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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빈국도 아니고 국내지원으로 충분히 회복이 가능한데 한국에선 기부운동이 벌어졌다니 조금 그렇습니다. 과거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핍박받고 있을 때에 한국정부는 나 몰라라 했습니다. 같은 민족인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목숨을 잃어도 관심조차 없었던 대한민국이 '인도적'으로 일본을 구하려 하네요.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재일교포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정권안보에 이용만 해 온 사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명확한 진실규명이나 사과가 없이 그저 일본을 돕는 것을 '인도적 문제'라 생각한다면 나는 백번 이해가 안 갑니다. 이것은 그저 위선이고 오히려 '비인도적'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저러나 이번의 천지이변이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라도 된 것인지 조금은 우려됩니다. 침략의 희생자 우리 재일동포, 여전히 오늘도 일본 땅에서 죽은 듯이 숨만 쉬고 지내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인 우리 재일교포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역사의식이 개탄스럽습니다."

 

이번 일본대지진 참변을 겪고 있는 와중에 한 재일교포가 내게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1923년, 동경대지진 당시 죄 없는 재일교포 약 6천 명이 일본인들의 죽창에 학살당했다. 함석헌도 당시 일본에 있었는데 학살당하기 직전 가까스로 생명을 구했다.

 

내가 진실화해위원회 근무 당시에도 인권침해사건 희생자의 많은 분들이 재일교포 분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납북어부를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은 주로 일선 경찰이나 공안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반면 재일교포를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은 주로 권력의 상층부들이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동포를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이토록 차별하는 과거 군사정권의 잔인한 술수를 보고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던 순간도 많았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이토록 지독히 배타적으로 차별하는 나라를 인권국가나 선진국이라고 이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일교포들이 어떤 심정으로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은 지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 김겨레씨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 한국에서 생활한지는 얼마나 됐나?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공부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한국에는 2002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왔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조국을 알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모님의 권유가 강했다. 주변 친구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서울대학교로 유학을 왔다.

 

그런데 한국어를 전혀 몰랐던 나는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었다. 서울대 학생들은 외국인 유학생이나 다름없는 나를 진심으로 친구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를 일본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 괴로웠다.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 가져온 고통과 조국 사람들에게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서러움으로 학부시절은 우울하게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고뇌가 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져 대학원에 가서 재일동포 연구를 시작했다. 조국 사람들에게 재일동포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렇게 석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기고 당장 마련할 학비도 없어서 나는 박사 진학을 보류하고 생활을 위해 취업의 길을 선택했다. 차분하게 생각해도 조국에서 보낸 지난 9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행복한 세월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에 돌아가기보다 이곳에 남고 있고 싶은 내가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김겨레씨 약력

2002 오사카 미쿠니가오카 고등학교 졸업

2007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2009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 졸업

2011 현재 국내 기업에서 직장생활 중.

- 학업 관련 외에 재일교포로서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이방인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직장을 갖게 되었다. 직장은 내가 재일동포든 일본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으로만 봐주니 어떻게 보면 편하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국적이 한국이라도 법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한 번은 국세청에 내가 '외국인 근로자'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때 기분이 참 복잡했다. 또 일상적으로는 내국인과 같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매번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든지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든지 하는 불편들이 있다.

 

그래도 문제는 역시 언어이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든다. 회의 시간이나 중요한 자리에서 어눌한 말투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내가 있다. 이방인이면 이방인답게 어눌한 말투로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지만,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자꾸 생긴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내 삶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일상이 갈등의 연속이다. 완벽한 한국인이 되어 우수한 한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가 있으니 삶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 일본사회와 한국사회를 비교해서 말한다면?

"일본 사회는 겉으로는 깔끔하고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격에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내면에 갇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껄끄러워하다 보면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을 테고 역설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심이 생긴다. 일본인의 상냥함은 적극적인 관계 맺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기방어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한 자기방어적인 성향이 일본 사회의 배타적인 성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에 비해 덜 개인주의적이다. 그러나 경계선이 확실하다. 우리와 남이라는 구분이 확고해서 우리끼리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되 남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 짓기의 성향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생긴 것 같다. 한국사회는 '우리'의 경계선을 국가적 영토에만 한정하지 말고 보다 넓게 볼 필요가 있다." 

 

- 재일교포들을 위해 한국정부가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는데 특별히 어떤 점에 대해 한국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요즘의 젊은 재일교포들은 한국에 대해 점차 외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재일교포와 한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들이 한국에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국내로의 유학 지원이나 취업 알선 등 현실적인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행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이 재일동포들을 안타까운 존재로만 보지 말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적 파트너로 인식하게 되면 한일 양국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또한 재일동포들도 스스로가 한국에서도 기회가 많다는 인식을 갖고 한반도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 지난번 조용기 목사가 일본지진을 '하나님의 경고'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 일본사회 반응이 있었나?

