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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영씨가 찍은 아들 사진입니다. 참 고운 순간입니다.
▲ 인상이 송성영씨가 찍은 아들 사진입니다. 참 고운 순간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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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봄이 너무 아까워."

중학생 딸은 중간고사 준비하는 동안 봄이 깊어가고, 시험이 끝나면 짧은 봄도 떠날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런 딸을 어르고 달래 진득하니 공부하게 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이 끝나자 봄꽃도 시들어 버렸다.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찬란했던 봄이 가버렸기 때문일까. 딸에게 "아직 꽃이 피어 있으니 밖에 나가보라"고 해도 이젠 나가지 않는다. 이팔청춘 딸의 봄이 그렇게 가버릴 때, 저 남녘 전남 고흥에서 자라는 두 아이 송인효·송인상이 눈에 밟혔다. 그들은 봄과 함께 성장했으리라.

"사람도 그냥 놔 놓으면 잘 큰다는데...."

내 아이들이 도시에서 학교와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라고 있다면, 인상이와 인효는 땅에 심어진 콩처럼 줄기 시퍼렇게 커가고 있었다.

"송아지도 놔먹이면 잘 큰다. 사람새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모친에게 조언으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험한 세상이 겁이 나서, 학교에서는 혹 다른 애들보다 뒤처질까봐, 자연 속에 풀어놓고 키우지 못했는데 '촌놈' 송성영은 두 아이를 '놔' 놓고 달덩이처럼 잘도 기르고 있다. 아마도 인상이와 인효는 "봄이 교실 밖에서 와 나와는 상관없이 가 버렸다"고 아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송성영이 쓴 <촌놈, 쉼표를 찍다>(삶이보이는창)를 읽었다. 시골에서 삶을 일구는 송성영 부부와 두 아들 송인효·송인상 이야기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속에서 한 아이가 송성영에게 묻는다.

"농부 아자씨, 뭐해요?"
"응, 똥줄나게 풀 뽑고 있다."

오마이뉴스 송성영 시민기자가 쓴 <촌놈, 쉼표를 찍다>
 오마이뉴스 송성영 시민기자가 쓴 <촌놈, 쉼표를 찍다>
ⓒ 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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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역시 늘 '똥줄나게' 바쁘다. 이른 아침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는 야삼경이 다 되어도 올빼미처럼 눈을 뜨고 뭔가를 한다. 몇 개의 숫자와 알파벳을 기억해야만 쓸 돈을 찾고, 내 집의 문을 열 수 있으며, 편지를 받아 볼 수 있다.

머리는 세월 갈수록 단순해지는데 내 삶은 갈수록 복잡해지니 허방 짚는 날이 많다. 아침에 야물게 바꾼 대문 번호키의 암호를 잊어버려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

책 속에서 빠진 이를 들고 민망해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는 지은이 송성영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다. <촌놈, 쉼표를 찍다>를 읽은 후 양치질을 너무 신경 써서 오래 하는 바람에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가족들의 재촉을 받고 있다.

송성영이 내게, 그리고 책으로 말하는 핵심이 "이 관리 잘 하슈. 내 꼴 나지 말고"는 아니다. 본질을 놔두고 엉뚱한데 꽂힌 이유는,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을 따라 하기 쉽지 않다는 일종의 자괴감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은 시골에서 잘 사는 송성영에게 "그렇게 마음 내키게 사는 당신은 앞니도 없잖아요, 우리는 도시에서 복닥거리며 살아도 앞니는 있어요" 하고 자랑하고 싶은 거다. 뭔가 하나라도 송성영보다 더 가진 게 있어야 도시에서의 이 복잡하고 바쁜 삶을 위로하며 살 것 아닌가.

