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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뮤지엄 데이트>
 책 <뮤지엄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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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왜 다니세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으로 하루 종일 박물관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주말엔 전국 곳곳의 박물관 관람에 푹 빠진 송한나씨에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큐레이터라는 직업 상 매일 박물관 속에 파묻혀 지내면 오히려 멀어질 법한데, 더 찾아다니고 있으니 나 또한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뮤지엄데이트> 저자 송한나씨는 그 대답을 자신이 큐레이터가 된 계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어린 시절 궁금한 게 많아 부모님께 질문을 할 때마다 부모님은 박물관에 데려다 주셨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박물관을 찾는 일이 습관이 되었으니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찾을 수밖에….

저자는 박물관 관람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박물관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박물관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박물관을 즐기며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담을 수 있는 만큼의 내용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억지로 공부하듯 박물관을 찾기보다 즐거운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가서 즐기라는 뜻이다. 박물관이란 곳을 그저 '견학하는 곳'으로 여겼던 삼십대 엄마보다 오히려 자주 찾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재밌게 구경하는 곳'으로 여기는 일곱 살 딸이 박물관을 더 친숙하게 여기는 건 당연지사다.

책에서 제일 먼저 소개하는 곳은 장생포 고래박물관이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울산이란 곳을 처음 방문했다는 저자. 워낙 바다와 동물을 좋아해서 선사 시대부터 고래가 유영했다는 울산 장생포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갖고 여행을 떠난다.

고래 박물관에 대한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은데, 거대한 고래 표본에 얽힌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시 한 번 전시 기획자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든다.

먼저 고래를 2년 간 모래 속에 묻어 살을 발라낸다. 그 다음 섭씨 40도 즈음의 뜨거운 물에 4개월 담가 기름을 제거하고 채취된 뼈를 잇는 연골을 제작하여 골격 표본을 완성하기 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처럼 철저히 진행된 표본 제작 과정에도 착오가 있다는 것.

"고래 뼈에서 기름을 제거하는 기간이 충분히 계산되지 않아 장생포 고래 박물관에 처음 전시되었을 당시 표본에서 고래 기름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박물관 직원들은 표본 관리하랴, 바닥에 떨어진 기름 제거하랴 고생이 많았고 현재는 바닥에 떨어질 정도의 양은 아니지만 골격에서 배어나오는 기름을 정기적으로 제거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연은 고래 박물관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박물관에 모두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박물관 소개 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박물관에 숨겨진 재미를 찾아 전달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섞여 있어서 한 권의 박물관 수필집을 읽는 소소한 감동이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트릭 아트 뮤지엄은 그야말로 재미를 위한 박물관이다. 딱딱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박물관이 두렵다면 이런 가벼운 느낌의 박물관부터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림 속 주인공들이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움직이고 변형되어 관람객들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고 활기차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서는데 계단 밑에 떨어져 있는 만 원권 지폐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슬쩍 눈치를 살피고 발로 밀어 당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폐마저 트릭아트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는 전시물 중 하나였다. 민망한 마음에 서둘러 향한 출구마저도 트릭아트로 그려져 있어 직접 만져보고서야 진짜 문을 찾을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박물관 나들이를 좀 더 심도 있게 만들고 싶다면 독립 기념관, 한국이민사 박물관, 전통문화콘텐츠 박물관 등을 추천한다. 독립 기념관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적 현실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장난스럽게 지나치는 관람객들을 보며 반성하게 되며, 이민사 박물관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하와이에 이민 간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안동에 위치한 전통문화콘텐츠 박물관은 이름만 보면 굉장히 무겁고 딱딱할 것 같지만, 생각 외로 재미있는 콘텐츠가 가득한 곳이다. '국내 최초로 유물 없는 박물관'이라니 좀 특이한 느낌인데, 디지털화된 유물들을 최신 장비로 접할 수 있어서 신기하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방문한다면 틀림없이 환호를 지르며 박물관 관람에 적극 참여할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에 있는 '놋다리 연주놀이'에서는 놋다리밝기의 유래를 알리는 영상 위로 연주를 기다리는 음표가 내려와 아이들을 흥겹게 해준다. 천 뭉치를 스크린에 토닥토닥 두드리면 탁본이 완성되어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시스템도 있다.

책에 소개되는 여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박물관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곳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일곱 살 딸아이와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아이는 내가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잘도 발견하여 재잘재잘 이야기하곤 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시시하고 딱딱한 교과서적 전시물을 늘어놓은 곳이 박물관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박물관이 아닐까? 매일 아이들과 어디로 나들이할까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에 소개하는 박물관들을 함께 방문해 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태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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