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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늘과 바다와 파도의 빛깔 모두 봄빛이다.
▲ 동해바다 하늘과 바다와 파도의 빛깔 모두 봄빛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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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에 지인들과 약속한 일이라 뒤숭숭한 현실에서도 그 약속을 취소하지 못했다. 아니, 뒤숭숭한 현실이므로 머리를 식히고 돌아와야했다.

동해바다로 가는 길, 강원도로 들어서자 어젯밤에 싸락눈이라도 내린듯 얄팍하게 눈이 쌓여있다. 지난 폭설에 내린 눈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남아있는 곳도 많다.

동해 어딘가에는 복수초가 이미 올라왔다는데 아직 봄이 먼 것일까?

인적이 드물어 파도소리 더 선명한 동해바다, 파도소리에도 봄이 들어있다.
▲ 동해바다 인적이 드물어 파도소리 더 선명한 동해바다, 파도소리에도 봄이 들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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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다.
자연의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연약함과 그러한 재앙 앞에서도 끊임없는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일까 싶었다.

바다에 섯다.
무섭다. 저렇게 아름답던 바다가 그렇게 다가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는다.
신의 부재를 느낀다.
신이 있다면 왜 그런 무차별적인 재앙을 바라만 보고 있는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모든 것들
▲ 주문진항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모든 것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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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렁이던 바다만 보던 나에게 그 출렁임들을 더해버린 잔잔한 바다는 신비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한껏 날아다니던 갈매기의 흔적도 사라졌다.
역사도 이런 것일까?
구테타의 망령의 혁명의 탈을 쓰고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다. 아, 우리의 역사 수준은 이 정도였구나. 혁명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은 폭동으로, 구테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 혁명으로 기록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구나 싶었다.

어쩌면 하이에나 같은 권력의 아첨꾼들이 미리 냄새를 맡았는가 싶어 불쾌하기조차 하다. 그들이 맡은 썩은내가 차라리 독약이길......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갈매기 생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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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어시장에서 회를 떠주신다는 아저씨가 손짓을 하며 자꾸만 오라한다.

"갈매기 찍어요? 그거 몇 마리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되겠어요? 일루와요. 내가 갈매기 떼로 모아줄께."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녀, 미안해 하지 말고 어서와요."

할 수 없이 장노출 사진을 찍다말고 성의를 생각해서 그 아저씨에게로 갔다.
물고기 내장을 한 바가지 가져와 던지니 어디에 있었는지 갈매기들이 쏜살같이 날아와 먹이를 채간다.

살아있는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가 진짜 갈매기가 아닐까?

하조대 근처의 바다
▲ 동해바다 하조대 근처의 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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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 근처의 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 동해바다 하조대 근처의 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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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바라본 바다와 파도
▲ 바다와 파도 높은 곳에서 바라본 바다와 파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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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바다를 거닐고 싶었다.

'진짜 갈매기는 살아있는 먹이를 구하는 갈매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죽은 것만 혹은 나를 죽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가니 '나는 진짜 사람일까?'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

감히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안다고 말하면서도, 내 삶은 죽음의 그림자의 포로가 되어 살아간다. 실천과 분리되어 있는 앎은 앎이 아니다.

밤이면 저 등대에 불빛이 밝혀질 것이다.
▲ 등대 밤이면 저 등대에 불빛이 밝혀질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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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내 몸 하나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는 바람 앞에서 몰려드는 쓰나미를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얼어붙어버린 그들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 가위눌림.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재앙 앞에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고통은 내가 나눠져야 할 고통인 것이다.

불공평하다.
리비아 민중들의 죽음도, 기아선상에서 굶주리는 이들의 삶도, 공장으로 내몰려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도, 쓰나미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도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동시에 나의 책임이다.

바람과 파도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동해바다
▲ 동해바다 바람과 파도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동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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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 근처의 등대카페의 내부
▲ 등대카페 하조대 근처의 등대카페의 내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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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바람을 뒤로 하고 지인들이 기다리는 카페로 들어갔다.
토굴에서 나는 냄새를 닮은 향이 가득한 카페, 오후의 햇살이 한지를 바른 창호지에 은은하게 비친다.

집, 그래. 사람들이 사는 집은 이런 것이 아닌가?
비바람을 막아주어 연약한 인간의 몸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집이 아니런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집, 성냥갑 같은 집 한 채를 위해 평생을 빚더미에 눌려 살아가는 것이 왜 당연한 삶인가?

죽어버린 것들을 구하느라 죽어가는 인생, 나는  정녕 잘 살고 있는가?


태그:#동해바다, #봄바람, #장노출,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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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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