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휘발유 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요즘 9시 뉴스에서 물가 관련 소식은 단골손님이다. 배춧값이 작년의 두 배다, 각종 채소 가격이 작년에 비해 몇 %가 올랐다, 돼지고기 가격이 너무 올라 제육볶음 같이 대중적인 메뉴도 요즘 식당에선 시가로 받는다, 공공요금도 줄줄이 인상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 앵커는 앵무새처럼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리포터는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에게 뻔한 물가 얘기를 지겹게 묻고 또 묻는다.

대형마트의 유인책은 단순히 비교해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다는 '물품비교전시장'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설을 앞 둔 지난 1월 30일 제수용품을 마련하기위해 나온 시민들로 붐비는 서울의 한 대형마트.
 대형마트의 유인책은 단순히 비교해서 살 수 있는 물건이 많다는 '물품비교전시장'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설을 앞 둔 지난 1월 30일 제수용품을 마련하기위해 나온 시민들로 붐비는 서울의 한 대형마트.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내리는 것은 없고 온통 올라가는 것뿐이니, 산 타는 심정으로 도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가는 불가항력"이라는 말씀을 하신 대통령님 기사를 읽었을 때도 현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가 치밀기보다 항복 선언을 들으니 차라리 속 시원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가라면 이제 그만 초월해 버리고픈 심정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무심코 카트에 물건을 담고서 계산대에서 총계를 확인하는 순간, 도저히 무감각해질 수가 없다.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와, 눈치가 보이지만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그냥 계산대에 두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엄마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건 아직 오지 않았다. 곧 몰아닥칠 그것. 조만간 쓰나미처럼 밀려올 바로 그것은 학원비, 과외비 인상의 높은 파도다.

물가도 물가지만, 학원비마저 오르면 어떡하지?

강남 지역 유명 입시학원이 속속 강북지역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11일 오전 성북구 월곡동 골목길에 '성북 집값 오른다' '대치동 명품 000학원 오픈'등 각종 홍보문구가 붙은 입시학원 차량이 서 있다.
 강남 지역 유명 입시학원이 속속 강북지역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11일 오전 성북구 월곡동 골목길에 '성북 집값 오른다' '대치동 명품 000학원 오픈'등 각종 홍보문구가 붙은 입시학원 차량이 서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아직은 정부의 눈치를 보는지, 올랐다는 소리를 직접 듣지 못했다. 하지만 멀지 않았다는 보이지 않는 압력과 신호가 스멀스멀 느껴진다. 학원비는 설탕값이나 휘발유 가격처럼 몇 십 원, 몇 백 원씩 오르지 않는다. 백분율로는 10~20%일지 모르나, 학원비라는 것이 워낙 덩치가 있다 보니 몇 천원에서 몇 십만 원까지 한꺼번에 오르게 마련이다.

당연히 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먹을 것은 대체가 가능한 면이 있다. 쇠고기를 돼지고기로, 돼지고기를 닭고기나 혹은 보다 값싼 생선이나 어묵으로. 그도 어려우면 두부나 달걀로. 만족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테지만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고 할까? 하지만 사교육은 그만 두느냐, 부담되더라도 계속 하느냐의 문제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학습효과가 더 높다는 어느 연구기관의 발표를 무작정 믿고 당장이라도 모든 학원을 그만두게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강남 아이들은 이 정도까지 한다더라, 실력차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더라,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아이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 아닌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여의도. 인근 엄마들은 강남 아이들의 실력과 엄마들 정보력의 발끝이라도 따라잡기 위해선 학원이든 과외든 시켜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결론에 이르면 학원비는 도저히 줄일 수 없는 고정비가 된다. 먹고 입는 것을 줄일지언정 아이들 학습에 들어가는 돈은 줄일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엄마들의 공통된 심정일 게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때는 영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엄마들이 많다. 영어학원비는 각양각색이지만 대형학원의 경우를 들자면, 일주일에 두 번 가고 한 달에 25만 원에서 35만 원 정도 받는다. 온라인 숙제 관리와 교제비 명목으로 5만~10만 원을 내야 하는데 물론 추가 부담이다. 거기에 더해 영어 쓰기나 말하기를 따로 배우는 아이들도 많은데, 필리핀 전화 영어수업의 경우 한 달에 10만 원 정도 든다.

수학학원은 동네 보습학원의 경우 한달 교습비가 20만~30만 원 정도다. 개인과외를 할 경우 초등은 30만 원, 중학교는 40만 원 이상이라고 들었다. 과학실험, 수학 심화 학습을 위해 영재교육 전문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은데 수업 하나당 20만 원 정도 든다.

