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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군 제대 보름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당시 노충국씨의 모습. 병원은 노씨의 가족에게 "장례식 준비하라"는 말을 건넸다.
 군 제대 보름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당시 노충국씨의 모습. 병원은 노씨의 가족에게 "장례식 준비하라"는 말을 건넸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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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충국'이란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지난 2005년 10월 24일 <오마이뉴스>의 특종 보도(☞ 관련 기사 : <군 병원에선 위궤양이랬는데... 위암 말기 28세 청년 "살려달라">)로 세상에 알려졌던 한 청년의 이름입니다.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에 다니다 입대했던 노씨는 키 180cm, 몸무게 80kg의 신체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를 두 달 앞둔 2005년 4월 심한 복통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국군광주통합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이미 밥 먹는 것도 힘겨운 상태였지만, 통합병원 군의관은 두 차례 모두 위궤양 진단을 내렸죠. 이 일이 있기 전에도 노씨는 군의관을 찾아가 복통을 호소했지만, 군의관은 공복 상태가 아니어서 내시경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노씨가 군대에서 받은 치료는 1개월치의 위장약이 전부였습니다.

제대 보름 만에 말기위암 판정 받은 고 노충국씨

그해 6월 말 만기 전역한 노씨가 제대 보름 만에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을 때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위암 말기, 이미 손을 쓸 수 있는 단계를 지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노씨는 이후 생애 마지막 3개월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마와 싸웠지만, 결국 그해 10월 27일 오전 경남 거창의 한 병원에서 숨졌습니다. 제대 4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국군의무사령부는 "노씨에게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있다고 수차례 경고했다"며 군 병원이 오진을 했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 내용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담당 군의관은 노씨에게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설명했고 민간병원에서 검사받기를 권했다'는 것이 국군의무사령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며칠 만에 드러났습니다. 노씨를 최초로 진료했던 국군광주병원 군의관 이아무개 대위가 노씨의 아버지에게 "외래진료 기록지 내시경 소견서 중 '위암 의증' 부분을 나중에 써넣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즉, 당초 노씨의 위암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던 군의관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외래진료 기록지와 내시경소견서에 각각 "내시경 소견상 malignancy(악성종양) 배제 어려워", "r/o gastric cancer(위암 의증)"(한글 번역은 편집자)이라고 가필을 했던 것입니다.

군의관의 진료기록 조작 사실까지 드러나자 허술한 군 의료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또한 노씨 사건을 계기로 유사사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들끓는 여론... 국방장관 "군의료체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

국방부는 지난 2005년 11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당시 제기된 4건의 군 의료민원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최종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제2 노충국'이라고 불리는 박상연·오주현·김웅민(왼쪽부터)씨측은 국방부 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2005년 11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당시 제기된 4건의 군 의료민원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최종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제2 노충국'이라고 불리는 박상연·오주현·김웅민(왼쪽부터)씨측은 국방부 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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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한 달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김웅민(05.11.21 사망·당시 23세· 육군 72사단)씨, 역시 제대 직후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위와 비장 전체를 잘라냈던 박상연(06.8.23 사망·당시 24세·육군 5기갑여단)씨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오주현(07.11.29 사망·당시 22세· 해군 제주방어사령부)씨의 사연들이 잇따라 보도됐습니다.

노충국씨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2005년 10월 1일 논산훈련소에서 야간 행군 훈련 중 복통으로 군병원으로 이송됐다가 17시간 만에 숨진 길주형(당시 20세) 이병의 사례도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길 이병은 부검 결과 복강 내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가 최초에 군의관으로부터 받은 처치는 소화제 3알이 전부였습니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2005년 11월 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예비역 병장 노충국씨가 전역 후 위암으로 사망한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로 국민 여러분과 의원님들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송구스럽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국군의무사령부는 장병의 의료접근권 강화를 골자로 한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을 내놓았고, 국방부는 범정부 차원의 '군 의무발전추진위'를 발족시켜 "군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장병들에게 민간과 동등한 진료제공과 환자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실현하고, 군에서 발생되는 부상자 등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군 의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5개 분야 32개 과제로 구성된 군 의무발전계획을 수립해서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대학 병원급의 시설을 갖춘 국방메디컬센터를 건립하고 각급 부대의 의무시설 대폭 개선, 의료수준 향상을 위한 우수의료인력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 국방부의 다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 무엇이 달라졌나

그런데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군 의료체계는 나아졌을까요? 안타깝지만 그 대답은 이미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달 22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 노아무개(23)씨가 야간 행군 뒤 급성 호흡곤란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현역 1급 판정을 받고 지난 3월 24일 입대한 노씨는 입대 전 특별한 병을 앓지 않았다고 가족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부검 결과 노씨는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지만 군 당국은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고, 고열을 호소하는 훈련병에게 해열진통제만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죠.

