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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 전 창덕궁 관리소장과의 인터뷰
▲ 세계유산 창덕궁 최종덕 전 창덕궁 관리소장과의 인터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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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창덕궁을 보고 '옛날의 창덕궁도 이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예전 모습의 10%도 남아 있지 않아요."

<조선의 참 궁궐 창덕궁>의 저자인 최종덕(53) 전 창덕궁 관리소장을 지난 23일에 숭례문 현장사무실에서 만났다. 숭례문복구단 부단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의 창덕궁과 과거의 창덕궁이 너무 다르다고 강조한다. 조선시대 때 창덕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1830년경에 그려진 <동궐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동궐도>는 동쪽에 있는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조감도 형식으로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최 전 소장은 <조선의 참 궁궐 창덕궁>에 실린 <동궐도>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 동궐도를 보세요.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건물들이 겹겹이 세워져 있지요. 오밀조밀한 미로처럼. 지금은 이 건물들 대부분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빈 공간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창덕궁을 둘러보면서 '건물이 너무 많아서 길 잃어버리기 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래 모습의 10%만 남아 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라면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땠을까. 그래도 창덕궁은 경복궁이나 창경궁에 비해서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가 있었다.

반면에 경복궁과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때 너무 많이 파손되었다. 특히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면서 '창경원'으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던가. 일본인들은 조선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의로 궁궐을 파손했고, 그 결과로 지금처럼 빈 공간이 많은, 썰렁한 궁궐이 남게 되었다. 창경궁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식물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온실건물이라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파손되었다고 하더라도 궁궐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동궐도>가 있으니 그대로 복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라진 다른 건물들까지 전부 복원할 필요가 있을지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복원하기 이전에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관리계획부터 있어야 해요. 창덕궁의 경우 궐내 각사 지역을 복원했는데 관리가 잘 안 됩니다. 습기 차고 곰팡이 피고. 집은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야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추우면 불도 피우고 매일 쓸고 닦고 해야 하는데 지금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힘들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

안쪽에 남아있는 식물원
▲ 창경궁 안쪽에 남아있는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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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태종이 재위에 오르고 5년 후인 1405년에 지은 궁이다. 태종은 경복궁의 위치가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면서 창덕궁에 기거하게 된다. 사실 경복궁은 태종에게 마음 편한 곳이 아니었다. 자신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을 죽인 곳이 경복궁이니 그곳에서 사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긴 것도 당연하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밤마다 나타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제가 책에서도 썼지만 창덕궁은 조선왕실의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됩니다. 대부분의 왕들이 창덕궁에서 생활했어요. 물론 태조가 경복궁을 지었지만 그 경복궁은 1592년에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불에 타버렸어요. 그리고 1868년에 고종이 경복궁으로 이어(移御) 할 때까지 300년 가까이 그냥 방치되어 있었죠.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는 창덕궁의 역사고 임진왜란 이전에도 왕들이 창덕궁을 더욱 선호했죠."

최 전 소장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경복궁은 제 생각인데 중국적인 궁궐이에요. 평지에 지어졌고 좌우대칭을 맞추려고 했죠. 궁궐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에 맞게 지어진 궁궐입니다. 반면에 창덕궁은 그렇지 않아요. 산자락에 지어졌고 좌우대칭도 아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잖아요. 산기슭에 집을 짓고 살아왔고. 그래서 창덕궁은 우리 민족의 궁궐이라고 보는 겁니다."

창덕궁이 왕을 위한 공간이었던 반면에 창경궁은 대비(大妃) 같은 왕실의 어른들을 위한 궁궐이었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면서 들어간 곳도 창경궁이다. 창경궁과 창덕궁을 합쳐서 '동궐'이라고 부르지만, 창경궁은 동궐 중에서도 동쪽에 있는 궁이다. 그래서일까. 창덕궁이 남향인데 반해 창경궁은 동향을 하고 있다.

"창경궁이 왜 동향인지 그 이유는 모릅니다. 원래 동향으로 지어졌고 임진왜란 이후에 복원할 때도 동향으로 복원되죠. 당시에 동향으로 할지 남향으로 할지 갑론을박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있습니다. '집은 남향으로 짓는 것이 맞는데 선조들이 동향으로 지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동향으로 복원했다고 실록에 적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거치면서 파괴된 우리의 궁궐들

근정전
▲ 경복궁 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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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 소장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만 2년가량 창덕궁 관리소장을 지냈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임명으로 창덕궁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소장으로 있을 때 힘들었던 점은, 관람객들에게 창덕궁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의 창덕궁과 예전 창덕궁이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일반 관람객들은 '조선시대에도 이런 모습이었을거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창덕궁하면 '이방자 여사가 살던 곳'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구요. 이방자 여사가 낙선재(樂善齋)에 살았었지만 그 이전에 낙선재는 헌종이 살던 곳이에요."

관람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실은 바로 희정당(熙政堂)과 대조전(大造殿)이다. 원래의 희정당과 대조전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에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 있는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을 헐어서 그 목재로 희정당과 대조전을 복원했다. 이렇게 해서 경복궁도 제 모습을 잃게 된다.

"희정당과 대조전은 1980년대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반면에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면서 함께 세운 후원의 주합루는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죠. 주합루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물인데 보물로 지정되지 않고 조선총독부가 만든 건물은 보물로 지정되고, 좀 균형이 안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리자체의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한다. 넓은 창덕궁의 면적에 비해서 관리하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리인들의 상당수가 창덕궁의 정식직원이 아니라 외주업체직원이라는 것도 문제다.

개발의 열풍이 비켜간 별천지, 창덕궁

경회루
▲ 경복궁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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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전 소장은 소장으로 있던 시절에 1년 반가량을 창덕궁 내에서 살았다. 복원한 건물에 들어가서 살면서 9시 뉴스에도 나왔다고 한다. 그것을 안 좋게 보는 시선들도 많았다. 그 많은 돈 들여서 창덕궁을 복원했는데 개인 사저가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래도 밤에 당직자만 있는 것보다는 소장도 함께 있는 것이 궁궐을 위해서도 좋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비판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저는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직접 살아보니까 창덕궁의 진면목을 좀 더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와서 구경하는 것하고 근무하면서 보는 것하고 또 살아보는 것하고 다 다르잖아요. 창덕궁에서 살다 보면 여기가 서울 같지가 않아요. 창덕궁 면적의 60%가 후원인데 그 안에 들어가면 참 편안하고 푸근하죠."

1926년에 조선총독부는 창덕궁 남쪽에 도로를 뚫어서 종묘와 창덕궁을 갈라놓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은 이 공사를 끝까지 반대했고, 조선총독부는 순종이 서거하자마자 공사를 단행했다. 조선의 신성한 공간인 종묘의 허리가 잘린 것이다.

최 전 소장은 이를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하도를 뚫어서 차들은 지하로 다니게 만들고, 지상으로는 창덕궁과 종묘를 다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계획안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장으로 있던 당시에는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문제로 바쁘던 때라서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 전 소장은 창덕궁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방문 전에 공부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번 방문해보고 다 알려고 하면 안 됩니다. 창덕궁이 아주 넓잖아요. 그 넓은 곳을 한 번 방문해보고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러 차례 방문해주시고, 방문 전에는 인터넷이나 관련책자로 공부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수문장 교대의식
▲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수문장 교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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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창덕궁, #세계유산, #최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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