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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 차례 '색다른 시선'이라는 형식으로 한국 사회와 생활방식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새롭고 다른 시각이 담긴 글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 기자 말
 

 

패션은 '엣지' 있는 것이 중요한 산업이다. '엣지'라는 용어는 오래 전부터 미국 영어에서 사용되어왔다. 이 용어는 허용 가능한 범위를 밀어내는 어떤 것이나 어떤 분야의 선두주자, 혹은 말 그대로 절벽에 서서 무엇이 사회적으로 안정적이고 받아들여질 수 있나 지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엣지'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매우 새롭고 평범하지 않아서 흥미롭고, 좀 더 나아가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정도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패션에서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준과 편안함의 경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 아닌가. '엣지'가 어휘목록에 추가되었으나 단순히 '새롭고 패셔너블한' 정도의 제한적인 의미로 이용된다. 본래의 뜻인 '경계를 민다'는 사라졌다. 하지만 옛것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자리잡은 한국에서 새로운 것, 도전적인 것을 불편해 하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고, 시민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 한국의 패션산업에서는 '엣지'가 그리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이는 특이한 관계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부와 예술가들은 서로 좋지 못한 관계였기 때문에 지금 정부가 영화, 드라마, 음악 그리고 패션의 해외 진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제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세계로 진출해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평가도 좀 더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예술가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엣지 있어야 한다. 뉴욕, 런던, 밀라노, 도쿄 등에서 그 누구도 평이하고 보수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엣지'를 원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디자이너 곽현주이다. 그녀는 해외로 진출한 한국의 신진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지만, 단순히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넘어 서구의 패션 저널리스트와 바이어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디자이너 곽현주의 패션은 진정 창조적이고 엣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진작업을 하면서 나는 포즈 하나만으로 그녀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사진작가로서 나는 항상 피사체가 되어주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디자이너 곽현주의 경우, 그녀가 상당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었고, 매우 친근하며 활달했기 때문에 그녀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쉽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원하는 사진 콘셉트를 묻자 그녀는 마치 백설공주 동화에서 나올 법한 독사과와 위험한 여자가 풍기는 '팜므파탈' 느낌이 좋겠다고 했다.

 

한 손에 사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창조적인 힘

 

그 순간 나는 위험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칼을 떠올렸는데, 칼은 창조적인 이미지도 줄 수 있는 물건이다. 우리는 쉽게 칼을 이용해 사과 껍질도 깎고 요리도 하지만 칼은 위험한 물건의 대표적 상징이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칼이 안전하게 보관되지 않고 주방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날의 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점치기도 한다. 물론 칼은 대체로 요리에 사용하지만, 잘 못 쓰이면 언제든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도구로 변할 수 있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창조적인 힘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위협, 해치기 위한 것, 파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밝은 주황색 드레스와 킬힐, 풍성한 머리카락과 무거운 화장은 칼날과 같은 엣지 있는 신진 디자이너인 그녀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디자이너로서 창조적 힘을 나타내는 포즈를 취했다 하더라도 모든 대중이 이를 좋아하리란 법은 없다.

 

이번 사진 작업은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동안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한국에서 유명한 스타라 하더라도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유명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을 대상으로 찍어 인정받는 사진 또한 해외에서는 그저 한 명의 일반인을 찍은 사진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사실, 한국의 일반인들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이상봉이나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하상백, 혹은 앙드레 김과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를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디자이너 곽현주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이목을 끌고 흥미를 일으키기 위해 엣지 있는 사진이 필요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진을 통해 '저 사람이 누구지?'하는 궁금증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 사진 속 주인공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들도록 만들어야 했다.

 

나는 유명인사의 사진은 독특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이 사진은 과연 흥미로운가? 인물이 유명하지 않더라도 사진의 테마가 또는 시각적으로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는 인물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중 한 명인 애니 레보비츠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든 질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촬영대상이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작가의 표현력과 스타일, 그리고 그 인물이 가진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진 작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곽현주 디자이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사진이 전해주는 힘과 에너지는 단순히 사진작가인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촬영대상인 곽현주씨가 열린 마음으로 응해준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한번 '엣지'의 본래 뜻을 지닌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사진을 통해 입증해냈다.

덧붙이는 글 | 마이클 허트 기자는 1994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처음 와 제주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2002년 학위논문 연구를 위해 한국에 다시 왔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셜 네트워크 매거진'Yahae!를 준비하고 있다.


태그:#곽현주,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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