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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26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2009년 2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모습.
▲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장 받는 은진수 위원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26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지난 2009년 2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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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015년 9월 14일 오후 2시 52분]

대통령 최대 약점 막아낸 명실상부한 BBK 대책팀장

2008년 1월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

2007년 이명박 캠프의 법률지원단장이 일부 기자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는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전년까지 '이명박 대통령'을 세일즈했던 캠프 사람들이 2008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기위해 자신을 세일즈하던 시기였다.

그날 자리에 나온 사람이 바로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에 공인회계사-행정고시-사법시험 '3관왕'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던 그는 2004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탄핵 역풍을 맞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었다.

2009년 이 대통령이 감사위원에 임명하고, 이번에 부산저축은행 로비 스캔들에 휘말린 후에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불리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핵심측근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진짜' 핵심측근들은 공천 걱정을 접고 지역구를 누볐지만 그는 그 정도의 중량감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MB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되던 BBK 사건 의혹에 대한 당 안팎의 공세를 막아낸 것이 은진수씨로서는 내세울 만한 '공적'이었다. 그는 이명박 캠프의 명실상부한 BBK 대책팀장이었다.

탄력을 받은 은씨는 '이명박 정부를 만든 힘'이라고 적힌 예비후보 명함을 만들어 새로운 지역구(서울 강동갑)에 도전했다.

"뭔가 많이 처먹은 것 같은 사람에게 공천 주면 안돼"

3년 전의 은씨는 정치인 초년생답게 '깨끗한 정치'를 유독 강조했고, 그것이 그와의 만남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친박과 친이의 공천 갈등으로 시끄러웠는데, 은씨는 나름대로 명쾌한 해법을 내놓았다.

"공천의 제1기준은 도덕성에서 문제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 야당은 몰라도 여당에선 검증할 방법이 많다. 검찰과 국정원에 공직에 나가도 될 만한 사람인지 물어볼 수도 있고…. 친박이든 친이든 도덕성 문제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자는 거다. 이명박 대통령을 도와줬다고 해서 지저분한 사람이 공천 받고 국회의원 되면 국민이 좋아하겠나? 뭔가 비리가 많은 것 같은데, 뭔가 많이 처먹은 것 같은데 쉽게 드러나지 않고 지역구를 도는 사람에게 공천을 주면 안 된다는 원칙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

특히 은씨는 당내 소장파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을 거론하며 "그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에는 '소금' 역할을 하는 40대 지도자가 없다"고 개탄했다.

"소금은 짜야 맛이 난다. 비토할 건 비토하고 아닌 것은 아니되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하고…. 나는 이런 한나라당이 굉장히 건강하지 못한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이 끝난 후 7월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대표 뽑아야 하는데, 기껏해야 나오는 이름들이 정몽준·이재오·박근혜인데 다 옛날 사람들이다. 5년 후 재집권을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치고 나와야 하는데 40대 지도자가 없다."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나라 걱정'을 했다. 은씨는 "한나라당 의원들 대부분의 머릿속에는 자기 이익이 80~90%를 차지하고 있고, 국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기 같은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야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나라의 운명을 먼저 걱정'한 그가 3년 전 국회의원이 됐다면? 

은씨는 "모 월간지에 고정칼럼 쓰는 역술인이 나의 운세를 봐준 적이 있는데 내가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그가 '날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운세만 묻는데 너는 황당한 놈 아니면 아주 잘될 놈'이라고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뭔가 큰일을 해보겠다는 야심이 읽혔지만, 그는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와의 공천 경쟁에서 이기고 18대 총선에서도 당선된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이 이듬해 부인의 선거법 위반으로 내년 총선에서 출마 자격을 잃게된 것도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은진수씨는 2009년 2월 감사원 감사위원(임기 4년)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탈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날 즈음 동반 퇴진할 수 있었을 터인데, 부산저축은행 스캔들 연루 정황이 드러났다. 수천만원 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오면서 그가 몸담았던 감사원과 임명권자(대통령)의 얼굴에 먹칠을 한 꼴이 됐다. 그의 몰락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만만치가 않다.

만약 은진수씨가 MB의 다른 측근들처럼 3년 전 국회에 입성했다고 한들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까?

"여러분(기자)들이 정치인들 많이 봤겠지만 저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제가 남을 짓밟지 못해서 정치에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지만, 그가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일 기회가 올 것같지는 않다.


태그:#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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