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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신조어 중에 '아오안(out of 안중(眼中)'이라는 말이 있다. 아내폭력은 우리에게 '아오안'이었다. 다시 말해 관심 없는 이슈다. 그럼에도 '아내폭력'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2011년을 맞아 새롭다(新)라는 접두어를 붙여본다. 주제는 식상하지만 아내폭력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는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일, 집안일, 고리타분한 일,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의 일, 사회적 범죄, 반드시 해결해야할 일"로 새롭게 거듭나길 바란다... <편집자말>

올해 유난히도 남편의 잔인한 아내폭력으로 숨진 여성들의 사건이 많이 보도됐다. 만삭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의사 남편에 이어 지난달 21일에는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명령을 받았던 남자가 아내를 살해하고 투신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피해 지원 시스템의 문제와 과제' 토론회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1990~2002년 사이 13년 동안 발생한 살인사건을 재분석한 결과, 살해당한 여성의 21.2%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살해되었고, 내연이나 동거관계에서 살해된 사건(25.2%)까지 포함하면 살해된 여성 피해자의 46.4%가 자신의 남성 파트너로부터 죽음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료를 보면, 과거부터 지속적인 폭행·학대가 유지된 경우는 배우자가 72.7%이고, 내연·동거관계인 경우가 53.6%였다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없는평화의달 캠페인 '소리질러' 여성의전화는 매년 5월 가정의달을 맞아 가정폭력없는 평화의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김광일 박사(한양대 신경정신과 교수)의 <가정폭력>이라는 책에 따르면, 아내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말하라'이다. 즉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발생하는 폭력의 본질을 알고 사회적 도움을 얻으라는 것이다.

 

아내폭력 피해 사실을 피해 당사자가 주변에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아내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에는 '언론매체'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아내폭력에 대한 그간 언론의 보도 양태는 아내폭력을 가벼운 개인사로 다루거나, 아내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거나, 선정적으로 다루는 식이다. 폭력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아내폭력에 대한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식을 기사에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아내폭력과 남편폭력, 동일선상에서 비교한 KBS

 

지난 5월24일 KBS9시 뉴스 가정폭력 보도장면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폭력에 방어하다 남편을 살해한 남성의 사망통계를 가정폭력 끝에 숨진 여성의 숫자와 함께 보도한 KBS9시 뉴스

 

지난 5월 24일, KBS 9시 뉴스 '뉴스&이슈'는 아내폭력의 실태와 심각성을 보여준 후 곧바로 남자들도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지난해 가정폭력 끝에 숨진 남성은 12명, 여성은 57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숨진 여성 57명은 아내폭력 피해의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고, 숨진 남성 12명은 오랜 세월 아내폭력의 가해자로 아내를 폭행해오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성에 의해 우발적으로 살해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아내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하게 된 여성들은 사실 아내폭력의 피해자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피해자의 가해자 살해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피해당사자가 겪어왔던 아내폭력의 심각성과 그로 인한 심신의 황폐함은 살인사건 양형에 있어 감경요소로까지 포함되어 있다. 전혀 내용이 다른 사건을 같은 비중을 가지고 다루는 것은, 결국 폭력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내폭력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연세대 김재엽 교수에 의하면 남편에 의한 아내폭력과 아내에 의한 남편폭력은 동일하게 비교될 수 없다. 남편에 의한 아내폭력에 비해 아내에 의한 남편폭력 발생 건수는 현저히 적고 그 피해 정도도 경미하다. 

 

아내폭력 문제를 다룬 언론 기사들 아내폭력을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언론의 태도들. 방화나 살인 등 강력범죄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표현한다.

 

아내폭력 문제를 개인의 사생활로 바라보는 언론들

 

같은 날인 24일 여성가족부는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는데(관련 기사 : 친정식구 죽인다는 남편, '쇠고랑'부터 채워라) 이 대책에 대해 국민일보 쿠기 뉴스는 '이번 대책은 사생활 침해 및 공권력의 과잉대응 소지에 따른 논란이 예상 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죽어나가는 여성들과 아내들을 보면서 '사생활'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공권력 과잉 대응 우려 또한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인 기본권에 우선하는 부분인지 궁금하다.

 

아내폭력을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언론의 태도는 그동안 언론에 표현된 아내폭력 사건에 대한 기사들에서도 알 수 있다. '동거하던 전처의 잔소리에 격분, 목졸라 살해', '아내가 밥을 해주지 않는다며 불 지른 후 자살하러 간다며 나감' 등의 표현에서와 같이 사소한 개인사로 인해 아내폭력이 발생한다는 듯 보도하고, '부부싸움을 자주했다는 주민들의 진술'을 삽입함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아내폭력의 성격을 '부부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아내폭력 가해자의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아내살해를 충동적인 사건처럼 표현했다. 아내폭력 피해자의 가해자 살해 경위는 '이혼 요구에 응하지 않자, 앙심을 품고'라는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아내폭력의 본질과 맥락을 왜곡·무시했다.

