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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발(發) 방사능 비가 내리던 4월 7일 목요일, 박석진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찾았다. 연초부터 전의경 부대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근무지 이탈 사태, 그리고 자살 사건으로 뒤숭숭하던 차에, 얼마 전 정부는 2012년까지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겠다던 종래의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휙 저버렸다. 전의경 제도 폐지를 위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을 쏟아온 활동가와 단체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전의경 제도 폐지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산증인'인 박석진씨를 만나 직접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민주화 세력과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가 극렬하게 부딪히던 노태우 정권 시절 신설된 사복체포조 '백골단' 출신이면서, 동시에 군대가 정권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 저항하여 양심선언을 감행한 병역 거부 1세대이다. 거꾸로 돌아가는 현재 사회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래는 박석진씨와 나눈 1문 1답이다.

백골단으로 복무하다 19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양심선언을 하고 병역을 거부한 박석진씨.
 백골단으로 복무하다 19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양심선언을 하고 병역을 거부한 박석진씨.
ⓒ 이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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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를 찾아보니 선생님이 양심선언을 한 날짜가 1991년 5월 4일이더라고요. 이제 조금만 지나면 정확히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는데,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늙었네요.(웃음) 사회단체나 평화운동 쪽에서 활동하면서 전의경들과 많이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느끼는 감회 같은 게 있었어요. 제가 20년 전에 받았던 고통, 고민들이 아직도 이렇게 진행형으로 있구나…. 또 최근 전의경 문제가 불거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단 걸 느꼈어요. 요즘엔 이 문제를 다시 잡아야겠다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 선생님이 양심선언을 하시던 당시의 배경과 정황에 대해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특히 저처럼 젊은층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라서 궁금합니다.
"1991년 군사 정권 시절이었죠. 노태우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공약을 하나 내걸어요. 임기 중간 즈음에 자기가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겠다고요. 그런데 사실 그 이후로도 사회 민주화는 요원했고, 그런 상황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중간 평가를 받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죠.

그래서 공안몰이를 시작해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하고 비슷하게 공안정국으로 만든 거죠. 그러면서 시위 진압 양식 역시 공격적으로 바뀝니다. 그전이 해산 위주의 진압 방식이었다면 1991년 3월과 4월을 지나면서 공격적 진압 방식으로 돌변해요. 시위자를 전부 다 잡는 식이지요. 그때는 전의경이 6만 명 가까이 될 정도로 굉장히 많았는데, 모든 진압부대의 3분의 1을 사복체포조로 바꿔요. 그게 소위 말하는 백골단이란 거죠.

진압이 강경하게 바뀌면서 시위도 격렬해졌어요. 그런 와중에 4월 26일 날, 명지대에 다니던 학생 강경대씨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게 되고… 제가 양심선언을 했던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었지요."

양심선언... "저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어요"

- 그 전에도 백골단 내부의 고발이 존재했던 걸로 아는데요, 1987년 7월 양심선언한 양승균씨를 비롯한 13명의 전경이 그렇고요. 강경대 열사 사건 직후에는 나윤성 의경의 양심선언이 있었고요. 앞선 양심선언들이 당시 선생님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승균이 형(양승균씨)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에요. 제가 나중에 싸울 때 도와주시기도 했고…. 우리나라 전경 양심선언 1호잖아요? 길을 열어줬던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 격렬한 문제와 고통을 풀어야 했는데, 저항하는 방식을 제시해주었던 거죠.

제가 양심선언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게 어떤 건지 잘은 몰라도 양심선언이란 단어를 알고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전의경 생활을 하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전의경 문제, 군대 문제, 내부의 억압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발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만들어갔던 거죠."

