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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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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들 것이다. 이국적인 풍광과 한라산, 드넓은 유채꽃밭과 짙푸른 바다, 그리고 옹기종기 머리를 마주한 오름과 낮은 집들.

여러 곳을 여행해봤지만 제주도만큼 아름다운 곳도 드물다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제주는 천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다. 사단법인 제주 올레의 대표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픈 마음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늘 똑같은 관광 코스가 아니라 직접 제주의 길을 걷고 바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길. 서 이사장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제주의 땅을 뭍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길 내기가 이제는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으니,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성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올레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한 여자의 길은 세상의 길이 되고 만인의 길이 되었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서 이사장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인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이 올레가 만들어진 과정과 걷기 코스를 소개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이 책은 올레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영혼의 울림을 이야기한다.

제주올레길 만드는 데 특전사부대가 협조했다고?

"그때는 몰랐다. 길을 걷는다는 것과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가를. 삼 년 전 고향 제주에 길을 내기 위해 귀향할 때만 해도, 걸어가듯 길을 찾으면 길이 될 줄 알았다. (중략) 천일 동안 많은 길을 냈고, 숱한 올레꾼들을 만났고,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갔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고, 흐느껴 울 때마다 누군가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올레 이야기는 정말 파란만장한 천 일간의 기록으로 남는다. 요즘은 누구나 '제주 올레'를 알고 있기에 이 길이 만들어진 것이 오래된 일 같지만 겨우 천일이라니... 그 사이에 놀라운 변화를 일궈낸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구어냈다고 말한다. 원래 책 마지막에 구구절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저자들을 폄하했는데, 정작 자기가 올레를 만들고 글을 쓰다 보니 여러 사람의 이름을 나열할 수밖에 없다는 솔직함.

올레 길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에는 저자가 우연히 군부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강의에 감동받은 군 간부가 올레 길을 돕고 싶다고 자청한 이야기가 있다. 특전사 부대가 제주에 훈련을 오면서 올레 길 만드는 일에 협조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여행 끝낸 이들, 일상에서도 올레 환청에 시달릴 정도

특전사 부대만이 아니다. 동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아스팔트 대신 흙길이 들어선 곳도 있고, 해병대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길도 있다. 물론 주위의 질시와 오해, 행정관청의 오만과 편견도 존재했지만 적극적으로 올레 길 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인 이들이 있기에 제주 올레는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제주 바람을 맞고 싶은 사람은 올레를 찾는다. 혼자 걷는 여자들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곳도 올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기 여행을 끝낸 이들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올레 환청에 시달릴 정도라고 한다.

한 번 올레를 찾은 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다시 찾는다고 하니, 이 아름다운 길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산티아고나 알프스, 잉글랜드의 하이킹 코스도 유명하다지만 제주 올레도 그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책 제목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제주도 할머니들의 방언에서 따왔다. 예전에 제주 할망들은 서둘러 달려오다가 넘어지는 손자들에게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라고 말하곤 했다.

대한민국처럼 속도가 빠른 나라에서 이 할머니들의 말씀은 마음에 깊이 새길 만한 명언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성적도, 승진도, 집을 넓혀가는 일도, 운동도, 걷기에서도' 남보다 빠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하지만 올레에서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꼬닥꼬닥(천천히)' 걸어가 보자. 걷는 길만이 아니라 인생길도 한결 편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자신도 '뚜껑 열리는' 성급함의 소유자지만 올레를 만들면서 많은 변화를 얻었다고 한다.

속보 전쟁이라는 기자 생활 20여 년을 마감하고 찾은 평화로운 세계가 바로 올레가 있다고 할까? 서울의 바쁜 생활을 버리고 길에 파묻힌 채 살아가는 그녀의 검게 그을린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올레를 찾는 많은 이들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맛보며 그녀를 닮은 행복과 평화를 얻길 바란다. 그 평화와 안정의 힘은 곧 일상으로 이어져 따뜻한 하루하루를 만들어낼 것이다.


태그:#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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