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 조용기 목사가 평생 자신이 몸 담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모든 권한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이제 일선에서 아예 물러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개혁실천연대는 환영을 뜻을 표했고 언론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된 것인가? 정말 조용기 목사의 참회와 할 일은 다 끝난 것인가? 많은 기독교 단체와 언론이 환영을 표할는지 모르나 내가 보기엔 결코 그렇지 않다. 조용기 목사는 그 자신의 목회 평생에 있어 정작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을 빠트린 채로 일을 처리한 것 뿐이다.

 

한국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라는 존재는 일종의 목회성공 신화의 아이콘 같다. 그는 1958년 서울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에서 최자실 전도사와 공동으로 천막교회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개신교 교파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형성해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일교회로는 등록 교인수 75만 명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그의 입지를 대표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 이면에는 조용기 목사의 비리 의혹(2004년 <시사저널>), 조용기 목사 가족들의 족벌경영에서 빚어졌던 횡령과 탈세(MBC <뉴스후>)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은퇴와 사임 조치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러한 조치들이 필요하기에 환영할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종교 영역에서의 본질은 조용기 목사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신념 체계와 함께 맞물려 있다. 한국 개신교의 성장은 70∼80년대 군사정권하의 경제정책 및 근대화 과정과 맞물려 있는데, 이에 대한 개신교 신앙의 정당성을 제공한 이론은 그의 유명한 '삼박자 구원론'이다. 한 마디로 예수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얘기다. 물론 그가 말한 복에는 신체 건강 및 경제적인 축복도 당연히 들어 있다. 그렇기에 조용기 목사가 설파했던 신앙의 신념 체계는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계급상승에 대한 욕구'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한국교회는 특히 70∼80년대에 폭팔적인 교세 성장을 기록한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비단 조용기 목사에게서만 보여진 유별난 신앙 행태가 아니라 당시 한국교회 주류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신앙의 패턴이기도 했다. 전체 한국교회 지형에서 볼 때 오히려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몇몇 진보 기독교 인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은 오히려 반공주의와 정교분리를 강조하면서 되려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진보적 기독교인들과 당시의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을 매도하는 분위기였을 따름이다. 박노자 교수는 조용기 목사에 대해 평가하길 그는 반공주의와 기독교근본주의자로서 예전엔 군사독재정권과 결탁했다는 점을 비판한 바 있는데, 실제적으로 오늘날 한국교회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은 그러한 젖줄하에 성장해왔었다.

 

한국교회 보수 개신교 집단은 여전히 반공주의적인 색깔이 강한데 이들이 정치세력화 집단으로 기지개를 켜게 된 것은 가까스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끝나고 86항쟁 이후 본격적으로 90년대 시민사회로 접어들면서부터다.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이 펼쳐지면서 더 이상 보수 기독교인들도 정교분리만을 외치기에는 힘들었고 오히려 적극적인 정치세력화 노선으로 바뀌게 된다. 보수적인 한국교회 집단에서 기독교 정당이 나온 것도 그 한 예다. 어쨌든 보수 개신교들로서는 진보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NCC에 필적할만한 단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한기총도 바로 그러한 과정에서 태동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발자취들은 비단 조용기 목사와 그 교파에만 해당되는 역사적 과정이 아니다. 오늘날 보수적인 주류 개신교 대부분의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도 해당된다. 한국교회 대부분은 교회성장 신화와 정치적 수구보수 및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한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은 대체로 초자연주의를 사실로 보는 성서문자주의(성서무오설)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많은 한국교회 신자들은 현실에선 축복을 비는 기복신앙을 그리고 죽은 뒤의 내세를 위해선 영혼구원이라는 사후 보험을 들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반적인 모든 것을 끊임없이 지탱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신앙의 신념체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보수 근본주의 신앙이다.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 체계에 대한 변혁 없이 진정한 교회 개혁 없다!

 

따라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단순히 종교구호로만 이해하는 것은 협애한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실로 종교구호이자 우리 사회의 우익화 보수화에 기여하는 매우 교묘한 정치구호이기도 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이란 것은 들뢰즈 철학으로 말하면 '기계'에 해당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그러한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무엇을? 한국교회에는 교회 성장주의(사회적으론 맘몬주의)와 정치적 보수우익과 반공주의를 그리고 일반 신자들에겐 현실축복 기복신앙, 내세적인 영혼구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교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맘몬주의 혹은 물질주의로 진단하는 관점에 대해선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들 역시 원인이 아닌 결과물일 따름이다. 근원적인 원인은 오히려 그러한 신앙을 가능케 해주는 기독교 신학 자체에 내함되어 있다.