또 남자아이들이라면 축구나 농구부를 드는 것이 필수다. 축구수업은 한 달에 5만 원 정도 낸다. 피아노 같은 악기 수업은 한 달에 15만~20만 원 정도 들고, 미술학원도 이와 비슷하다. 수업 횟수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18만~20만 원 정도로 정해져 있다. 요즘은 초등 논술도 거의 필수인데, 팀을 짜서 논술선생님에게 배우는 경우, 한 아이가 10만~18만 원 정도 부담한다. 제2외국어를 배우는 아이도 많다. 제2외국어는 방과후 수업을 활용하거나 과외선생님에게 따로 받는데 비용이 영어에 못지않다고 들었다.     

CEO도 아닌데, 구조조정 계획에 골머리 앓는 엄마들

초등학생들은 보통 적게는 두세 개, 많게는 열 개가 넘는 사교육을 받는다. 굵직한 것만 합산해도 어림 잡아 100만 원을 쉽게 훌쩍 넘는다.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계산해보지 않는 건 총계에 확인사살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다. 학원비가 인상되면 결국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성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과목(국수영)은 그만둘 수 없으니, 예체능을 포기해야 할까? 하지만 피아노나 미술수업을 그냥 포기하자니 본전 생각이 꼬리를 든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아까워서, 여기서 그만두면 지금까지 배운 것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 같아서 쉽게 끊지 못한다.

그럼 과외 횟수를 줄여 볼까? 일주일에 세 번 가야 할 것을 두 번으로 줄이거나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과외에나 가능한 일이지, 시간과 비용이 딱 정해져 있는 학원의 경우엔 쉽지 않다.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으로 대체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맞지 않거나, 인원이 안 돼서 폐강, 또는 너무 많은 아이들 때문에 학습 효과가 의심스러운 것 등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밀린 학습지가 눈에 들어오면, 주먹을 불끈 쥐게 되어 있다.

"그래, 결심했어. 일단 학습지부터 정리하는 거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대대적으로 사교육 재정비를 하는 엄마들이 많다. 이유가 여럿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 가다가는 중학교 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사교육도 줄고 요즘 대세인 자기주도학습도 이루니 일석이조일 텐데. "스스로 하는 어린이"란 엄마들의 로망일 뿐이다.

요즘 엄마들을 만나면 '선택과 집중'이란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지치기나 구조조정이라는 말들도 많이 한다. 다들 한정된 돈으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교육을 시킬지 고민 중이라는 얘기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과목도 늘어나고 단가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엔 복잡한 대입전형 탓에 몇 백만 원짜리 대입컨설팅도 따로 받아야 한단다. 때문에 엄마들의 최대 당면 과제는 한정된 예산과 시간 안에서 아이들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해 어떤 사교육에 집중해야 할지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엄마들의 머릿속에선 서로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국영수 과목들과 빈약한 가계부 사이에서 계산기 두드리기 전쟁이 한창이다.

엄마들의 이 복잡한 머릿속을 소위 뇌구조로 그려보면 어떨까? 분명 한가운데는 떡하니 교육비가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교육비 안에서는 각종 사교육비가 자리 다툼을 하며 밖으로 비집고 나올 기세다. 그리고 식비, 주거비도 천정부지 물가 덕에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통신비, 교통비도 어느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는 공간이 있기는 할까? 은퇴 준비,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꾼다. 하다못해 올 봄에 산뜻한 봄 옷을 장만하고 싶다는 주부들의 소박한 바람은 흐릿한 작은 점으로 그려지다 없어져 버릴 게 뻔하다.

오르는 교육비, 통신비, 교통비, 주유비... 노후는?

TV에서 무려 한 달에 천만 원이란 돈을 받으며 불법과외를 했다는 어느 스타 강사 일당들에 관한 뉴스가 흘러 나온다. 놀랄 일도 아니다. 서울시 학생들의 일반교과 사교육비가 월 평균 56만 원이며 예체능 특기적성에 들어가는 비용은 또 약 29만 원이란다. 서울시 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월 평균 대략 90만 원이라는 뜻이니, 어느 누군가는 천만 원을 쓰고 있는 게 일견 당연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줄었다는 정부의 발표를 대부분 엄마들은 믿지 않는다. 조사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허술하게 조사했을 거라는 거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초중고 학생 5077명(방과후학교 참여 학생 3697명, 미참여 학생 1380명)과 이들의 학부모 45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방과후학교가 사교육비 절감에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70% 정도의 학부모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하니, 사교육 해법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할 일이다.

내 아이가 "무조건" 다른 아이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엄마들의 욕심이 대한민국을 사교육 왕국으로 만든 주된 이유인 게 사실이다. 그리고 보다 좋은 교육에 대한 막대한 수요가 사교육비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시험성적 중심의 입시 제도, 수치화하기 힘든 인성이나 창의력 대신 학벌과 스펙을 먼저 보는 기업,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어디 엄마들만의 탓이겠는가.

최근 물가 상승의 요인이 단순히 농산물과 원자재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에만 있지 않듯이 사교육비도 마찬가지다.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교육 부실-사교육 증가라는 악순환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물가, #사교육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