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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이 된 첫째 아이 부모들 반모임에 다녀 온 아내가 걱정을 펼쳐 놓는다. 어느집 아이는 국제중을 준비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아이를 여름방학 때 어학연수를 보낸다고 하는데, 우리집만 너무 태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의조로 말을 건넨다. 길 하나를 두고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 표 안 내고 기죽지 않게 키우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자괴감과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생의 능력보다 부모의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 길 건너 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의 부모들은 국제중과 유학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예능에 특별한 관심을 둔 첫째 아이는 3학년 때부터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 때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예를 들어 학원 미술은 창의력을 해친다든가, 태권도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 때문에 시간이 겹친다는 등) 차일피일 미루어 왔는데 5학년 2학기가 되어 엄마와 약속한 시험 성적보다 더 잘 나와서 더 이상 버틸(?)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미술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고 열심히 공부해서 지역에 있는 'ㅅ'예중을 가겠단다. '너 준비 정도로는 안 된다'고 몇 번 설득한 끝에 일반 중학교로 가기로 마음을 바꿨지만, 이번엔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예고'를 가겠단다.

가장 노릇, 참 힘들다

첫째 아이가 가겠다는 ㅅ예중 미술 전공 수업료 안내표
▲ ㅅ 예중 수업료 안내 홈페이지 첫째 아이가 가겠다는 ㅅ예중 미술 전공 수업료 안내표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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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가겠다는 'ㅅ'예중은 한 학년 수업료만 600만 원이 넘는다. 3년 수업료 총계 1867만 원(2011년 미술 전공 기준). 아이의 재능과 아빠 능력의 부조화. 참 서글프다. 그리고 원망스럽다. 중학교 진학조차도 아이의 적성이나 재능보다 부모 능력의 잣대가 우선 되는 사회. 이런 교육 구조를 두고 신분이나 경제 지위의 차별 없이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의무교육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정작 큰 걱정은 다른 데 있다. 아이의 희망대로 예고를 졸업하더라도 또 대학이라는 문턱이 기다리고 있고 이 문턱은 아이만 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문턱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지금도 대학 입학금에 1년치 등록금까지 합치면 천만 원이 넘는 곳도 있다는 등록금 천만원 시대.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은 7년 후면 도대체 얼마의 무게로 쉰을 넘긴 내 어깨를 짓누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첫째 아이가 졸업하고 2년 뒤 둘째 아이가 대학을 들어갈 것이고 또 천만 원 이상의 돈을 4년 꼬박 등록금으로 지출해야 할 것이다. 노후준비? 자녀결혼? 참 꿈 같은 이야기다. 40대 가장에게 끊임없이 슈퍼맨이 되길 강요하는 대한민국, 가장 노릇은 참 힘들다. 

첫째 아이는 현재의 교육제도에 맞춰 진학하면 7년 뒤인 2018년에 대학생이 된다. 올해 교과부장관과 면담을 끝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자율로 정했다는 3% 인상안과 지난 10여간 대학등록금 인상율을 감안해 향후 인상율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5% 인상안을 (전국사립대 등록금 인상율 2001:5.8% 2002:6.9% 2003:6.8% 2004:5.8% 2005:5.1% 2006:6.5% 2007:6.8% 2008:6.7% 2009:0.4% 2010:1..6%, <미친등록금의 나라> 개마고원 참조) 두고 내 아이의 가상 등록금을 계산해 보았다.


2010년 전국 사립대학 등록금 계열별 평균액을 기준으로 3~5%씩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첫째 아이가 예체능 계열로 진학할 경우 2018년 입학 때에는 입학금을 제외한 등록금만 1082만 ~1262만 원(1년치)이 된다. 첫째 아이의 4년 총 등록금 예상액은 3% 인상 기준 4256만원, 5% 인상 기준 5438만 원이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이가 대학생이 되는 2023년은 어떨까. 자연과학계열을 간다고 가정할 경우, 5% 인상 기준으로 1학년 등록금만 1480만원(입학금 제외)이다. 4년간 등록금은 6380만 원. 이렇게 두 아이를 대학 졸업시키려면 1억 1818만 원(5% 인상 기준)이 필요하다.

