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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일(현지시각) 밤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 사람들이 몰려와 환호하고 있다.
 알 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일(현지시각) 밤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 사람들이 몰려와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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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세계질서는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9.11 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선택'은 이후 세계질서를 요동치게 했다. 알 카에다를 범인으로 지목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강행했다.

9.11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이들 나라와의 정면 대결도 불사했다. 그리고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오판한 미국은 총구를 이라크로 돌려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아프간의 탈레반과 알 카에다는 전열을 가다듬어 총반격에 나섰고, 이로 인해 미국은 아프간과 그 국경지대에 있는 파키스탄에서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설은 미국의 거짓말로 들통 났고,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제국'을 꿈꿨던 부시 행정부는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라는 혹평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미국은 막대한 인명 손실과, 전비(戰費) 부담, 그리고 국제 리더십 상실에서 허우적거리며 미-소 냉전 종식 이후 누려왔던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도 상실해가고 있다.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은 9번째 핵보유국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고, 이란도 그 후보에 올라 있다.

정의는 실현되었나?

이처럼 세계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9.11 테러 사건 10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테러와의 전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알 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5월 1일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것이다. 이에 고무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시각으로 일요일 밤. 백악관 앞으로 몰려든 미국 시민들의 환호 속에 빈 라덴의 사살 및 그의 시신 확보를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는 알 카에다가 저지른 9.11 테러를 환기시키면서 "빈 라덴이 제거된 것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성과"라고 강조하면서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3천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테러 지시자를 추격·사살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이 환호하고 있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그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자행한 '불의'는 너무나도 크다. 10년간의 아프간 전쟁으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9.11 테러와의 연계 및 대량살상무기 보유 의혹을 제기하며 침공을 강행한 이라크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알 카에다의 은신처가 있는 파키스탄에서도 수시로 무인폭격기를 동원해 공격을 강행하면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을 두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9.11 테러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클린턴 행정부 때의 북미협상 성과를 일거에 부정한 것이나, 이란의 온건파 지도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도 오늘날 국제질서 병폐를 낳은 중대한 요인이었다. "나의 편이 아니면, 적의 편"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동맹·우방국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한 것 역시 커다란 문제였다.

미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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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의 죽음이 '테러'와 '전쟁'이 피의 악순환을 형성해왔던 21세기 초엽의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죽음으로 알 카에다 조직이 와해될 것인지, 아니면 지도자의 죽음에 분개한 그의 추종자들이 더더욱 테러에 의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아랍권 주민들의 분노를 치유하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테러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미국의 동지였던 빈 라덴이 반미 테러집단의 지도자로 돌변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조국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소련군이든, 미국군이든, 이슬람의 땅에 외국군이 발을 디디고 있는 것 자체가 '무자헤딘(성전)'을 전개해야 할 이유로 간주된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미국 등 서방세계의 친이스라엘 정책, 그리고 묻지마식의 이라크 침공 등은 아랍권의 분노를 확대재생산시키면서 반미 테러리즘의 '마르지 않는 샘'의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은 빈 라덴의 사살로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자만과 무력 사용에 의존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아랍권의 울분을 치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오바마 스스로도 잘못된 전쟁이라고 말했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 보다 능동적이고 강력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중재, 탈레반과의 협상과 조속한 아프간 철군, 중동의 친미 독재국가들에 대한 지지와 지원 철회, 막대한 군사비 감축을 통한 평화배당금 창출 등이 바로 그것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미국의 관성으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미국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악몽과도 같은 '테러와 전쟁의 악순환'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사마 빈 라덴, #9.11 테러, #테러와의 전쟁, #오바마, #아프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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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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