1990년대 초 사복체포조 '백골단'이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사복체포조 '백골단'이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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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양심선언이 있으면 내부에서도 전의경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서서 발언한다면 다른 구성원들도 용기를 얻어 동참할 수도 있겠고요.
"그럴 것 같죠? 하지만 군대란 조직은 내부적으로 자신의 고민에 대한 소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갈등이 격화됐을 때, 제가 있던 전경 조직을 예로 들면 내부적 분위기는 굉장히 (문제제기를 한 사람에게) 적대적으로 변해요. 이건 생리적인 문제거든요. 시위가 많아지면 부대에도 못 들어가고, 잠도 못 자고, 길바닥에서 잠들고, 밥도 못 먹고, 이런 상황이란 말이죠. 그런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분노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디다 분노하느냐, 나를 힘들게 하는 직접적 대상이 되겠죠. 그게 시위대나 학생들이잖아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화내야 할 상대는 시위대가 아니고 이런 문제를 야기한 자들, 그리고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우리를 내모는 자들이다'라는 식의 인식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아요. 그런 고민들은 개인적으로 침잠되는 경우가 많죠."

- 병역을 입대 전에 거부하는 것과 복무 중에 거부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제대할 수 있어'하는 유혹이나 고민도 분명 많았을 것 같아요.
"저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어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거든요. 실제로 많은 군인들이 죽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이대로 끝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때 양심선언이라는 저항, 선언의 형태를 알게 되었고요. 제가 부대 내에서 일기를 쭉 썼거든요. 그게 이런저런 고민들을 쏟아내는 창구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때 쓴 일기의 마지막쯤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내가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들을 봉쇄해야 내가 살 수 있다."

'좀 견디면 제대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일상적인 삶의 부분들을 버려야 내가 (양심선언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이 그것을 버려야 할 때다'하는 결심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런 결심은 지금도 해야 해요."

겨우 4주 교육받고 국민의 '통제자'가 되다니

- 2008년 6월, 전경에서 육군으로의 재입대를 요구한 이계덕씨가 국방부에 접수한 민원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부대 내 가혹행위와 구타 외에도 경찰관의 빨래나 세차를 해주거나 심지어 경찰관들이 술을 마실 때 새벽에 일어나 술안주를 만들어야 했다는 등 경찰관의 사적 편의와 시중을 위해 전의경들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는데요.
"그래서 경찰이 전의경 제도를 안 없앨걸요? 그렇게 사병이나 종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없지요. '소대장 전령'이란 게 있어요. 지금도 그런 표현을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소대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주는 거예요. 군화 닦아주고, 옷 다려주는 건 기본이죠. 별별 일들을 다 해요. 이렇게 하루에 18시간 노동시킬 수 있는 조직이 어디 있어요.

얼마 전에 인권위에서 토론을 하더라고요. 거기서 경찰청 관계자가 나와 그렇게 얘기합디다. "치안 공백이 국민들에게 부담되기 때문에 (전의경 제도를) 없앨 수 없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빨리 없애야죠. 왜냐면 치안도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서비스잖아요.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고.

그런데 전의경들이 경찰 소양 교육을 얼마나 받습니까? 2주에서 4주 정도 받습니다. 경찰들이 6개월, 1년씩 교육받고 나와서도 문제 많이 일으키잖습니까? 군대랑은 또 다른 거예요, 이 조직은. 매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거란 말예요. 경찰이 봉사자만은 아니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봉사자란 측면과 통제자란 측면을 같이 갖고 있는 거지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국민들을 통제하는 일선에 나와 있는 겁니다. 또 자신들을 경찰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군인으로 생각해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군인으로 생각하는 게 더 무서워요. 우리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군인이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치안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근본적으로 잘못된 문제예요."

