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협약은 아동의 군사 활동 참가를 매우 적극적이고도 강하게 배격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991년 이러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가입국으로서 협약의 규정들을 이행할 책임이 있다.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성명서 중

 

동족상잔의 비극이 가신 지 60년이 지났다. 이제는 우리의 주적에 대한 무분별한 적개심을 일깨우기에 앞서 평화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강성한 무력만이 평화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리라.

 

전쟁광이나 군국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생각과 행동을 버젓이 교육의 현장에서 펼쳐내는 이들의 저의가 새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생명의 존엄함과 평화의 소중함이 안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가치인지는 안보교육을 실시하는 교육자들이 좀 더 숙고할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젠 평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의 역사에는 싸우지 않고 강동6주를 되돌려 받은 서희 장군이 있다. 지구촌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애 쓰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폭력이 야기하는 비참함에 대해, 그리고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지구촌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우리 아이들은 시간이 부족하다.

 

총칼은 최후의 선택이며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더더욱 꽃을 피우듯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하고 피워내야 할 어린 아이들이 일부러 찾아서 배울 가치는 분명코 아니리라.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안보도 소중한 가치임엔 틀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들이 총을 들고 안보를 이야기하는 나라라면 그 미래를 밝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더구나.


태그:#안보교육, #유사 군사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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