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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소재한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 이병기 생가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소재한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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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 소재한,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인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조촐한 초가집인 이곳에서 선생은 1891년 태어나고, 1968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이병기 선생은 시조를 토대로 한 많은 학문적 업적을 쌓은 분으로, 신재효의 판소리 등을 발굴한 공로는 그 어느 것보다도 크다고 한다.

이병기 선생의 생가는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초가로 된 집은 그렇게 부유한 집의 형태는 아니다. 안채와 사랑채, 광채와 모정 등이 남아 있는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 보았다. 지난 19일 찾아간 선생의 생가. 모정 옆에 서 있는 탱자나무는 한 겨울을 잘 버티고 있다. 이곳 모정에서 앞에 넓지 않은 연못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을까?

사랑채를 조금 비켜서 서 있는 모정. 모정이란 지붕을 짚으로 올린 정자를 말한다
▲ 모정 사랑채를 조금 비켜서 서 있는 모정. 모정이란 지붕을 짚으로 올린 정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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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에 떨어지는 빗소리

짐을 매어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날
어두운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내일도 내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부디 머나먼 길 떠나지 마오시라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내리는 비
적이 말리는 정은 나보다도 더하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소리라
매어둔 짐을 보고는 도로 눈을 감으오

'비'라는 선생의 시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 사랑채 앞에 서 있는 모정에서 글을 생각한다. 모정이란 짚으로 지붕을 올린 정자를 말한다. 모정은 논 한가운데도 세웠다. 농사꾼들은 농사일을 하다가도 이곳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런가 하면 이 모정에 모여 양반네들의 험담도 해가면서 키득거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모정에서 선생은 빗소리를 들으며, 떠나려하는 임을 붙들었는가 보다.

대문과 붙어지은 사랑채. 앞으로는 튓마루를 놓고 바라보면서 우측으로는 반칸을 덧내어 안채로 통하게 하였다
▲ 사랑채 대문과 붙어지은 사랑채. 앞으로는 튓마루를 놓고 바라보면서 우측으로는 반칸을 덧내어 안채로 통하게 하였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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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는 감추고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라

'수우재' 이병기 선생 생가의 사랑채를 일컫는 말이다. '수우(守愚)'란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 말은 슬기는 안으로 감추고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도 세상을 모나게 살지 말라는 당부인가 보다. 수우재는 네 칸으로 되어있다. 대문채와 붙어있어, 전체적으로는 여섯 칸처럼 보인다. 수우재 앞에는 툇마루를 놓고, 동편으로는 툇마루를 이용해 쪽문으로 안채와 통하게 되어있다.

수우재 옆에는 수령이 200년이 넘었을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탱자나무는, 가슴높이 둘레가 60cm에, 나무의 키는 5m 정도로 생육이 활발하다. 선생의 고조부가 이곳에 정착하여 심었다고 전하는 나무이다. 사랑채와 모정, 그리고 탱자나무와 연못, 연못가에 심어놓은 매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만 같다. 선생의 집이 정겨운 까닭이다.

ㄱ 자 집으로 꾸민 안채.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안채를 지었다
▲ 안채 ㄱ 자 집으로 꾸민 안채.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안채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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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은 한데 아궁이를 놓고, 측면으로는 반칸의 누마루를 꾸몄다
▲ 건넌방 건넌방은 한데 아궁이를 놓고, 측면으로는 반칸의 누마루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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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기둥들은 자연 그대로이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뜻이었을까?
▲ 안채 부엌 안채의 기둥들은 자연 그대로이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뜻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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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을 보고 마음을 닦아야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ㄱ 자로 꾸민 안채가 보인다. 안채는 다섯 칸으로 대문 앞에 건넌방이 있고, 한 칸 대청이 있다. 대청과 연이어 윗방과 안방, 그리고 끝에는 한 칸 부엌이 있다. 건넌방의 측면으로는 반 칸을 덧내어 누마루를 꾸몄다. 아마도 안채를 사용하는 부녀자들이, 이곳에 앉아 담소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를 둘러보다가 보면 집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들이 눈에 띤다. 구불거리는 목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곧은 나무를 구할 수가 없었던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굽은 나무를 이용한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도 이 기둥 속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르기는 해도 어떤 세상을 부딪치든지, 이렇게 동화되면서 살라는 뜻이 아닐까? 혹은 구부러진 나무일망정 다 사용할 수가 있듯, 세상사람 모두가 어디고 다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을까? 선생의 깊은 뜻이 궁금하다.

안채의 뒤를 돌아가면 안방 뒤편에 쪽마루를 놓았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장독대가 자리한다
▲ 안채의 뒤편 안채의 뒤를 돌아가면 안방 뒤편에 쪽마루를 놓았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장독대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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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칸으로 꾸민 헛간채. 광과 마구간, 그리고 측간이 있다
▲ 헛간채 세 칸으로 꾸민 헛간채. 광과 마구간, 그리고 측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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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생가 옆에 서 있는 탱자나무 전라묵도 기념물 제112호이다. 수령은 200년이 넘었으며, 선생의 고조부가 심었다는 나무이다.
▲ 탱자나무 이병기 생가 옆에 서 있는 탱자나무 전라묵도 기념물 제112호이다. 수령은 200년이 넘었으며, 선생의 고조부가 심었다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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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부엌 뒤로 돌아가면 헛간채가 있다. 세 칸으로 지은 헛간은 광과 마구간, 그리고 측간으로 꾸몄다. 그저 어디에서고 볼 수 있는 평범한 농가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 집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돈다. 아마도 선생의 심성이 그대로 집에 배어있기 때문인가 보다.

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모정에 앉아본다. 모정 앞에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봄바람이 아직은 차가운데도, 자연은 그렇게 순리대로 돌아가는가 보다. 마치 선생의 집처럼.


태그:#가람 이병기 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 #익산시 여산면, #탱자나무,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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