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앤드류 사몬.
 앤드류 사몬.
ⓒ 앤드류 사몬

관련사진보기

앤드류 사몬은 주한 영국 언론인이다. 그는 영국 런던대학에서 동양학을 공부했고 한국에 관한 수많은 기사와 몇 권의 책을 썼다. 나는 그를 몇 년 전 한 콘퍼런스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내 직장생활의 대부분이 국제협력과 국제홍보 분야였기 때문에 나는 업무상 외국 언론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내가 진실화해위윈회(이하 진실위)에서 근무할 당시 나는 앤드류에게 진실위 활동상황을 취재해 기사화하여 외국 언론에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마다 내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고 그 결과 진실위 활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영국 기자이지만 한국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2009년 앤드류는 한국전쟁을 다룬 책 <마지막 한 발 : 1951년 임진강에서의 영국군(To the Last Round : The Epic British Stand on the Imjin River, Korea, 1951)>을 썼고 이 책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한국 최고의 책 10' 상을 받았다.

또 2010년엔 한국 국회에 의해 한국전쟁문학에 대한 '한류'상 등을 받기도 했다. 앤드류는 이 책 '감사의 글'에서 나를 언급했는데, 아마 내가 한국현대사에 대해 몇몇 자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앤드류는 지난 4년에 걸쳐 쓴,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책 <초토화, 흑설 : 한국전쟁에서 영국과 호주(Scorched Earth, Black Snow: Britain and Australia in the Korean War, 1950)>를 6월 1일 발간했다. 그리고 같은 날 주한영국대사관에서 발간기념 기자회견을 했다. 다음은 6월 1일 앤드류와 주한영국대사관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60년 지난 지금도 참전용사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 동기가 있었나? 이 책을 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1950년 한국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지금도 아주, 특별히 정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예를 들면, 오늘날 중국을 보자. 지금 중국은 세계의 경제 강국이다. 그러나 그전에 중국은 군사강국이었다. 그러한 중국의 지위는 1950년 겨울 북한 산악지역의 전투에서 얻은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00년 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중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세계무대에 정말 호랑이로 등장한 것이다.

북한의 경우를 보자. 오늘날 북한은 지상에서 가장 경직된 국가다. 왜 그런가? 1950년 겨울, 63만 명의 한국인들은 유엔군이 무너지자 북한을 탈출하고 월남했다. 탈출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래서 그 대탈출의 의미는 오늘날 북한이 세계 최후의 공산국가라는 것이다.

 [Scorched Earth, Black Snow] 책 표지.
 <초토화, 흑설(Scorched Earth, Black Snow)> 책 표지.
ⓒ Aurum Press

관련사진보기

미국을 보자. 2차세계대전 후 미군은 북한에서 가장 큰 패배를 당했고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미군 2연대 보병들의 거의 전부가 구누리에서 전사했다. 31연대 전투팀은 장진호에서 전사했다. 그 후 미군은 38선 이북에 대대적 공격을 감행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군은 북한에 대한 공격을 꺼린다. 내 생각엔 이러한 이유가 1950년 겨울 미군이 겪은 악몽과도 같은 소름끼치는 경험에 따른 학습효과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보자. 1950년 6월 김일성이 침략했을 때가 한국이 주도적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나 그런 기회의 창문은 1950년 12월 유엔군이 북한군에게 패배함으로써 닫혀버렸다.

그러나 내게는 위에 언급한 한국전쟁의 정치군사적 의미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문제다. 1950년 한국에서 발생한 일은 엄청난 인간의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엄청난 말 못할 사연을 만들어냈다. 1950년 한국전쟁에 관해 미국 역사가들은 많이 다루었지만 당시 영국인과 호주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은 드물다."

- 이 책에서 "2차세계대전 후 영국군인들의 희생이 가장 컸던 전쟁이 한국전쟁"이라고 했다. 몇 명의 영국군들이 생명을 잃었나?
"한국전쟁 중 생명을 잃은 영국군인은 총 1087명이다. 이 숫자는 그 후 일어났던 전쟁에서 사망한 총 영국군인 희생자 숫자 783명보다 많다(포클랜드전쟁 255명, 이라크전쟁 179명, 아프가니스탄전쟁 349명). 또 호주군의 경우는 베트남전 10년 동안 512명이 생명을 잃었지만 한국전쟁에서 불과 3년 만에 340명이 생명을 잃었다."