 

물론 보수 기독교인들 중에는 미약하지만 사회구원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사회구원이란 건 불우이웃돕기 마냥 물량지원식의 복지개념일 뿐, 실질적인 약자우선성의 정치 경제 정책에 대해선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다. 빈익빈부익부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시행되는 사회복지 행사들은 그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다. 놀랍게도 보수적인 한국교회에선 좌파빨갱이 콤플렉스 현상도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보수적인 한국교회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노무현과 김대중조차도 그저 좌파빨갱이로만 여기는 이들도 많다고 본다. 따라서 어떨 때는 색깔론적인 설교가 한국교회 신자들의 의식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다. 그렇기에 조용기 목사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도 알만하잖은가.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선 목사들의 성공신화에 바로 이러한 요소와 기반들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가 지니고 왔었던 그의 보수 근본주의 신앙이 근원적으로 뒤바뀌지 않는 한, 조용기 목사의 성공신화를 배우고 익히며 자라왔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제2의 조용기가 무의식적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조용기 목사의 성장 신화와 그 리더십에 대해선 다른 대형교회 목사였던 옥한흠 목사(국제제자훈련원)나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들도 조용기 목사를 본받으라며 추천까지 할 지경이다. 한국교회에서 이들 대형교회 목사들이 지닌 영향력은 매우 굉장하다.

 

본인 역시 신학교 목회자 코스를 밟았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주변에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스타일까지 모방적으로 흉내내는 이들을 많이 접했었다. 이들에게 조용기 목사는 일종의 문화유전자 곧 '밈'(Meme)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조용기 목사처럼 신앙생활을 하면 적어도 목회를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처럼 기도하면은 수천 명 수만 명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기에 하나님이 최고로 기뻐하시는 종(목회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조용기 목사의 밈을 모방해가는 가운데 그가 지닌 보수적인 대사회적 의식도 함께 무의식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자리매김되는 것 역시 자연스런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조용기 목사는 바로 이를 철회하지 않은 채로 은퇴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는 조용기 목사에게 50∼60년 형성된 그 자신의 보수 기독신앙이 근원적으로 뒤바뀌기를 요구한다는 게 무리인 줄도 안다. 하지만 그 무리함만큼이나 한국교회의 개혁이란 것도 절망적이라만치 엄청난 무리가 되는 일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게 말해두고자 한다. 조용기 목사가 물러난다고 해서 제2의 조용기 목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듯이 마찬가지로 한기총을 해체한다고 해서 제2의 한기총 집단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즉, 김규항이 '우리 안의 이명박' 문제를 말한 것처럼 한국 개신교 집단사회에는 이미 '우리 안의 조용기'가 완연하게 자리매김되어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가 은퇴했다고 해서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라 사실상 조용기 목사의 성공 신화까지도 철폐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보수 근본주의 기독신앙은 반공주의와 수구우익 지배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유착되어 왔었기에, 그의 성공 신화가 여전히 떠받들어지며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한국교회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보수 개신교 집단 사회에선 여전히 제2의 조용기 목사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조용기 목사가 일궈냈다는 그같은 교회 성장은 엄밀히 말해서 제대로 된 교회 성장이라고 볼 수 없다. 그저 기업화(세속화)된 교회(대한예수교주식회사?)일 뿐이며, 신자화와 복음화는 마땅히 구분되어야만 할 것이다. 사후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복음화가 이뤄졌다고 보는 건 넌센스일 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바로 이 넌센스에도 빠져 있다.

 

따라서 나의 무리한 요구는 비단 조용기 목사만을 향해 있지 않다. 조용기 목사라는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교회 성장 신화와 그 신학 전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야만 할 것이다. 조용기 목사에 대한 평가와 문제는 그동안 한국 개신교가 지녀왔던 교회 성장 신화 자체에 대한 전복과 대안으로서의 새로움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한국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실은 '기독교 제국주의'로 커왔던 이천 년 기독교 역사 전반을 처음부터 다시금 검토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기독교 안에만 참된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배타주의적 구원론 신앙의 입장이 뒤바뀌지 않고선 도대체 어떻게 여러 종교들 간의 평화와 화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긴가. 그것은 종교 간의 잠정적인 휴전일 뿐이며, 공격적인 선교 행태는 결코 멈추지 않을 걸로 본다. 마찬가지로 진화론을 불경하게 여기며 어줍잖게 비판하는 창조과학(사이비 과학)에 빠진 보수 개신교인들에게도 부디 온전히 과학적이길 바라는 기대 역시 엄청나게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볼 때 이제는 종교 혁명 없이 진정한 종교개혁을 기대하기 힘든 게 작금의 서글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세계와기독교변혁연구소(www.freeview.org)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태그:#조용기, #한국교회, #기독교, #개신교, #근본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