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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은 겉으로만 화려한 계획

지난 17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정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밝혔다. 의원부터 병원,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 역할과 관계를 모두 재조정하여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포부가 대단했다. 만일 이것이 성공한다면, 이는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만큼이나 대단한 의료개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복지부가 내놓은 방향은 대체로 수긍이 간다. 그동안 시민사회가 주장했던 내용이 대체로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받아들인 점이 다소 늦다는 느낌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정책방향으로 수용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극렬한 반대도 없으며, 적극적인 지지도 없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왜 이렇게 반응할까? 우선, 의료의 상업화라는 거대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이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정부가 내놓은 계획을 수행할 효과적이고 분명한 정책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예산을 내놓겠다는 계획도 없고, 공공보건의료를 어떻게 확충하고 민간의료기관과의 관계를 만들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없다. 그저 '자율에 맡긴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니 누가 이런 개혁을 신뢰하겠는가?

가벼운 증상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몰린다, 사실일까?

그런데 이런 복지부의 발표 내용중에 유독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내용이 있다. 감기와 같은 가벼운 질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쏠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학병원 쏠림 현상'이다. 복지부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학병원 외래를 이용하는 환자들의 본인부담을 인상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내 주변엔 감기와 같이 가벼운 병에 걸려도 대학병원에 가는 사람이 없다. 혹시 내 주변만 그런가? 아니면 부자들만? 그들은 누굴까? 어떤 사람들일까?
이를 궁금해 하던 차에 지난 3월 18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 자료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통계자료가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증가율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증가율
ⓒ 조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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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이와 같은 결과를 내보이면서 상급종합병원(44개 대학병원)의 외래 이용량이 의원급에 비해 4배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환자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5과 2009년을 비교하면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증가율은 47.9%나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복지부가 제시한 결과에 꼬투리 잡을 것이 있다. 신종플루로 인한 영향이 반영된 2009년을 포함하여 증가율을 계산한 것이다. 위의 표에서 보듯, 2008~2009는 의료기관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외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다. 이런 점에서 2009년은 시기적 특수성이 반영되었다.

그래서 2009년을 제외하고 2005~2008년을 본다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외래 내원일수는 18.9%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아래 표)로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2009년을 포함할 경우 10.55%이지만, 2008년까지로만 본다면 5.96%이다. 이렇듯 복지부는 2009년을 포함함으로써 외래 증가율의 수치를 과장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및 증가율 분석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및 증가율 분석
ⓒ 조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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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치더라도 복지부는 또 다른 계산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전체 외래 중에서 대학병원에 쏠림현상이 어느 정도의 큰 문제인지를 정확히 내보여야 했다. 그러나 추세만 설명하고 끝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복지부가 내놓은 표를 근거로 다시 계산해 보았다.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비율
 요양기관종별 외래 내원일수 비율
ⓒ 조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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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9년 한 해 동안 외래를 6억 1천만일 정도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중 80%는 의원을 이용했으며, 나머지 20% 정도는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에 간 환자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5%안에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중증환자,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 그 외 검사를 받으러 외래를 이용한 사람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초진환자와 재진환자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숫자다.

그렇다면 이중 의원급에서 치료받아도 될 만큼 가벼운 질환의 환자는 얼마나 될까? 이를 추측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숫자를 또 다시 인용해보자. 지난 3월 17일 복지부가 발표한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 4쪽에 보면 '상급종합병원 외래 진료건 중 의원급에서도 가능한 경증질환이 32.5%(2009년)'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모두 계산할 수 있다. 전체 외래이용 중에서 의원급에서 치료받아도 될 가벼운 질환으로 대학병원에 간 환자의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이 정도가 복지부가 말하려는 문제의 규모다. 이를 과연 '경증 환자의 대학병원 쏠림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6% 때문에 전국민의 부담 높여야 하나?

지난 2009년 10월 28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28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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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처럼 가벼운 질환으로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1.6%의 이용량 때문에 복지부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본인 부담을 인상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외래를 이용할 경우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률을 현재의 30%에서 60%로 높이겠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계획이다.

이 안건은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에 지난 3월 18일에 상정되었다가 반발에 부딪혀 결정되지 못하였으나, 복지부는 뜻을 꺾지 않고 다시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시키겠다는, '정면 돌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경증환자의 대학병원 쏠림 현상'은 과장된 표현이기에 이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1.6% 때문에 대학병원에 가야할 중증환자들의 본인부담을 인상하겠다는 정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뿐만 아니라 환자로서는 '2중 벌칙'이다. 이미 대학병원 외래 본인부담률은 비급여를 제외하고도 65% 정도 된다. 진찰료는 전액 환자가 내야 하고, 그 나머지의 60%를 환자가 내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대학병원에는 '선택진료료'라는 무시무시한 부담이 있다. 선택진료비까지 포함하면 환자가 내야 할 돈은 70%를 넘는다. 여기에 일부 비급여라도 포함된다면 외래에서 환자 부담률은 80%를 넘기도 한다.

정부가 이처럼 대학병원 외래 본인부담률을 높인 이유도 '가벼운 질환으로 대학병원 외래를 이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엔 대학병원 외래를 이용한 모든 환자에 대하여 약국 본인부담률을 60%로 또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2중 벌칙'이다. 정책으로서의 정당성이 전혀 없다.

2009년 대학병원 외래 본인부담률 인상으로 효과 있었나

그런데 정부는 이미 2009년 7월에 대학병원 외래 법정본인부담률을 10% 인상했다. 그때 정부가 정책을 추진한 명분도 지금과 똑같았다. 가벼운 환자가 대학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지금 정부가 또 다시 같은 이유로 환자본인부담률을 또 인상하겠다면, 최소한 2009년 인상효과를 측정하여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 평가를 안 했다면 이번에 또 다시 환자부담을 인상하는 과정이 문제가 있는 것이고, 평가를 하고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필자는 그래도 보건복지부가 이 정도는 했으리라 믿고 싶다. 2009년 대학병원 외래 본인부담 인상이 효과가 있었는지 평가한 연구가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결과를 공개하라. 그리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라. 이것이 적어도 앞으로 부담을 더 해야 할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만일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 결과를 숨기는 것이라면 정부가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환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는 분명히 "대학병원에 경증환자 쏠림"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입증하고, 또 환자부담률을 높이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라.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대학병원 외래 환자 부담을 인상하려는 계획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조경애는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입니다



태그:#대학병원, #보건의료, #의료기관기능재정립, #본인부담급, #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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