- 이 책을 쓰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생존자 90명과 직접 인터뷰를 했다고 들었다. 그들의 국적은 어떻게 되나? 또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생존자가 몇 분인지 아는가? 참전용사 증언 중 소름 끼치는 이야기 몇 가지만 말해 달라.
"인터뷰한 참전용사는 국적별로 한국인 8명, 미국인 5명, 호주인 18명, 영국인 59명이었다. 정확한 생존자 수는 모르지만 매일 매일 돌아가시고 있다는 것은 안다. 한국 참전용사들도 마찬가지다. 후손들을 위해 전쟁을 직접 겪은 분들의 증언은 기록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북한군의 잔학상, 남한군의 잔학상, 유엔군의 잔학상 등. 내 책에서 나는 이러한 잔학상을 가감 없이 그대로 썼다. 내가 인터뷰한 한국인 참전용사들 중엔 전쟁이 끝나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밤에 불을 켜고 주무시는 분이 많다. 불을 끄면 악몽에 시달려서 지금도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 앤드류 사몬(오른쪽)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 앤드류 사몬(오른쪽)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 앤드류 사몬

관련사진보기


민간인 죽이고 집 부숴도 아무 제약 없는 '무법천지'

- 한국전쟁 중 많은 잔학상이 있었다. 부상자를 사살한 경우, 전쟁포로를 학살한 경우, 민간인학살 등. 영국이나 호주 참전용사가 이런 장면을 목격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소개해 줄 수 있는가?
"2010년 4월 나는 영국인 참전용사들과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가평지역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함께 탔다. 그중 한 분의 이야기는 이렇다.

1950년 11월 북한의 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 참전용사의 전우가 한 북한 노인을 총으로 사살했다. 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총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그 노인을 사살한 것이다. 당시 이런 군인들의 행동을 제재할 아무런 사법기구가 없었다고 한다. 군인들이 맘대로 민간인을 죽이고 집을 파괴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그 참전용사는 그런 무법천지 상황에 분노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미삼아 그저 민간인을 학살하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군대 내 사법정의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아주 아주 잔인한 전쟁이었다. 인종차별주의로 물들은 전쟁이었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일본제국주의의 35년 통치에서 해방된 두 국가 간에 자행된, 극도로 잔인한 전쟁이었다.'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두 참전용사들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고 그저 침묵으로 우리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영국인 참전용사는 메모가 적힌 종잇조각을 60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그 종잇조각은 이 영국인 참전용사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과 같았다. 그 종잇조각엔 두 아이들의 아버지인 한 한국인이 1951년 겨울 이 참전용사에게 영어로 쓴 간략한 감사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참전용사는 1950년 겨울, 두 한국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메모를 읽었는데 그 당시 그 한국 아이들의 아버지가 쓴 영어가 정말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콩글리시였다. 그러나 이 메모를 60년 동안 간직하고 있는 이 영국인 참전용사에게는 이 종잇조각에 적힌 글이 아주 감동적이 글이었고 그는 이 메모를 보물 다루듯이 했다. 전쟁은 인간의 극악한 면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인간의 지고한 선도 드러나게 하는 것 같다."   

- 책을 보면 영국군은 불과 1주일 전에 지시를 받고 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런데도 27여단은 혁혁한 공을 세워서 한국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41특공대도 같은 이유로 미국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27여단은 낙동강전투에서 후퇴하지 않고 승리한 공으로 표창을 받게 되고, 41특공대는 장진호전투에서 불굴의 의지로 승리하여 표창을 받는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영국군에서 27여단과 41특공대가 해체되고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단과 특공대에게 수여된 한국과 미국 대통령의 훈장을 더 이상 가슴에 달 군인들이 없다.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 앤드류 사몬(Andrew Salmon) : 한국 관련 기사를 Forbes, Monocle, The South China Morning Post, The Washington Times 등지에 쓰고 있는 영국언론인이다. 그의 저서 <마지막 한발 : 1951년 임진강에서의 영국군, To the Last Round: The Epic British Stand on the Imjin River, Korea, 1951) 은 2009년 햄프셔도서관과 오스피리 출판사에 의해 '2009년 베스트 군사책' 상과 2010년 월스트리저널에 의해 '한국 최고의 책 10' 상을 받았다. 2010년 앤드류는 한국 국회에 의해 한국전쟁문학에 대한 '한류'상을 받기도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