2008년 7월, 촛불집회 폭력 진압에 반대하며 부대 복귀 거부를 선언한 이길준 의경.
 2008년 7월, 촛불집회 폭력 진압에 반대하며 부대 복귀 거부를 선언한 이길준 의경.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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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폐지를 앞두고 있었던 전의경 제도를 2015년까지 유지하기로 군 당국이 결정하여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데요, 발표에 의하면 매년 의경에 1만4800여 명을 배정한다고 합니다.
"군 당국이 지금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전의경 제도 폐지를 2012년에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잖아요. 그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를 병력 자원의 고갈 문제라 얘기했어요. 또 병력 자원이 없어서 군 복무 기간을 늘린다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선 군 병력 자원이 남아돈다고 합니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전경과 달리 의경은 자원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사실은 전경과 본질적으로 같거든요. 저들은 대체복무라고 얘기하는데 일반적인 대체복무와 의경 제도는 좀 달리 봐야 해요. 왜냐면 일반적 대체복무는 봉사적 차원이잖아요. 하지만 경찰은 봉사자로서의 위치만을 갖고 있진 않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의 보위자 역할을 해왔단 말이에요.

국방부와 경찰청을 동일선상에서 취급하고 있는데, 저는 절대로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거죠. 병력 자원 부족하다며 앓는 소리 하던 국방부가 지금 2015년까지 의경 자원 1만4806명 보장한 거잖아요? 2014년에 (폐지 여부) 다시 판단해서 2022년까지 미룰 수 있다고 하는 거잖아요? 사실상 경찰청에 의경 제도라는 백지수표 써준 거예요."

매일매일 시민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군인

- "그래도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하는 군대에 대한 신화, 신념이 전의경 부대를 포함하여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온갖 폭력과 부조리를 무마시키는 것 같습니다.
"해병대에 구타 사건이 났을 때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해병대 특성상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군대가 꼭 그렇게 유지되어야 하냐는 거죠. 이런 이상한 문화의 본질에는 군대라는 조직이 비자발적으로 구성되었다는 태생적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비자발성의 원인에는 한국군의 역사가 있잖아요. 국민의 군대가 아니었던 거죠.

병역거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개인적인 신념으로 총을 들고 싶지 않은 거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개고생'이나 하고, 어떤 신념도 얻을 수가 없고, 아주 비민주적이고, 그런 점에 대해 어떤 자성도 없던 조직이란 거죠.

군대가 정상적인 조직이 되지 않으면 폭력이나 자살과 같은 문제가 계속 있을 수밖에 없어요.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징병제에 대해 다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꼭 모든 젊은이들이 가야 하냐는 거죠."

지난 2009년 1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가운데, 국회앞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한 진압 경찰들이 신종플루에 대비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가운데, 국회앞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한 진압 경찰들이 신종플루에 대비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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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의경 부대 내의 폭력과 구타, 가혹행위는 악명이 높습니다. 왜 유달리 전의경 부대에 이런 악습이 심하게 존재할까요?
"기형적인 조직이라 그래요. 경찰복을 입혀 놨는데, 군대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가 옛날에 시위 진압할 때 가끔 방패를 빼앗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날 잠도 못 자요. 밤새 연병장 도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전의경들은 시위 진압 상황을 전쟁으로 인식해요. 군인들은 매일 전쟁을 하진 않잖아요. 이건 총을 쏘는 건 아니지만 전의경들은 매일매일 시민들과 전쟁을 해요. 그래서 전쟁에서 지지 않을 규율을 강요하게 되죠. 그걸 유지하는 방법은 내부의 강압적인 질서와 문화인 거죠. 그게 폭력이고 가혹행위예요. 아주 오래된 문제예요."

- '병역거부 1세대'로서 요즘의 청년들이 어떤 식으로 군대 문제를 사유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사실 저도 고민 중인 문제예요. 저는 총을 놓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모든 국민이 총을 드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거든요. 모든 젊은이가 총을 들어야 한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식의 관용이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겠죠.

또 한 측면으로는 지금의 군대를 바꾸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지난한 일이겠지만 실제로 바뀌어 왔어요. 전경 구타 문제는 아주 고질적이지만 군대 구타는 많이 없어졌잖아요. 하지만 그게 정책이나 지휘관 때문에 바뀐 건 아니거든요. 우리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바꾼 것들이 큰 영향을 끼친 거죠. 군대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거든요. 정말 징글징글하게 안 바뀌지만, 어쨌든 바꿔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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