당시 당직 군의관은 퇴근한 후였고 약을 처방한 것도 일병 계급의 의무병이었습니다. 잠복기가 단 며칠에 불과한 뇌수막염의 특성을 고려하면 노씨가 입대한 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군 의료 체계는 이를 알아채지도, 치료하는 데도 실패한 것입니다.

비단 노씨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폐결핵균이 뇌로 침투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육군 21사단 66연대 소속 오동은 병장(22)의 사례도 군 병원의 초기 진단 착오로 치료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속이 메스껍다고 호소하면서 체중도 102kg에서 62kg으로 급격히 줄어든 오 병장을 검진한 군의관은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오 병장은 세 차례나 군의관에게 같은 증세를 호소했지만 군 병원의 우울증 진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병세가 악화된 지난해 11월에야 군 병원은 '결핵성 폐흉막 염증'이라는 판정을 내렸고, 거의 의식을 잃은 오 병장은 민간 병원으로 이송되어 긴급히 뇌수술을 받았지만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오씨의 주치의는 폐결핵균이 이미 뇌로 침투해 뇌의 30% 이상이 손상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경기도 부천시의 부천순천향병원에 입원 중인 오 병장은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엔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군 의료체계 개선방안은 정말 없을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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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군내 의료사고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 낙후된 군 의료시설과 함께 임상경험이 부족한 단기 군의관 위주의 군 의료인력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후진적인 군 의료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근무 중인 군의관 2200여 명 가운데 장기 복무 군의관은 전체의 4%인 70여 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6%의 군의관들은 병원에서 인턴을 끝냈거나 갓 전문의 자격을 따고 입대한 의사들인 것이죠. 때문에 사단급 병원까지는 3년간의 의무복무를 하는 단기 군의관들밖에는 없습니다.

국방부는 이처럼 태부족한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국방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아래 국방의학원) 설립과 민간의사 아웃소싱안을 추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국방의학원 설립은 '의사의 과잉공급으로 의료시장이 과열될 것'이라는 의사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었고, 계약직으로 민간 의사를 영입해 군 병원에 근무토록 하는 아웃소싱안도 필요한 의사 확보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 의료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은 아예 없는 것일까요?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임 소장은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했던 군 의료 실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적극적으로 민간 의료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구태여 실현가능성도 낮은 국군중앙의료원 같은 3차 진료시설을 갖추려 하지 말고 오히려 수준 높은 민간병원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후방의 경우 군 부대 인근의 민간 의료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협진 체제를 강화하는 대신, 격·오지가 많고 민간 의료 시설이 드문 전방의 사단급 병원은 시설과 장비, 군 의료 인력을 대폭 보강해 군단급 병원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 병원은 1·2차 진료기관으로서의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고, 3차 의료수준은 민간 병원으로의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죠.

병사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권 적극 보장되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병사들의 자유로운 의료 서비스 접근권 보장이라는 측면입니다.

지난달 야간행군 뒤 급성호흡곤란 증세로 훈련병이 숨지는 사고가 난 논산 육군훈련소 30연대에서는 지난 2월 27일에도 훈련병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훈련병은 같은 소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아무개(22) 훈련병은 훈련 기간 중 중이염과 이명(耳鳴) 증세로 고통을 받아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가 어머니에게 썼던 부치지 못한 편지와 유서 형식의 메모는 정씨가 홀로 겪었을 육체적 고통과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케 해주고 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항생제를 주고 양호실에만 있으라고 해요, 외부 병원으로 잘 안 보내주는데 약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주세요", "체력도 오래달리기 100명 중 3등 했고, 힘도 좋아서 훈련도 정말 잘 받을 수 있는데 중이염에 걸려서 너무 속상하고 마음고생하고 있다.", "이러다가 귀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중에 아예 안 들리면 어떡할지 이런 생각도 들고 컨디션도 귀 때문에 더 나쁜 것 같아 미치겠다."

육군훈련소 측은 정씨가 사격훈련 뒤 오른쪽 귀에 통증을 호소해 국군대전병원과 훈련소 안 의무실 등에서 모두 10차례 진료를 받은 뒤 항생제·해열제 등을 처방했다고 밝혔지만, 정씨는 치료약을 거의 먹지 않은 채 자신의 관물대에 둔 것으로 확인됐죠.

유족들은 정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지휘계통을 통해 여러 차례 중이염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지만 훈련소 측은 정씨의 호소를 묵살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꾀병인 것 같다'고 쓰여진 훈련소 측의 면담 관찰 기록도 유족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 군내 의료 사고의 저변에는 병사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지휘관들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만약 죽은 훈련병이 병사가 아니라 장성이었어도 이런 취급을 받았겠느냐는 것이죠.

임 소장의 지적처럼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군대'는 적어도 병사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권에 대한 존중 없이는 요원해 보입니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끼고 관리하는 세심한 배려가 없다면 국방력도 없다는 평범한 경구를 군 당국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태그:#노충국, #군 의료체계, #군 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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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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