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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는 지난 4월 21일 대구 동성로 대백 앞 광장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특별법 쟁취 범국민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후 약 500여명의 유족과 전국 시민단체회원들은 대구시청-대구역-대구시민회관을 행진했다.

 

이번 대회는 유족회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10월항쟁유족회 영남지역 31개 시군유족회,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구경북진보연대, 민주노총대구본부, 민예총대구지회,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 민변대구경북지부 등 50여개 단체가 공동주최했다. (관련기사 보기)

 

유족회는 이번 대회 결의문을 통해 "진실규명과 명예를 회복하고자 출범했던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실위)가 5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마감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것으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과거사가 다 정리되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 입장을 밝혔다.

 

또한 유족회는 "좀 더 철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제2, 제3의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올곧은 시대정신이며 억울하게 학살된 영령들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천명했다. 유족회는 "진실을 밝히는 일에 더 이상의 이념의 잣대나 정파의 꼼수는 없다" 며 그러기에 "백만 유족과 전국 제 시민사회단체, 지지정당의 힘을 모아 우리 유족은 반드시 (제2, 제3의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을) 쟁취할 것"임을 선언했다.

 

유족회는 이날 행사에서 특별법 쟁취 결의대회 참석자 일동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문'도 발표했다.

 

"국회는 진실위가 권고한 배·보상, 과거사재단 설립, 유해발굴 및 안장시설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미신청 유족을 위한 신청연장과 미해결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제2의 진실위를 즉각 설립하라! 정부와 국회는 국가공권력과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집단 학살에 책임을 지고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라! 정부는 역사를 바로 세워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고 인권교육을 강화하라!"

 

기자는 이번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특별법 쟁취 범국민결의대회'를 준비했던 유족회 대변인 이성번씨를 지난 4월 23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이번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특별법 쟁취 범국민결의대회'를 이 시기에 개최하게 된 계기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간 전국유족회의 지도부가 안이하게 대처했다. 왜냐하면 진실위가 진실규명, 명예회복을 주장하니 유족들이 진실위를 너무 신뢰했고 모든 유족의 한을 풀어 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진실위는 진실규명과 사후 절차는 무시하고 오로지 기한 안에 진실위 활동에 대한 마무리를 지으려고 이영조 같은 뉴라이트 친구를 등용하여 대부분 사건을 진실규명 불능 처리했다. 이에 우리 유족회는 뒤늦게, 지난 해 12월 1일 합동추모제를 통해, 진실위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때부터 비상대책위, 총준비위 등의 비상대책기구를 만들고 대책을 수립하여 이와 같은 결의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 공동주최한 정당을 보니 야3당 뿐이고 한나라당이 없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도 과거사 정리문제에 대해 관심과 동정적 입장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 한나라당에는 이번 대회 관련하여 협조요청을 했나? 아니면 아예 협조를 안 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섭외를 안 했나?

과거 문경의, 이한성 의원 등 과거사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마인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우리 유족회도 우리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야의 공조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 여권과 공조할 계획은 없다. 우리는 내년 선거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 입장과 한을 풀어 줄 정치권과 공조할 생각이다. 그런데 이번 결의대회에 범야권도 4.27 보궐선거에 무게 중심이 있다. 이는 우리 백만 유족과 50여 대구 시민사회단체, 양심적 지지정당의 입장을 무시하는 처사로 판단하고 유족회는 이념과 정파를 떠나 유족의 아픔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세력과 연대하여 싸워 나갈 것이다.

 