 

이렇게 아내폭력에 대한 왜곡되고 잘못된 언론매체의 표현들은 아내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배제시키고, 그 성격을 사소한 부부싸움으로 만들며 개인들 간 문제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아내살해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아내살해는 아내폭력의 연속 선상에서 발생하며, 아내폭력이 지속적으로 자행됨에도 이에 대한 적극적이고 치밀한 사회적 대책과 공권력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2005년 발생한 H씨 사건을 보자. 계속되는 아내폭력으로 H씨가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돌아갔는데, 결국 2주 만에 H씨는 살해됐다. 이렇게 아내폭력을 사소하게 취급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을 때 강력사건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내폭력 문제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언론의 문제 아내폭력 문제를 다룰 때 멍든 어깨와 꿰맨 다리를 보여주는 언론 보도는 아내폭력 문제를 신체적 폭력에만 한정시킬 우려가 있다.

아내 강간, 선정적 만화 곁들여 보도한 언론

 

아내폭력 문제를 다룰 때 멍든 어깨와 꿰맨 다리를 보여주는 언론 보도는 아내폭력 문제를 신체적 폭력에만 한정시킬 우려가 있다. 극심한 신체적 폭력에 한정된 영상은 가해자에게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며 폭력을 합리화 시키거나, 신체적 폭력 이외의 다른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 당사자들이 자신들이 겪은 폭력을 말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내폭력은 신체적·언어적·성적·정서적 폭력까지를 포함하며, 그 피해 역시 경중을 쉽게 따질 수 없다. 아내폭력 피해 사실을 보도하며, 피해자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는 경우가 있는데 피해자가 특정될 경우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유명인일 경우는 그 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과거 이아무개씨의 경우나, 최아무개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아내강간 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S씨 사건보도를 보면, 아내폭력 문제에 대한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태도를 더욱 극명하게 볼 수 있다.

 

S씨 사건은 2000년 4월 23일 발생했다. 12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S씨는 이혼소송 진행 중에, 남편이 S씨의 집으로 찾아와 이혼소송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아내폭력을 자행하고 아내강간을 시도하자 살해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S씨 사건을 계기로 '여성인권과 아내강간' 토론회를 개최해 우리 사회에서 '아내강간'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였고, 구타 후 강간, 원치 않는 성행동으로 인한 가학적 강간, 별거나 실질적인 혼인 파탄 상태에서의 강간 등을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아내폭력에 희생된 아내에 대해 보도한 <조선일보>

그런데 S씨 사건을 보도한 많은 언론은 숨진 아내폭력 가해자를 '변태성욕자'로 표현하였고, <조선일보>는 2000년 5월 19일자 신문에서 당시 사건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S씨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OO 섹스 등 변태적 성행위를 시킨 뒤, 직접 성관계를 요구했다...'등으로 보도했다. 이는 아내폭력으로 인한 가해자의 사망사건을 사건의 원인인 아내폭력적 측면보다는 성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보도행태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주간지 등에서는 선정적인 만화를 곁들여 흥미위주의 기사로 다루는 등 오랜 아내폭력으로 인한 피해자의 가해자 살해 사건을 '성(性)적 학대'로만 부각했다. 이는 사건 당사자가 죽은 가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적극적인 자기방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아내강간은 아내폭력의 한 부분이며, 여성의 몸의 주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아내강간 피해당사자들은 "신체적 폭력도 견디기 힘들지만 폭력 후 강간은 '내가 마치 쓰레기가 된 기분'"이라고 표현할 만큼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아내강간을 선정적 흥밋거리로만 다루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문제는 2007년 한국여성의전화가 가정폭력관련법 전면 개정안을 제출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당시 가정폭력 관련법 전면 개정안은 경찰의 긴급체포권 도입과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분과 보호처분 여부에 대한 법적 기준을 제시하는 등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은 처벌 조항에 '아내강간'조항이 포함된 것에만 관심을 표명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언론의 안일한 보도 태도 바뀌어야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24일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가정폭력종합대책안'에서 가장 우선해 제시한 것은, 아내(가정)폭력 발생시 가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경우에도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주거 진입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정폭력범죄처벌에관한 특례법' 제5조의 응급조치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이미 시행되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경찰이 그동안 자신들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일 뿐이다.

 

또한 100m 접근금지 명령의 경우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100m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아내를 살해한 사건은 바로 며칠 전에도 발생했다. 이는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명령을 어떻게 실질화 해 피해자를 보호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정부 발표에 눈에 보일 정도의 허술함이 있음에도,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그저 정부의 사실보도에 한정하여 기사를 받아 쓴 일부 언론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아내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인 장기적이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아내폭력 문제를 여성의 생명과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로 인식하며, 가해자에 대한 단호하고 확실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와 자활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아내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전 국민적 인식변화와 사회문화의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여론 형성과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위해 언론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언론이 사회의 많은 사건들을 보도하고,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며,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가 되는 것이 그 역할이라면 이제 아내폭력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이제 언론이 아내폭력 문제가 개인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의 심각한 사회적 범죄행위임을,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구조가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을 지각해야 한다. 아내 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며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아내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환기하고 변화시키는 데 한 부분을 담당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춘숙님은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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