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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자욱

지난 4월, 내 딸 유빈이는 그 유명한 염광고적대(마칭벤드) 단원으로써 첫 행사에 참여했다. 염광메디텍고교 관악과에 원서를 넣고 떨어지면 어쩌나 애를 태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사이 학교행사에 참여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고 감격스럽다.

유빈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세살 적 우리는 월계동으로 이사를 왔다. 봄이면 아카시아향이 온 동네를 감싸고 곳곳에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골내음 물씬 풍기는 정겨운 동네였다. 그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이 봄이면 꽃구경을 갈 아름다운 벗꽃동산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이 저 멀리 달아나고 벗꽃이 꿈결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봄이오면 토요일 아침부터 우리는 유빈이 손을 잡고 돋자리를 챙겨 들고 염광학교 꽃동산으로 달려가곤했다. 가면 언제나 태평양만큼이나 넓은 운동장에는 오빠들이 소리소리 치며 농구를 하고 언니들은 군데군데 모여 악기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는 그 악기들 이름도 모르고 곡명도 모르고 그저 꽃이 좋고 음악이 좋아서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맛난 것을 먹어가며 동산에서 놀다오곤했다. 간혹 동산에 올라와 악기연습을 하는 언니들이 있으면 유빈이는 언니들 곁으로 달려가 눈을 떼지못하고 붙어앉아있곤했다.

 전율을 느낄 정도의 감동

봄이 돌아올 때마다 염광학교 벗꽃동산에 올라 꽃구경을 하는 사이에 아장아장걷던 유빈이가 유치원엘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중학교는 우리가 원하던 대로 기독교 재단인 염광중학교에 무난히 입학을 했다. 입학식을 하고 온 날 유빈이는 감격에 찬 얼굴로 이런말을 했다.

"엄마, 입학식 때 염광고등학교 언니들이 연주를 하는데 소름이 쭉 돋았어.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감동적이고 전율을 느낄정도로 가슴이 벅찬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을 때만해도 내 딸이 관악과에 갈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악기는 어릴적부터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으니까.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학교마다 찾아다니며 고교 진학설명회를 들었다. 방문하는 학교마다 운동장을 돌며 과연 이 학교가 내 딸이 다닐 학교인가 기도하곤했다. 대학을 가려면 인문계 고등학교만 가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정리해둔 학교를 거의 다 방문했다 싶었던 어느 날 밤, 그 날도 어느 학교 입학설명회를 듣고 아픈 다리를 끌며 돌아오는 길에 염광메디텍고교 입학설명회가 있다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특성화고교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때이기도 했고 등잔밑이 어둡다고, 같은 재단 같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학교를 그제사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염광메디텍 고교 입학설명회를 듣던 그 날 밤, 나는 학생들을 그저 3년 동안 교육시키는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을 친 자식과도 같이 여기며 가슴에 품고 뜨거운 열정을 다 해 키우길 간절히 원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집에 돌아와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과연 선생님의 설명하신대로 진학율이 거의 100%에 가까웠다. 특성화고에서의 여러가지 혜택들도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인문계고교가 아니라도 대학진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메디텍고교 관악고가 내 가슴에 들어온 날 밤, 늦게 집에 들어 온 딸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염광관악고 설명회 듣고 왔는데 나 그 학교 가고싶어."

그동안 학교에서 고교입학설명회를 듣고오라고 보낸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한 번도 그 학교 가고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유빈이가 간절히 가고싶다는 학교가 생겼다니, 그것도 엄마의 마음에 확신을 준 그 학교를! 우리는 그 날 밤 둘이 손을 맞잡고 환호했다.

 9년의 기도

유빈이와 나는 초등학교 입학한 날부터 학교가기 전 아침마다 현관에서 기도했다. 날마다 기도제목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늘 빠지지 않았던 기도제목이 유빈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걸으며 유빈이가 기쁨과 환희에 넘치는 일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다.

이제 그 길에 접어들었다. 참스승을 만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악기 트럼본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대대로 선배들이 입고 물려 준 그 유명한 염광고적대 단복을 입었다. 단복은 낡았지만 경견한 무언가를 가득 품고있었다.

이 길의 끝은 틀림없이 찬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앞으로 향해 힘차게 달려갈 내 딸 유빈.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덧붙이는 글 | 아래 사진은 2011년 4월에 찍은 사진입니다.(디카날짜 입력이 잘못되었습니다)



태그:#염광고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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