"오고 싶으면 오고, 살고 싶으면 사세요"... 송성영의 유혹

탈탈 털고 일어나 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기에는 가진 것과 놓기 아까운 것이 너무 많다. 물 내리면 '쏴~' 하고 내려가는 뒤끝 없는 수세식 변기를 어떻게 두고 떠나며, 호흡 한 번 안 흩뜨려도 순식간에 20m를 올려 주는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놓아준단 말인가. 또 아이들은? 경쟁 속에 자라야 잘난 사람이 되어 쉽고 편하게 밥벌이하며 살지. 아, 두고 떠나기에 아쉽고 각별한 것들이 도시에는 참 많다. 그동안 곁에서 너무 살뜰히 도와 구속한 문명의 이기를 어떻게 두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별 시답잖은 것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사네" 하며 훌훌 털고 자연으로 간 지은이가, 열심히 곁눈질하면서 발 하나만 시골에 담고 있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난 대전에 살면서 경북 상주에서도 오미자 농사를 짓는다.)

"오고 싶으면 와. 살고 싶으면 살아."

내 엄마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촌년"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을 평생 안 보고 살아도 하나도 아쉽지 않고, 그 후 오랫동안 곱씹으며 원망하고 흉보고 욕해도 하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엄마에게는 상처가 된 말이다. 짐승은 물론 사람도 자연에 방목할 때 더 튼실히 잘 자란다는 걸 신조로 삼고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촌사람"의 당당함을 지니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송성영은 스스로 '촌놈'이 되었다. 우리 엄마가 이 말을 들으면 "배운 놈이 공부를 너무 해서 머리를 살짝 다쳤나 보다"고 하실 거다. 그리고 "야야, 너는 그런 사람 따라 하면 안 된다. 그 사람 근방에도 가지 마라, 닮는다"고 하실 거다.

송성영씨의 두 아들 송인효·송인상
 송성영씨의 두 아들 송인효·송인상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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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삶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면 송성영을 따라 하고 싶다. 나도 그를 따라 쉬어가며 흐르고 싶다. 언젠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이들 방학인데 쉴 겸 해서 갈게."
"여기는 화장실도 불편하고 씻기도 어렵다. 니 사는 데가 더 편하니, 거기서 쉬어라."

나는 언제쯤 욕망을 내려놓고 '촌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언제 귀농한다고 할지 몰라 요주의 인물이 되어 버린 내게 엄마는 볼 때마다 도시가 얼마나 좋은지, 사람을 얼마나 폼 나게 하는지 이야기하신다. 시골 사람이 어디 가서 뭘 물어도 대답도 안 해주는 도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촌사람이 얼마나 무시당하며 사는지, 당신의 손과 무릎을 내보이며 시골 삶이 얼마나 지난한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러 주신다.

송성영의 가족 사진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사람 살이 여기나 거기나 던적스러운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그들의 얼굴은 "그래도 여기가 거기보다 나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시골살이도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어 이웃과의 분쟁은 더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돈이 될 것 같으면 온갖 것을 다 사가는 사람들이, 돈이 되면 모든 것을 다 팔아먹게 시골 사람들을 부추겨 반 백년 넘게 자란 마을 앞 나무까지 캐 갈 정도이니 시골이라고 사나운 모습이 왜 없겠는가.

그래도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곳은 살 만한 곳이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는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흐르는 강을 파헤쳐 온갖 생명을 죽이더라도 "내 일 아니다"고 무심히 지나치는 곳이 아닌가.

오늘도 나는 도시에서 일하고 먹고 살면서 이만 정성스럽게 닦는다. 욕망을 비워내지 못하면 나는 결코 귀농도 귀촌도 할 수 없을 거다. 욕망이 내 한 발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 나는 200리 길을 오가며 '반농반도시인'으로 살고 있다.

"오래 살려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해. 애들 공부시키려면 학교 많은 곳에 살아야 해. 돈 잘 벌어 남 살듯이 살려면 도시에서 살아야 해···."

엄마가 한 말은 결국 내 속, 내 욕망의 소리임을 안다. 나는 언제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20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내 밭과 땅에 납작 엎드린 시골집으로 온전히 돌아갈까?

지은이가 새 삶을 일구고 있는 고흥에 한번 가보고 싶다.


촌놈, 쉼표를 찍다 -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명랑 가족 시트콤

송성영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1)


태그:#송성영, #촌놈,쉼표를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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