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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는 세이무어 마틴 립셋이 강조한 것처럼 개인주의적이며 평등주의적인 신조를 가지고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사회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처럼 흑인들은 미국과 같은 예외주의 국가의 예외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자유방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데 반해 유럽의 노동자처럼 불평등 축소를 위해 조직화되고 집단적인 해결책을 선호한다. 이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이 계급적으로 차별을 받아왔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립셋이 말하는 것처럼 인종적 부정의와 카스트적 구분이 국가의 구성원리에 모순으로 작용하는 미국의 딜레마이다.

1930년대를 배경로 한 <앵무새 죽이기>와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크래쉬>는 모두 미국의 인종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필자는 크래쉬를 보면서 처음 느낀 것은 죄 없는 흑인이 결국에 억울하게 죽음에 이르는 <앵무새 죽이기>의 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운동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문을 목적으로 흑인 여성의 몸을 더듬는 여성의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권에 대해서는 느슨한 사회고 총기 소유 등으로 인해 경찰이 용의자에게 권한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별다른 물증 없이 흑인 여자를 성추행하고 남편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모습은 미국의 인종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작품의 난점은 인종문제가 나타나는 정치사회경제적인 요인이나 역사적인 요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문제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눈감는 모습은 모두 개인의 본성으로 환원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무고한 흑인에 유죄판결을 내리는 배심원들의 적대적인 태도들이나 흑인을 위한 정의로운 변호사의 모습은 인간 자체의 문제이지 사회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크래쉬>도 마찬가지로 선한 경찰과 인종주의자인 경찰이 왜 그런 태도를 가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제 다른 얘기로 돌려보자. 행위자는 자율적으로 선택이 가능하지만 하지만 행위자의 선택은 구조에 의해 제약된다. 따라서 인종문제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조가 행위자의 선택을 유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구조가 행위자의 특정한 태도를 만들어내기에 구조에 대한 개혁 없이는 행위자의 선택의 유인구조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두 작품처럼 현실의 문제를 개인의 본성이나 태도 등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영웅주의와 계몽주의다. 다른 사람처럼 차별 의식을 가지지 않는 영웅과 우매한 다수에 대한 계몽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가 우매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은 그 행위가 당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유인하고 개인의 선호를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외국인 100만 시대이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직장에선 저임금과 각종 차별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는 담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민운동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담론은 "편견을 없애자"는 식의 의식개혁적인 논의가 과반수다. 물론 의식개혁적 논의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차별을 행하는 행위자의 선택을 유인하는 구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앵무새 죽이기>와 <크래쉬> 그리고 한국사회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인종차별을 합리적이라고 전제했다고 해서 도적적으로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의 원인으로는 인간의 악한 본성도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원인을 찾아버리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다수 행위자의 행동과 같은 특정한 행위자의 선한 모습들을 단순히 선악적 관점에서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와 <크래쉬>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종문제에 대해서는 본성이 아닌 행위자의 선택을 유인하는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열린책들(2015)


크래쉬 - 성장과 불황의 두 얼굴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이주형 옮김, 한국경제신문(2012)


태그:#앵무새죽이기, #크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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