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투쟁이 일어날 때 소위 말해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활동가들도 많이 참여했었다. 국민 대중들의 자발적인 흐름으로 형성된 집회였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판을 기획하거나 발언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일상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쑥 무대 앞으로 나와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참가자들의 신선한 발언이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모 단체의 활동가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평소 활동가들만이 모인 집회라면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 내려도 될 법한 말이었다. 발언의 내용은 일반 시민들의 발언과 차이가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는 이명박 정부 퇴진과 현재 모인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향하자라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발언을 듣고 뿔이 난 것은 발언의 내용이 아니라 발언자가 사용하는 단어와 태도였다. 집회에 참가한 참가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 격양 되어 거친 단어와 손짓을 하며 대중들을 가르치려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결국 참가자들과 소통하지 못 하고 대중들을 선동했던 모 단체 활동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몰매를 맞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다른세상은 가능하다-제이슨 델 간디오> 동녁
 <다른세상은 가능하다-제이슨 델 간디오> 동녁
ⓒ 동녁

관련사진보기

미국의 급진 활동가로 불리는 제이슨 델 간디오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을 얘기 하고 있다. 저자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라고 믿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말도 행동만큼 중요하다'라는 주장을 한다.

처음 이런 저자의 입장을 들었을 때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보통 나도 대학생 친구들과 학교와 시내 거리에서 정치적 활동을 준비할 때 말은 행동의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말하는 태도의 중요성 보다 실제로 활동에 필요한 돈, 사람, 내용 등의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물질적인 부분을 통해 비 물질적인 수사와 가치 등을 형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돈과 사람 등을 모우기 위해서는 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대학교 졸업 할 때쯤 되어 알게 되었다.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함축하는 표현을 하였을 때 사람들은 내가 제안 하는 활동과 후원에 참가 했다.

예를 들면 대학생 친구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가자 라고 말을 한 경우를 들어보자. 여기서 그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함께 싸우자 라고 말했을 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대신에 현재 20대가 처해 있는 불안정 노동의 현실에 대해 공감해주는 이야기를 하고, 미래에 비정규직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게 거리로 나가자고 했을 때 말이 먹혔다.

수사도 수학과 같은 방법과 비법이 존재!

저자는 책을 통해 단순히 수사의 중요성만을 언급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말을 잘하고 대중들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법도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단 급진주의자들의 수사학이라고 해서 특별한 방법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보통 수사학에서 다루는 대중연설에서의 발성과 시선 처리, 일반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 접근법 등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다. '뭐 다른 책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최소한의 규칙과 방법조차 숙지하지 못해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씁쓸했다. 서론에서 언급한 2008년 촛불,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진보정당, 현실과 괴리 된 진보 지식인들의 언어 등을 보았을 때 저자가 왜 이렇게 친절히 수사에 대해 책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일반 수사학을 다룬 책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은 급진 활동가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87년 6월 항쟁 당시 '독재 타도! 호헌 철폐!', 노동운동에서의 '단결 투쟁!',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집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과 같이 시대를 대표하고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개발이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올바른 영향이 중요"

"활동가들에게는 자신이 바른 말을 했다는 만족감보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올바른 영향이 더욱 중요하지만 때로는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 -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라는 책에서 다루는 수사학의 기술과 새로운 언어의 창안 등의 최종 목적은 하종강씨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올바른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말이 얼마나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집회 현장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을 잘하는 사람' 보다 '나의 마음을 흔들고 행동하게 하는 언변가'로 기억되는 활동가가 배출 되는데 이 책이 기여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사학, #다른세상은가능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