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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인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 제1동 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날인 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 제1동 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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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4월이면 재보궐선거가 전국에서 치러진다. 특히 순천, 김해을,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와 강원도지사 선거에 각 정당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재보선을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 성격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선거법이 공포의 대상이다. 선거의 계절은 곧 선거법 위반의 계절이기도 하다. 현행법이 너무 규제를 내세운 탓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과 관련된 법원의 판결들을 돌아본다.

먼저 2000년 총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시민단체의 부적격후보자 낙선운동 사건이다.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한계인지가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되었다.  

[사례 1]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2000년 1월 전국 412개 시민 단체가 총선시민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이들은 기존의 공정선거 감시운동만으로 정치개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무능부패정치인에 대한 유권자 낙천·낙선운동'을 펼치게 된다. 총선시민연대는 부패행위, 선거법위반, 민주헌정질서파괴, 의정 불성실 등을 기준으로 86명을 낙선운동대상자로, 그 중 22명을 집중낙선운동대상자로 선정·발표하였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집회 개최, 길거리 선전전, 서명운동, 현수막 게시 등의 방법으로 낙선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여파는 컸다. 낙선 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이 선거에 떨어졌고 수도권에서는 20명 중 19명이 낙선되는 등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역풍도 거셌다. 이를 불법선거운동으로 규정한 선관위와 수사기관은 단체 임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에 세운다. 

보통 선거법에선 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한 활동이 합법, 불법인지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부적격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허용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총선시민연대 측의 주장은 이랬다.

'우리 활동은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현행 선거법에 맞선 시민 불복족 운동이다. 우리는 특정 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부적격 후보자의 낙선을 목적으로 활동한만큼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당선 목적 없는 제3자 낙선운동도 불법"

하지만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불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3자가 당선의 목적 없이 오로지 부적격 후보자의 낙선만을 목적으로 하여 벌이는 낙선운동도 선거운동에 포함된다. 효과나 방식도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과 다를 바 없다. 낙선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고 의견표시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법에서 금지하는 집회, 서명운동, 유인물 배포 등의 방법으로 하는 낙선운동은 허용될 수 없다.'

법원은 당선을 위한 운동이나 낙선운동이나 선거에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선거에서 의사표현의 자유는 허용돼야 한다"면서도 "선거운동이 무제한 방임될 경우에는 선거공정을 해치는 등 폐해가 매우 크므로 그에 대한 제한은 필연적"이라고 못박았다.

2004년 4월 대법원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정치 개혁을 위해 무능 부패 정치인을 낙선시키겠다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선거의 공정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가로막히게 된 셈이다.   

낙선운동 등 유권자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법원과 다르지 않았다. 헌재는 "특정후보자의 당선을 목적으로 함이 없이 부적격후보자가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정의하고 이를 규제하는 것이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000년 낙선운동은 유권자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반면, 불법으로 낙인찍힘으로써 새로운 유권자운동의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보자 지지 유도 여론조사는 사전 선거운동"

[사례 2] 교육감 보궐선거를 두 달 여 앞둔 A후보의 사무실. 선거운동원들은 A후보의 인지도를 높여서 당선시킬 특단의 대책을 세우게 된다. 결정된 방법은 '특별한' 여론조사였다. 먼저, 표본여론 조사가 아닌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로 했다. 수십만명에 이르는 전체 유권자들을 상대로 일정 수준의 응답률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전화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응답자들의 지지성향을 파악한 후 지지 응답자에겐 투표 당일 교통편의를 제공하여 빠짐없이 투표하도록 독려한다는 의도도 담겨있었다.

A후보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약력소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A후보는 현재 직함인 '대학 총장'으로 소개하는 대신, 상대 후보자들은 대표 경력 대신 '대학 사무국장', '고교 교장'으로 상대적으로 하위 경력을 소개하였다. A후보 측은 이같은 계획에 난색을 표하던 여론조사 대행업체를 여러차례 설득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자료를 넘겨받았다.

선거를 앞두고 언론사와 각종 기관에서 여론조사를 진행한다. 후보자들 역시 자신의 선거운동 전략을 세우기 위해 자체 조사도 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선거법에 저촉되는 경우도 있다. 법원은 "여론조사를 빙자한 선거운동"이라며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정했다. A후보의 선거책임자와 여론조사 업체 사장은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여론조사의 주된 목적이 후보의 인지와 지지도를 높이고 선거에서 당선되게 하는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법원의 판례도 이런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선거에서 정당이나 후보(예정)자에 대한 지지도를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는 일반적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목적이 후보(예정)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그의 장점을 부각시켜 그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사례 3] 서울시장 후보 B씨를 지지하던 C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트위터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라는 제목으로 각 후보들의 표수를 기재하였는데, 트위터 상에 올라온 게시물을 그대로 복사한 내용이었다. 법원은 선거법위반으로 C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공직선거법이 여론조사의 공표방법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선거를 구현하기 위한 것임에 비추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선거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 또는 보도할 때는 주의할 점이 있다.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 단체명, 피조사자의 선정방법, 표본의 크기, 조사지역 일시 방법, 표본 오차율, 응답율, 질문내용 등을 함께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블로그 트위터로 선거법 위반 사례도 속출

최근 블로그, 트위터를 통한 선거운동도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원의 판례는 인터넷이 인쇄매체보다 전파성이 훨씬 크다는 이유로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는 추세이다. 

[사례 4] D씨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자유토론방에 접속하여 '긴급뉴스 E후보 지지율 단독 1위', '드디어 E후보는 당선이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였다. 그는 지방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총 41회에 걸쳐 자신의 지지후보의 실명을 거론하며 게시물을 올렸다. 

[사례 5] F씨는 자신의 중학교 동창이 선거후보자가 된 것을 보고 돕기로 했다. 그는 트위터에 회원 가입하여 트위터에 'G후보가 1등으로 달리고 있네요'라는 글을 게시하고 G후보의 글을 돌려보기(RT : Retweet)기능을 이용하여 팔로어에게 전송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총 16차례에 걸쳐 지지하는 글을 게시하였다. 

일반 유권자는 선거일 180일부터 선거당일까지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글이나 정당명 또는 후보자 이름이 나타나는 문서를 게시할 수 없다. 위의 사례에서 두 사람 모두 불법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D씨는 위법성의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법원은 "자신의 행위가 선거법에 위반되는지 몰랐다 하더라도 단순한 법률의 부지를 정당한 이유라고 볼 수 없다"며 유죄(벌금형)를 선고했다. 

F씨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인터넷 매체가 가지는 강력한 전파력, 다중에 대한 공개성 등에 비추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성이 적지 아니하고 그 죄책이 가볍다고도 볼 수 없고 건전한 선거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엄정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중학교 동창을 격려하려는 의도였고, 선거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점"을 감안하여 벌금 120만원을 선고했다.

유권자는 단순한 의견 개진만 허용?  

현행법상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아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행위에는 ▲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 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정도이다. 그 이상의 행위는 후보자가 아닌 이상 현행법 위반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예컨대 누리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후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토론을 벌이는 정도도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선거공보물이나 언론보도를 통해 후보를 고르는 일만 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선거법을 지키는 건 필수적이다. 하지만 선거법도 추세에 따라가야 한다. 특히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등 인터넷상의 표현 도구를 단지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다가는 음성적인 선거운동을 부추기고, 오히려 정치 무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선거운동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입법을 고민해야 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국회저널>에 기고한 원고를 다시 보완, 정리한 글입니다.



태그:#선거법, #트위터, #선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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