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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거실을 서재로' 라는 운동을 중심으로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없애는 움직임이 유행했다. 가족 모두가 모이는 공간인 거실에서 텔레비전이라는 바보상자를 없애자는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거실에 텔레비전을 없애고 서재로 만든 결과는 어땠을까? 과연 텔레비전을 없앤다고 해서 가족이 행복하고 아이가 즐거워졌을까는 의문이다.

 

<어린이 심리학>(이주영 저, 지식프레임 펴냄)은 상담교사이자 상담학 박사인 이주영 선생님이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어 쓴 책이다. 이 책 중에는 텔레비전 없이 사는,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컴퓨터를 하거나 티비를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훨씬 좋다는 생각에서 아이의 텔레비전 시청과 컴퓨터 이용을 제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고 결국 왕따가 되어 괴로움을 겪는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강조한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서 행동한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아이와 부모는 불협화음을 내고 심지어 아이가 문제 행동을 많이 해서 상담사를 찾아 왔을 때 저자는 마음이 아프다.

 

처음 학부모 상담을 시작했을 때는 많은 부모들을 원망하고 만나면 '아이의 모든 문제는 부모님 때문'이라며 야단을 쳤다는 상담사.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만난 많은 부모들을 통해, 서서히 어려움과 난감함을 공감하면서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질책이 아니라 위로와 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나 성격, 욕심과 기대라는 안경을 쓰고 아이를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애당초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투명하지 않은 얼룩진 안경으로 자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책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부모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늘 부모들에게 자녀보다는 부모 자신을 먼저 돌보고 부모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 자녀를 위한 최선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거짓말을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아니, 이 조그만 것이 벌써 거짓말을 해?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야단을 쳤다. 아이는 엄마의 반응에 깜짝 놀랐는지, 다시는 거짓말 같은 건 안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남편 또한 놀랐는지 주변 부모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교육에 나름 소신이 있고 사회학 분야 전문직에 종사하는 친한 여자 선배는 대뜸 이렇게 얘기한다.

 

"야, 원래 그 나이에는 거짓말 가끔 하는 거야. 우리 딸(7세)도 얼마나 거짓말을 해대는지 못살겠다. 하지만 나는 이해해. 나도 거짓말 많이 했거든.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데, 너도 생각해 봐. 대학 때는 학교 일한답시고 거짓말하고 데모하러 다니고 그랬다."

 

남편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으며 나 또한 '맞아, 나도 중학교 때 학교서 늦게 끝났다고 거짓말하고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부모인 나도 해왔던 것이 아닌가.

 

아이에게 부모가 받은 상처 되물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책의 저자 또한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부모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라고 말한다. 어떤 아이는 ADHD 증상을 진단 받고 자신이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상담자를 찾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ADHD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산만하고 행동이 거칠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학력이 높은 부모 밑에서 자라온 이 아이는 자신이 엄청난 문제아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런 부정적 인식이 아이를 점점 더 나쁜 행동으로 몰고 간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병리적인 진단명을 잘 붙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바뀔 가능성이 있다. 나 역시 상담을 하면서 아이의 문제행동이나 마음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주의가 산만하고 과잉 행동을 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ADHD 라는 진단명을 남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심리학 이론 중에 '낙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너는 행동이 뒤떨어져, 너는 나쁜 아이야, 너는 산만하구나, 너는 참 게으르구나' 등의 부정적인 용어로 아이를 낙인찍으면 그 사람은 그러한 부정적 행동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론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부모 자신의 행동부터 돌아보자. 사랑하는 아이에게 '너는 왜 그리 못 났니? 동생보다 못해' 라는 부정적 용어를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자라면서 받아온 흔한 상처들을 자녀에게 되물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꽃과 같은 아이들에게 밝고 건강한 미래를 선물하고 싶다면, 저자의 말처럼 '부모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행복한 부모의 미소를 보며 아이들은 저절로 자신의 행복을 일구어가는 방법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태그:#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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