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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러브샷!"

회식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양주와 맥주, 혹은 소주와 맥주를 잔에 섞는다. 일명 폭탄주 제조. 그리고 우선 제조자와 그가 지명한 한 사람이 커플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밀착하며 팔을 감아 단숨에 술잔을 비운다. 일행들의 박수소리에 이어 또다시 폭탄주 2잔이 제조되고, 다음 커플이 등장한다.

직장인들이라면 이런 술자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이 장면이 생소하다면 당신은 아직 건전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다음 러브샷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 원짜리 잔에 감아 '강권한 러브샷'은 유죄

 영화 <연애의 목적>의 한 장면.
 영화 <연애의 목적>의 한 장면.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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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건설업체 사장인 노가다(가명)씨는 A 컨트리클럽 골프회원이었다. 그는 주말이면 지역 유지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끝나면 클럽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술버릇이 고약한 게 흠인 그는 항상 식당 여직원들에게 폭탄주를 강요했다. 사건이 있던 날도 노씨는 맥주와 양주를 섞은 잔에 만 원짜리 지폐를 감은 후 여직원에게 러브샷을 하자고 권했다가 거절당했다. 노씨가 그냥 물러설 리 없었다.

"너 잘리고 싶어? 내가 회장하고 친한 줄 알지?"

당황하는 여직원에게 잔을 건넨 노씨는 여직원의 목을 팔로 껴안고 볼을 비비면서 잔을 비운 후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러브샷'. 두 사람이 술잔을 든 팔을 상대방 목 뒤로 돌려 감은 채 동시에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좋건 싫건 러브샷을 몇 번쯤은 해보았으리라. 어떤 이는 친분의 증표로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동료애(?)로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양쪽이 동의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다.

친한 사람끼리는 친밀감의 표시일지 몰라도 위 사례와 같은 상황의 여직원 입장에서는 낯선 남자와 몸을 맞댄다는 것이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여직원은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여직원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노씨는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행동도 아니었고 분명히 승낙을 얻었지 않느냐"며 "러브샷 한 번 한 게 죄가 될 수 없다"고 맞섰다. 검사는 강제추행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강제추행의 의미부터 되짚었다.

강제추행이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성적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에 비춰보니 회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여직원에게 불이익을 줄 것처럼 러브샷을 강권한 것은 '협박'이고 러브샷의 방법으로 껴안고 살을 맞댄 건 '추행'이었다.

법원은 "우리 사회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친밀감을 표시하거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의미로 러브샷을 하기도 한다"면서 러브샷의 순기능(?)도 지적했다. 하지만 "러브샷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음에도 회장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신분상 불이익을 가할 것처럼 협박해 러브샷의 방법으로 술을 마시게 했다면 강제추행"이라고 봤다. 설사 승낙이 있었더라도 피해자의 자유로운 판단에 의한 유효한 승낙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씨는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성적욕구보다는 잘못된 음주습관 때문인 점"을 감안해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만 원짜리 지폐를 감아 권하는 러브샷도 때에 따라서는 성폭력이 될 수가 있다.

2010년에는 러브샷을 강요하던 교사들이 파면·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교생실습을 나온 여대생들에게 회식을 빌미로 술자리 참석을 강요했다. 불참자들에게는 "교생 점수(학점)를 주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뒤따랐다. 교사들은 술자리에서는 여대생들에게 러브샷을 강요하고 이를 기회로 신체접촉을 하기도 하였다.

참다못한 여대생들의 문제제기로 이들은 교사직을 박탈당했다. 법원도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로서 징계처분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억지 러브샷은 성추행이 되거나 최소한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성추행 공개사과'는 명예훼손일까 아닐까?

ⓒ 막돼먹은 영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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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 "엊그제 제가 회식 자리에서 성춘향(가명) 교수에게 성희롱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사과합니다."

대학병원 한 회의실, 20여 명의 직원이 모여 있는 가운데 의대 교수이자 병원 과장인 변학도(가명)씨가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다. 변씨가 돌발 발언을 하자 회의장은 술렁거렸다. 변씨가 말한 성희롱이란 며칠 전의 일이었다.

변씨는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제자이자 같은 학교 교수인 성씨를 추행했다. 강제로 껴안고 입술을 맞춘 것이다. 성씨는 성추행당한 것도 수치스러운데 그 사실을 변씨가 공개적으로 알리자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변씨가 회식 자리에서 한 행동이 강제추행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공개 사과가 애매모호하다. 유죄일까, 무죄일까. 검찰은 유죄로 봤다. 성씨가 추행당한 사실을 주위에 알렸으니 명예를 훼손했다는 논리였다. 물론 변씨는 공개 사과한 선의를 왜곡하지 말라며 펄쩍 뛰었다. 재판도 쉽지만은 않았다. 1심→2심(1차)→3심(파기환송)→2심(2차)→3심을 거쳤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먼저 1심과 2심(1차)의 요지는 이렇다.

변학도는 피해자 성춘향과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 채 20여 명 앞에서 자신이 성희롱했다는 내용을 밝혔다. 말은 공개 사과라고 하지만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행동이었다. 성씨는 성추행에 충격 받고 성추행 공개로 또 한 번 고통을 겪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부정적이다. 성씨는 책임 여부에 상관없이 좋지 않은 평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공개 사과는 성씨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다.

법원은 강제추행과 명예훼손을 인정,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했다. 이대로라면 변씨는 교수직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성씨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앞으로 성추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차원에서 사과문을 낭독했다. 회식 자리에는 직원 여러 명이 있어서 현장을 목격했고 성씨도 이미 여러 사람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린 뒤였다. 공개 사과 때문에 병원에 널리 알려졌다고 볼 수도 없다. 변씨에게 성씨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범의(죄를 저지르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성추행 공개 사과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던 1, 2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범죄'였던 공개 사과는 대법원을 거치면서 '성추행 재발 방지를 위한 다짐'으로 바뀌었다. 대법원은 사건을 2심(수원지법)으로 내려 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수원지법은 대법원의 뜻에 따라 성추행은 유죄, 명예훼손은 무죄라고 판단해 벌금형으로 감형했다. 이 사건은 다섯 재판부를 거치면서 2009년 9월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로 막을 내렸고, 변씨는 구사일생으로 교수직을 유지하게 됐다.

판결 결과에 앞서 변씨의 행동에 아쉬움이 크다. 공개 사과보다는 피해 당사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우선 아니었을까. 피해자 성씨는 재판 과정에서 법대로 처벌해주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재판 결과를 본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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