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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해수욕장
 죽도 해수욕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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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진다.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하얀 거품과 같이 밀려왔다가 모래밭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시선을 들어 앞을 보니 봉긋한 봉분 같은 것이 보인다. 저게 죽도인가 보다.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 불린다는 그곳은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뭍에 붙어 있다고 했다. 혼자는 외로워 뭍이 되고자 기를 쓰고 뭍의 끄트머리에 달라붙은 건가?

죽도 해수욕장 모래밭에는 몇 십 마리는 됨직한 바닷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햇볕이 따사로워 해바라기를 하려고 모여든 것이 틀림없었다. 어떤 녀석은 바다를 바라보는 자세로 서 있고, 어떤 녀석은 가는 다리를 접고 앉았다.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는 녀석들을 보니, 내 맘까지도 한가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몇 녀석이 재빠르게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몇 녀석은 나를 힐끔거리면서 날아오를 시기를 탐색한다. 몇 녀석은 종종걸음으로 바다 방향으로 달려나가기도 한다. 여차 하면 날아오르겠다, 이거지?

녀석들을 향해 달려가면 죄다 한꺼번에 날아오르려나? 궁금했지만, 참았다. 불청객 노릇은 언제, 어디서든 하지 않는 게 좋지. 그래서 녀석들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다. 그런데도 몇 녀석이 날개를 펴고 바다를 향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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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바닷새들을 보고 걸으려니, 사람만큼 번잡하고 분주한 삶을 사는 존재는 없겠다, 싶어진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고 바쁘고, 어른은 어른들대로 제각각 종종걸음을 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새들은, 동물들은 그럴 일이 없지. 그러다가 혼자 풋 웃었다.

개 훈련소가 생각났고, 원숭이 학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훈련이나 교육을 받는 동물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제 필요에 의해서 그들을 훈련이니 교육이니 하는 말로 미화시키면서 못살게 구는 것일 수도 있다.

자꾸만 걸음이 더뎌지는 건 이렇게 새를 보느라고 지체하고, 바다를 보느라고 멈춰 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주문진항에 도착할 예정인데 이러다가 해가 꼴까닥 지겠다.

길 위에 서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죽도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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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에서 내려다본 풍경
 죽도에서 내려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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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 죽도에 닿아서는 죽도 꼭대기까지 올라가 죽도정을 구경하고, 전망대에서는 아예 퍼질러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토마토까지 꺼내 먹었다. 멀리 방파제 끝에 핏빛처럼 붉은 등대가 외롭게 서 있다. 등대 뒤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참 이상하지. 어째서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것일까?

물치항에서 낙산해수욕장까지 걸으면서 바다를 보았고, 하조대까지 걸으면서 또 바다를 봤더랬다. 그것도 모자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모텔에서 자면서 바다를 보고 또 봤는데도 바다는 여전히 그리운 존재로 남아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바다는 볼 만큼 본 것 같은데도,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으니 이런 감정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뭍에서 태어나 뭍에서 자란 탓인가?

죽도를 한 바퀴 돈 뒤, 걸음을 재촉했다. 바다는 휴휴암에서도 시퍼렇게 살아서 펄떡이고 있었다. 휴휴암은 쉴 휴(休)자가 연거푸 이어지기에 한적하고 조용한 곳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직접 가보니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방생을 하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어찌나 북적이던지, 그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바다 가까이 다가가야 말아야 하나, 망설였으니 말 다했다. 무리지어 모인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거나 서서 방생법회를 하는 중이었다. 방생용 물고기를 가둬두는 커다란 어항까지 있었다. 어항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죄다 방생을 한 건지, 아예 채워두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휴휴암에서...
 휴휴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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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에서...
 휴휴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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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바닷새를 구경했는데, 지금은 본의 아니게 사람을 구경할 참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놓인 용왕님 그림 앞에서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고, 절을 하는 사람들 뒤에 섰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왕님에게 무엇을 기원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나라면 무엇을 간구할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길 위에 서면 생각이라는 게 너무 단순해진다. 밥 안 굶고, 잘 곳만 있으면 그 뿐이다. 기왕이면 맛있는 밥을 먹었으면 좋겠고,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좋은 거, 편한 거 따지려면 럭셔리한 여행을 하든가 집에 콕 박혀 있어야 하니까.

파도에 깎인 바위가 부처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불교 성지로 불린다는데,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어떤 건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사람들 구경을 하다가,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 부서지는 것을 보다가 그냥 돌아 나왔다.

