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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몸을 덮는 무슬림 여성들의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베일 금지법이 발효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큰 충돌은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 법이 프랑스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예단하기 힘들다. 

지난 수요일에는 이 법을 어긴 여성에게 첫 벌금형이 부과됐다. 에이피(AP)에 의하면 니캅을 입은 27세의 이 여성은 파리의 한 쇼핑센터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은 150유로(약 24만 원)의 벌금을 내거나 시민교육을 받으라는 딱지를 발행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보고된 첫 벌금형 사례로 비공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경찰과 이슬람 여성들과의 충돌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에이피는 보도했다.

프랑스는 4월 11일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키는 법을 발효시켰다. 니캅과 부르카는 온 몸을 가리고 눈만 보이게 만든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전통 베일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법 제정의 목적은 여성들을 구속에서 풀어주고 프랑스의 가치인 평등과 정교분리주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사는 약 5백만 명의 무슬림 중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전통 의상을 금지시킨 법에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랑스 내 온건적인 이슬람 지도자들은 이슬람 신앙과 베일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법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하면서도 베일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베일 금지법이 발효된 날부터 이에 저항하는 조직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경찰과의 충돌을 의도한 시위가 벌어져 파리의 노틀담 성당 밖에서 두 명, 그리고 엘리제 궁 밖에서 한 명의 베일을 쓴 여성들이 체포됐다.

그러나 경찰은 베일 때문이 아니라 허가받지 않은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이 여성들을 체포했다. 사고를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 경찰들에게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날 체포된 32세의 켄자 드리더는 알 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강한 반발을 표했다.

"이 법은 유럽인으로서의 내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난 내 종교적 자유를 방어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남편인 아랄 드리더도 덧붙였다.

"이 법을 지키려면 아내는 집에 처박혀 지내야 할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가? 아내는 13년 동안 베일을 썼고 그것 때문에 누구도 놀라게 하지 않았다."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보도에 의하면 시위는 무슬림 사업가이자 파리 구역의 정치인인 라시드 네카즈가 조직한 것이었다. 그는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불복종 저항을 조직하고 1명당 150유로라는 벌금을 충당하기 위해 이미 1백만 유로를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다. 또한 유럽 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베일을 썼다가 처음 적발될 경우엔 150 유로의 벌금형이 부과되며 반복적으로 어길 경우엔 벌금이 올라가게 된다. 또한 위협이나 폭력을 사용해 여자들에게 베일을 강요하는 사람에게는 3만 유로의 벌금과 1년간의 수감형도 내려지게 된다.

프랑스의 무슬림 여성 인구는 약 2백만 명이고 이중 0.1%인 약 1천 명이 온몸을 가리는 베일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일이 법적으로 금지됨에 따라 니캅이나 부르카를 쓰는 무슬림 여성들은 이제 집에 머물거나 할 수 없이 베일을 벗고 법을 준수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니캅을 쓰는 32세의 마리암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개인적인 선택"과 "종교적 신념"에 의해 니캅을 쓴다고 말한다.

"법을 준수하기로 했지만 되도록 집 밖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법을 받아들이지만 법이 내 신념에 반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무슬림 여성들이 니캅과 부르카 같이 온 몸을 덮는 베일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선택한 여성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을 지키고 예언자 모하메드의 부인들이 했던 것을 따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온건 이슬람 지도자들은 여성들의 베일은 코란의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는 문화적 전통이라고 말한다. 베일을 쓰는 전통은 남성과 여성의 접촉을 제한하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며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남성들이 만든 문화고 전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슬람 지도자들은 베일도 베일 금지법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코란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또한 무엇이 종교적이고 또는 문화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적이든 문화적이든 상관없이 몸 전체를 가리는 베일은 어쨌든 무슬림 여성들의 개인적 선택이고 삶의 일부가 된 전통 복장을 강요에 의해 하루아침에 벗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일을 쓰는 여성들이 모두 억압을 당하는지도 알 수 없고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리보호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전통 복식을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논란의 핵심 중 하나다.

특별히 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가 베일 금지법을 제정했다는 점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 다른 논란은 왜 굳이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만 법적 규제를 가하느냐는 것이다. 특별한 복식을 강요하는 종교 및 문화 집단들은 많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얼굴은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정교분리주의가 아닌 국가에 의한 종교 및 문화 차별이라는 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사르코지 정부는 베일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여기고 법을 통해 여성들을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진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알 자지라(Al Jazeera) 기자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사르코지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의견을 제기했다.

"이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금지법을 통해 표를 얻으려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이것이 프랑스의 정교분리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의 편견에 영합하고 그를 통해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이 사르코지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는 베일 금지법이 발효되기 일주일 전에 정부가 개최했던 이슬람 토론과도 관련돼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서유럽 최대의 무슬림 인구가 살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 이슬람의 역할과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토론하자고 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UMP 내의 일부 의원들은 물론 모든 종교인들도 토론회에 반대했다.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 불교 지도자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토론이 현재 프랑스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혼란만 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프랑스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낙인찍기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 여론 때문에 축소된 형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1905년 법으로 제정된 프랑스의 정교분리를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 사회가 이슬람 신앙과 생활방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들이 논의됐다. 그 결과 탁아소 직원들이 이슬람 전통 스카프나 기독교 십자가 등 모든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무슬림 엄마들이 학교 활동에 참가할 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을 금지하고, 무슬림 부모들이 생물학과 같은 필수 과목을 아이들이 수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이 토론회 또한 왜 다른 종교가 아닌 이슬람에 대해서만 정부가 특별히 사회적 대응을 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온건 무슬림 지도자들조차 프랑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사회 긴장을 높이고, 종교 및 문화 집단 사이의 분열을 야기하고, 급진 무슬림 청년들의 과격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 노골화되자 이에 자극받은 많은 서유럽 국가들의 무슬림 청년들이 급진주의 집단에 가입했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울며 격자 먹기로 베일 금지법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이 법이 향후 어떤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지는 아직 예측하기가 힘들다.


태그:#프랑스, #베일 금지법,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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