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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대법원은 파업권에 관한 중요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1. 3. 17 선고 2007도482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근로자는 기본권으로서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그러므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하여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위 내용만으로는 대법원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판결로 인해 폐기된 종전 판례를 살펴보면 파업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래 법원은 단순 파업과 같이 단지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무 제공을 거부한 행위도 위력(威力)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았다(대법원 1996. 5. 10. 선고 96도419 판결).

 

위와 같은 판례 법리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91년경부터 대법원은, 근로자들이 아무런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순히 노무 제공을 집단적으로 거부한 행위 그 자체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개발하고선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활발해진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하였다.

 

이것은 또한 파업을 사회적으로 유해한 현상으로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법원이 단순 파업도 원칙적으로 형법상 범죄로 취급한다는 것은 파업을 마치 절도나 강도 등의 행위와 동등하게 취급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종전 판례는 18세기 혹은 19세기 유럽의 단결 금지 법리와 다름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폐기시킨 법리는 바로 '단순 파업도 범죄다'라는 그 단결 금지 법리의 기초 중 일부이다.

 

종전 판례 법리와 이론상 대칭점에 설 수 있는 것은 '단순 파업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법리일 것이다. 이 판결은 "근로자는 […]  원칙적으로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헌법 제33조 제1항)."고 전제하며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판결문에 헌법 제33조 제1항이 인용된 것을 보고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파업과 관련된 종전의 대법원 판결문에서는 헌법 제33조 제1항은 거의 인용되지 않았고, 인용된 경우에도 그것은 쟁의행위 금지 규정에 대한 위헌 주장을 기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법이 파업권을 보장한 나라의 법률가가, 법원이 근로자의 파업권을 인정하는 근거로서 헌법 조항을 든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근로자들이 헌법상 기본권인 파업권을 집단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는 마치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범죄자로 취급받는 것과 동일하다)을 감안한다면, 이런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 파업을 핑계 삼아 형사법을 이용해 근로자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 판결이 선고된 이후, 일각에서는 그로 인해 노사관계의 리스크가 커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2011. 3. 18.자 문화일보 사설). 그러나 이것은 판결의 취지를 오해한 것이다. 이 판결은 기업에게 더 이상 단순 파업을 핑계 삼아 형사법을 이용해 근로자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 만약 단순 파업에 대해 형벌 조항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 위험 부담은 이를 주장하는 자가 져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형사법의 일반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한다. 만약 잘못된 관행이나 판례를 수정하는 것이 리스크를 키우고 부정의(不正義)하다는 논리라면, 그것은 법원의 역할이나 기능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판결의 반대의견 및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법리적으로 볼 때 이 판결에 대해 종전 단결 금지의 판례 법리를 완전히 벗어났다거나 법 원칙에 부합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것이 한국의 노사 현실이 19세기 단결 금지 법리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대법원은 '파업이 사회적으로 유해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21세기 한국의 대법원이, 늦었지만, 19세기적 시민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을 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판결이 노사관계에서도 일반 법 원리(죄형법정주의)가 적용되는 기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사 현실에서 파업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좋은 것일 때도 있고, 나쁜 것일 때도 있다. 이는 마치 좋은 사용자와 함께 나쁜 사용자가 있고, 좋은 노동조합과 함께 나쁜 노동조합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상사가 모든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 나라의 법률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는 불행해진다. 법률이 좋은 것을 좋게 평가하고, 그것이 시장에서 온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만 그 국가 역시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

 

오늘날까지 한국 법원은 노사관계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단지 기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기업도 노사관계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렸고, 단지 노동조합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근로자의 노동 기본권은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노사관계에서는 좋은 기업과 노동조합이 바보로 취급되는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 판결은 노사관계에도 위와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최초로 천명한 것이다. 즉 '파업이므로 폭력적이고 나쁜 사회적 현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나쁜 파업이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 우리가 법과대학에서 배우던 헌법과 형법의 여러 기본 원칙(사실상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이미 시민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지키는 것이다)들이 노사관계에 적용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강고해 보이는 판례 법리 하에서 개별 변호사가 그에 반대되는 논리를 재판에서 변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때때로 비관적인 피고인을 설득해야 하고, 때로는 법관이나 검사의 냉소적 자세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 등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노동 사건에서 단순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들의 무죄를 주장했던 여러 변호사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도재형 씨는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업무방해죄, #노사관계, #위력, #파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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