- 지난 4월 13일 제2회 한국전쟁 전후 영천지역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합동 위령제가 경북 영천시에서 열렸다. 이날 위령제는 유족과 영천시장, 기관단체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추모사에서 김영석 영천 시장이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하루 아침에 내 부모,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들께서 60여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하루라도 빨리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앞으로 유족 분들을 도울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유족회 입장에서는 김영석 시장이나 기관단체장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십 군데 위령제를 다녀보지만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장, 경찰, 국방부가 하는 추도사는 대동소이하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추도사는 별것 없다. 국가공권력과 미군의 만행으로 돌아가신 영령에 대해 가해 주체를 대신하여 국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우리는 빨갱이도 좌파도 아니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민간인이 적법 절차 없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는 점을 국가가 인정하고 이에 적합한 대책을 수립해 달라는 요구를 할 뿐이다. 심지어 모 지역위령제에 조현오 경찰청장을 대신하여 파출소장이 나와 추도사를 대독하였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 '4.9통일평화재단'에서도 최근 "이명박 정부가 외면한 과거사를 규명하고 재심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민간 차원에서의 국가폭력 피해자 구명운동과 과거사 정리 작업을 시작할 계획" 이라고 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향후 4.9 재단 등 다른 민간단체들과 과거사정리 활동을 위해 긴밀한 공조 및 협조 체제를 유지하고 구축할 계획이 있는가?

유족들은 모두가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우리 독자적으로 이 일들을 추진하기가 힘들다. 우리 현 2만 유족 중에 50대가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연대하여 활동하려고 한다. 그래서 유족회 내부조직으로 이 연대 사업을 추진하는 소위원회도 구성하였다.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가 없이는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이를 공유하는 모든 단체와 연대할 것이다.

 

- 지난 4월 9일에는 경주에서 6.25전쟁 때 강동면 기계천 일대에서 미군폭격으로 집단 희생당한 분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렸다. 기계천 유족회도 기계천 미군폭격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정부에 요구해 위령탑과 추모공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결의문에서 전국유족회는 "정부와 국회는 국가공권력과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집단 학살에 책임을 지고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라!"고 밝혔는데 정부나 국회가 이러한 요구에 소극적 입장을 취하면 어떻게 정부를 설득할 계획인가? 또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폭격사건 등과 관련하여서는 기계천 유족등과 함께 공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유족회 회칙에 한국전쟁전후 국가공권력과 미군정, 미국 등 유엔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공조하여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미군폭격 및 함포사격에 의한 희생자도 같은 유족이다. 또한 특별법의 안을 같이 만들고 같이 싸울 것이다. 그래서 경주 기계천의 미군 폭격희생자도 유족회의 중요 간부인 상임대표로 동참하고 있다.

 

- 지난 3월엔 민간인 집단학살 유족모임이 50년 만에 처음으로 재심 '무죄 확정'을 받았다. 반면 한국전쟁 전·후 학살된 민간인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소멸시효'에 가로막혀 대부분 패소했고 '울산지역 보도연맹 사건'은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올바른 사법정의의 확립과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서도 사법부의 좀더 인도주의적인 판결이 아쉽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회 입장에서 정부와 특히 사법부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소멸시효에 대한 문제로 모두가 패소하고 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쟁 시기 일어난 민간인 희생은 국제법 어느 곳에도 소멸시효가 없다. 더구나 5.16군사독재와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누가 죽음을 담보로 재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문제는 양심적 재판부와 정치적 판단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유족회에서 하는 주요활동은 무엇인가?

현 3기 유족회는 특별법을 통해 진실위에 미신청 한 유족들을 위한 유해 발굴 활동과 진실규명, 배·보상, 유해안장시설, 추모공원 등 특별법의 쟁취를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올해는 이 사업을 중점적으로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과거사의 올바른 정립을 지지하는 많은 세력과 연대할 것이다.

 

- 유족 1세대 분들은 연로하시거나 돌아가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사정리에 대한 유족 2-3세들의 입장이나 형편은 어떤가?

4대 국회 자료에 의하면 유족이 114만에 이른다. 지금은 약 2만 유족 (1세)과 기타 약간의 2세 유족이 활동하고 있다. 60-65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유족이 거의 고령이거나 돌아가셨다. 그리고 2세 유족은 과거사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간 연좌제나 부모의 무능, 생활고와 억압 등으로 이미 많은 유족들이 과거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건강한 유족이 존재한다. 그들 모두 1961년 당시 유족회 활동을 하시고 사형에서 징역 10-15년 형을 언도 받으신 유족회 간부의 자제들이다. 그러나 그분들마저 떠나면 유족회는 와해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로운 민주국가가 탄생할 것을 믿기에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양심세력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태그:#김성수, #전국유족회,피학살자,이영조,, #이성번, #진실화해, #한국전쟁, #학살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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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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