"한국과 달리 일본은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미비하다. 먼저 이 발언은 일본 사회에 그다지 많이 알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내용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조용기 목사에 대해 우롱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일본 사회의 반응이라고 하면 한국 기독교의 이미지가 낮아진 정도가 아닐까?"

 

"국가적 재난에 부닥쳤을 때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은 여실히 드러난다"

 

- 일본인들이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한국인들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은지?

"겉으로는 다문화사회를 이야기하는 일본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수많은 차별이 숨어 있다.

 

특히 이번 대지진처럼 국가적 재난에 부닥쳤을 때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은 여실히 드러난다. 교육청은 동북지방에 소재하는 학교의 안전성을 점검하기 시작했지만 동포학생들이 다니는 조선학교는 뒷전이다.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조선학교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은 지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나 매우 낙후된 상태이다. 가장 먼저 점검을 받아야 할 학교가 있다면 조선학교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가장 위험에 처해있는 조선 학교 학생들은 방치한 채 일본 학교만을 도와주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민주당의 마에하라 외상이 재일동포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문제가 된 일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 어머니(재일한국인)가 일본식 이름으로 1년에 5만 엔씩 4년간 기부금을 보냈던 것이 문제가 됐던 것인데 마치 거창한 '외국인 비자금 스캔들'인양 번져 결국 마에하라 외상은 사임을 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어떠한 선거권도 없는 재일교포가 자신이 아끼는 정치가에게 지원금을 내는 것도 불법이라니 정치참여가 완전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재일교포들은 이등시민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그 밖에 주민등록증 제도가 없는 일본에서 재일한국인들을 포함한 재일외국인들은 '외국인등록증'이라는 카드를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소지하지 않다가 검문에 걸리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거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 밖에 납세의 의무는 있지만, 선거권과 같은 권리는 없다.

 

한국은 어떠한가? 내가 9년이라는 세월을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답답함과 차별을 느껴왔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사회의 재일교포에 대한 특유한 차별의식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존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재일교포라는 존재에 대해 일반적인 인식도, 제도적인 면도 근본적으로 무지하며 무관심하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영원히 살아갈 외국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재일교포들이 조국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것은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오히려 비판하기도 한다. 재일교포란 한반도와는 분리된 존재라고 인식하기 일쑤인데, 사실 이러한 무지가 재일교포들에게 커다란 폭력으로 다가간다.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던 많은 재일동포들이 이러한 폭력적 혹은 일방적인 분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가곤 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줬으면 한다."

 

-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 한국에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다고 보나 아니면 그런 과거사를 잘 모른다고 보나?

"일본 사회는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뚜렷한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상실한 일본의 젊은이들은 '국가'라는 커다란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쁘띠 내셔널리즘'이라는 말이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일본 젊은이의 이와 같은 우경화 경향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이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할 위험성마저 뒤따른다. 그 한 예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혐한류'와 같은 만화이다. 한국에서 한류 열풍에 관한 보도가 많아 마치 일본인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애정을 느끼기보다 여전히 열등국가로 보는 경향이 있다. 대지진이 일어나자 한국인이 열성적으로 지원을 했으나 겉으로는 고마워해도 대중게시판과 같은 곳에서 지원활동에 시비를 거는 듯한 글이 많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대일본제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류는 그냥 한류일 뿐"

 

- 이번 일본지진 사건과 원전사건을 보면 1923년 관동대지진 때와 비교해도 일본인들이 놀랄 정도로 차분한데 역사적 경험축적과 시민의식이 성숙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나?

"전후 일본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져서 최근 원전 사고 때 일본인들이 차분한 모습을 보인 면도 있지만 일본인들의 참을성도 점차 한계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하다. 원전 사고 처리가 점점 시간을 끌게 되면서 냉정을 유지하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점차 변화 조짐이 보인다. 2011년 3월 26일 자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일본 피해 지역에 외국인 강도단이 출몰한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발생하고 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도 조선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수천 명이 학살됐었는데 또다시 일본 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이 되면서 주로 '외국인'과 같은 타자(他者)가 공격 대상이 되는 것 같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언제라도 재일한국인들은 이런 위험에 놓일 우려가 있다."

 

- 배용준씨나 소녀시대 등이 일본에서 한류를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 한류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열기가 수십 년간 일본인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우월감을 바로잡는 수준까지 이어졌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류 붐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한류는 그냥 한류일 뿐이고, 재일한국인을 포함해서, 한국과의 문제라든지, 북한 관련 문제 등에 있어 여전히 배타적인 정서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한다."

 

- 한일관계가 향후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두 나라 국민과 정부 어떤 노력들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보나?

"뻔한 대답이지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먼저 재일동포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및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과거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태그:#일본지진, #재일교포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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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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