두 아이 대학 등록금은 1억 1818만원

이것도 어디까지 전국 사립대학 '평균'을 반영한 결과이다. 2010년 등록금 최고액인 인문사회계열 924만원(연세대) 자연계열 1045만원(성균관대) 공학계열 1073만원(고려대) 예체능계열 1177만원(한체대) 의학계열 1251만원(연세대)임을 감안하면 학교 선택에 따라 내가 추정한 두 아이 등록금 예상액도 더 올라갈 수 있다. (자료 -<미친 등록금의 나라>)

또 이는 단순히 학교에 납입하는 등록금만 반영하였을 뿐 입학 당시 부담해야 하는 입학금이나 4년 동안 학교 준비물, 용돈까지 합쳐진다면 부모로서 내가 부담해서 될 교육비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리라 예상된다. 등록금 저렴한 계열과 학교를 선택하고 집 가까운 학교를 권하는 것이 향후 내가 아이에게 해야 할 진학 상담이라면 부모로서 염치없지 않을까? 첫째 아이는 시종일관 예고와 예대를 가겠다고 한다. 아직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예술계열 진학을 준비할 경우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원 등에 돈을 쏟아 붓어야 한다는 예체대 입시대열에 끼어들어야 한다. 음대 다니는 아이 교육비 때문에 아파트를 팔고 단독 주택 2층에 전세로 들어 왔다는 우리 옆집의 사연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멈출 줄 모르고 구르면서 커지는 눈덩이같이 87년 대학 자율화 조치 이후 매년 10% 가까이 오른 대학 등록금. 이제는 그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들이 곳곳에서 자살하고 있다. 실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이 2006년 191명, 2009년 249명으로 73% 급증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모는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이 일을 하고, 자식들은 학업이 본업인지 아르바이트가 본업인지 분간도 안 가는 생활을 하며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집 팔고 은행 대출 내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자식들 대학 생활을 뒷바라지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결국 목숨과 맞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숱한 비극 앞에 착취와도 같은 인상율에 혈안이 된 대학 당국이나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표를 모은 이명박 정부는 떳떳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들의 죽음이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반값 등록금 공약에 제대로 낚인 사람들, 어두운 미래 설계해 보시라

2007년 7월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형오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경선 검증청문회 준비상황 등 당 현안을  점검하고 있다.
▲ 반값아파트, 반값등록금 실현될 수 있도록 2007년 7월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형오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경선 검증청문회 준비상황 등 당 현안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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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5월 3일 한나라당 이방호 당시 정책위원장은 등록금 반값 인하를 7대 공약 중 하나로 소개했다. 2007년 전재희 정책위원장과 김형오 원내대표가 각각 반값 등록금 추진을 약속했다. 이주호 정책위원장도 그해 6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 자격으로 참석한 교육·복지 분야 정책비전대회에서 '5대 교육전략' 중 하나로 반값 등록금을 제시했다고 한다.(한겨레 2011.04.03)

그런데 2008년 9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을 직접 공약한 적이 없다며 공약 자체를 부인했다. '내가' '직접' 하지 않은 '반값 등록금' 공약.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표를 몰아 준 국민이 어리석다면 그렇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내 공약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누구든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공약이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인지, 주어는 반드시 들어가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것이 유권자의 할 일일 게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공약, 국민들은 제대로 낚였다.

사실 대학 등록금이 이렇게 오른 배경에는 정부의 교육에 대한 방임과 대학 당국의 막가파식 재산 불리기가 있다. 역대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대학 등록금 문제가 불거질 때면 대학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 재정 확충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자 정부는 대학에 등록금 책정을 일임하고, 대학 당국은 정부의 지원이 별로 없으니까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밀었다.

지원과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부와 대학, 사립재단은 서로 묵인한 채 학생과 학부모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데 급급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감시 기능과 교육 재정 확충 의지만 있었더라도 대학이 이처럼 '식충이 공룡'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졸업한 지 18년. 초등학교 6학년 아빠로서 아이의 미래를 본다. 등록금 천만 원을 훌쩍 넘을 첫째 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정부가 만들어 낸 대출의 덫에 걸려 아비가 빚쟁이가 되든지, 딸아이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대학 등록금 뉴스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밀려든다.

눈덩이처럼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는 대학 등록금. 먼 훗날 일이라 해서 팔장만 끼고 지켜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세대가 작정하고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꿈적도 하지 않을 대학 등록금. 대학생들이나 그 부모의 짐으로만 지고 가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초중고를 다니는 아이들의 아빠이고 엄마인 30~40대여. 내 아이의 예상 대학 등록금 계산을 당신에게도 맞추어 보시라. 그리고 미래를 설계해 보시라. 종신 보험설계사의 달콤한 사탕 발림만 당신의 미래가 아니다. 두 아이 대학 등록금이 1억을 훌쩍 넘는 미래도 나와 당신의 어두운 미래다. 그래도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우리의 미래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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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학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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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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