걷기 좋은 길은 늘 짧은 법이다

휴휴암에서...
 휴휴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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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따라 이어지던 길이 끝나고, 길은 7번 국도로 이어진다. 주문진까지 9km, 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강릉까지는 28km. 7번국도 옆에 데크로 길을 만들어 놨다. 그걸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걷는 사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놓은 길이리라. 사납게 달려오는 대형 차량들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이런 길이 주욱 이어지면 별다른 위험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하긴 걷기 좋은 길은 늘 짧은 법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지.

남애항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횟집에서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방파제를 따라 걷는 사람들도 있었고, 항구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해대로
 동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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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남애항에서 아주 오래전에 봐서 내용조차 가물거리는 영화를 떠올렸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그 영화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영화는 1984년에 제작되었으며, 안성기·이미숙·김수철 등이 출연했다. 당시 4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최고의 흥행작이어 되었다고 한다. 아, 그 때는 40만 명을 동원하면 흥행작이었구나. 확실히 달라졌다. 지금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시대가 아닌가. 영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블록버스터 영화가 만일 40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면, 완전히 망했다고 하겠지.

남애항에는 영화 <고래사냥>을 오래도록 기리고 싶었는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영화가 오래되어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것처럼 표지석 역시 묵은 티가 역력했다. 세상에 빛이 바래지 않는 것은 없다. 하다못해 기억마저 빛이 바래기 마련인데,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은 오죽할까. 하긴 오래된 영화를 기리는 표지석이 새것으로 반짝인다면 그것 또한 생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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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행이란 이렇듯 오래된 기억의 창고를 헤집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남애항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고래사냥>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며, 배창호 감독의 이름 또한 기억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까지도.

바다는 철조망에 가로 막혀 있었다. 동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철조망이 완전히 걷히는 날이 오긴 올까? 물론 일부 걷힌 구간도 있지만, 저렇듯 철조망에 가로막힌 바다도 많다. 주문진으로 가는 길, 해안도로에 쉴 수 있게 의자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걷다가 쉬었다 가라는 곳인가,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가끔 쉬었다 가라는 곳인가.

그곳에서 바다를 향해 앉으니, 바다보다 철조망이 먼저 시선을 가로 막는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철조망이 없이 툭 트이게 펼쳐진 바다는 그냥 눈으로 슬쩍 보고 지나가면서 이렇듯 철조망으로 가로 막힌 바다는 굳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양양을 넘어서 주문진으로 들어섰다. 주문진 해수욕장을 지나고, 소돌 해변을 지나야 주문진 항이다.

집에서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남애항
 남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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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돌 해변에서 주문진 항 쪽으로 가다보면 바다가 아닌 내륙 쪽으로 주문진 등대가 보인다. 하얀 등대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태로 서 있다. 그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19년.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등대다. 등대를 감싸듯이 작은 공원이 들어서 있는데, 그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맛도 제법 괜찮다. 그래서인가,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주문진 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 시 반이 넘어서였다. 오전 9시에 하조대를 출발했으니, 8시간 반을 족히 길 위를 서성거린 셈이다. 허벅지 근육이 뻐근하다. 혼자 걸으니 몇 번 쉬지 않고 내처 걸었기 때문인 것 같다. 주문진 항은 저물녘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시장이 큰 편이기도 하거니와 토요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건어물 상점을 지나, 식당을 찾아 기웃거렸다. 간단하게 간식만 먹었을 뿐, 점심을 걸렀기 때문에 시장기가 돌았다.

자그마한 식당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기에 어중간한 시간이라 식당 안에 손님은 없었다.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는데, 생선이 너무 구워졌고, 짰다.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은 이래서야 한 번 왔던 손님이 다시 오겠나.

주문진 등대
 주문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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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랬다. 터미널이나 역 주변의 식당들은 뜨내기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맛이 없고 값만 비싸다고. 그래서 여행을 가면 가급적이면 그런 곳을 피하라고. 그건 유명 관광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관광지 주변의 식당은 음식은 맛이 없고 값만 비싼 곳이 대부분이지 않나. 게다가 불친절하기까지 하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 그런 곳보다 그런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다가 실망한 경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걸 맛있다고 하면서 찾아오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린 적 여러 번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깨우친 것 하나는 집에서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는 것. 그건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남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직접 차려준 밥이 가장 맛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분들은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에게 선뜻 밥상을 차려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태그:#도보여행, #강원도, #주문진, #죽도, #남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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