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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귀하기도 하려니와,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나 맺은 인연들을 되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절절하게 들지요. 엄 사장, 당신과 나의 인연을 돌아보아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당신과 나는 KBS와 MBC 사장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냥 언론계 선·후배라는 느슨한 인연밖에 없었지요. 그랬어도 우리는 만나자마자 오랜 지기처럼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뒤 그들이 방송 장악을 위해 온갖 야만적 패악을 저지를 때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여 있던 터여서, 우리는 서로 동지적 유대까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때 당신에게 편지를 쓴 이유

2009년 9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엄기영 MBC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09년 9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46회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엄기영 MBC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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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2009년 여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이 된 김우룡씨가 엄기영 체제에 손을 보겠다고 칼을 빼들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에게 <오마이뉴스>를 통해 긴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그 즈음 나는 나를 KBS 사장 자리에서 강제로 해임시키기 위해 옭아 맨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의 법정에서 '무죄' 선고(1심)를 받았지요. 나는 이 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는 점을 온 몸으로 체득한 터였습니다. 검찰뿐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KBS 이사회 등 정권은 온갖 기관들을 총동원하여 나를 강제로 쫓아내고, KBS를 접수·장악했지요.

그런 일이 2009년 여름에 MBC에도 막 일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MBC 이사회인 방문진 이사들이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김우룡씨가 이사장이 되었고, 다수의 친정권 이사들이 입성했지요. 김우룡 이사장은 선임되자마자, 점령군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MBC에 문제가 있다면 방문진이 감독을 제대로 안 한 책임도 크다. 보고를 받은 뒤, 뭐가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인지 살펴볼 것이다."(2009년 8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이 발언을 한 뒤 2주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훨씬 강도가 높은 발언을 했습니다.

"그간 (경영진이) 잘못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이사들이 질의를 하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엄기영 사장이) 알아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좋지 않겠느냐.… 내가 한 말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 무슨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서 이사회에서 (경영진 교체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2009년 8월 26일 <한겨레>와 전화 통화)

김우룡 이사장의 '엄기영 축출' 작전

당시 그는 이 때 밝힌 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엄기영 사장 축출'을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신동아> 4월호 인터뷰를 보면 당신의 '해임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습니다.

- (2010년 2월 8일 엄기영 사장 사퇴는) 사실상 예정됐던 일이군요.
"내가 사실 지난해(2009년) 8월 27일 엄 사장을 해임하려 했어요. 하지만 정무적인 판단으로 미룬 겁니다. 취임 직후 업무 보고를 받을 때부터 (내가) MBC의 문제를 계속 제기했습니다. 전략이었죠."

- 어떤 정무적인 판단을 하신 것인지.
"국정 감사도 앞두고 있고 또 정운찬 총리 임명 문제도 있고 해서…."

- 엄 전 사장의 사퇴는 예상하신 건가요.
"솔직히 2월 말까지는 버틸 줄 알았어요. 그 때까지도 안 나가면 해임하려고 했어요."

이 정권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직접 경험한 나는 당신에게 가해지는 해임 압박과 박해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고자 글을 썼습니다. 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지요.

오늘, 엄 사장 당신에게 편지를 쓰게 된 까닭은 당신이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 당신이 가슴 저미게 느낄 고뇌와 고통, 북풍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외로움을 제가 지난해 비슷한 처지에서 절실하게 경험한 터여서, 그 고뇌와 고통,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천근 무게의 사퇴와 해임 압박, 그 방면에서는 제가 선배니까요.

핍박과 박해를 '역사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라 했는데

그러면서 나는 당신에게 가해지는 핍박이나 박해를 괴로움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역사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했지요.

그 첫 편지가 <오마이뉴스>에 나간 날 오후, 당신은 내게 전화를 하여 "격려해 줘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나는 "엄 사장이 잘 버티실 것으로 믿는다"며, "응원하는 이들이 많으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답했지요.

그 뒤에도 MBC에는 김우룡 이사장의 강경 드라이브가 계속되었습니다. MBC를 '김우룡 섭정체제'라고 부르기도 했고, '김우룡 사장, 엄기영 이사'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임원 선임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다시 빚어졌고,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즈음하여 감사원이 방문진 감사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지난해 2월 5일 금요일 오후였지요. MBC에 볼 일이 있어서 찾아간 길에 사장실에 잠시 들러 당신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신은 그 즈음 여러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격려와 위로를 받고 있다며, 참으로 고마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잘 견디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랬기에 그 다음 월요일, 당신이 사퇴를 발표하고 MBC를 그만 두었을 때, 어리둥절했습니다. 바로 사흘 전 만났을 때 그만 둘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신은 떠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장으로 재임한 2년은 MBC 역사상 그런 2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다사다난했고, 상황은 저의 예상을 훨씬 넘을 만큼 더 복잡한 것이었다"고 당신은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후배들을 헤아리며 그렇게 당부했지요.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만 넘기고 떠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울 따름"이라고. 그러면서 "앞으로도 좋은 방송 만들고, 대한민국 최고의 일류 공영방송 MBC를 계속 지켜 달라"고.

김우룡 이사장의 '거침없는 하이킥'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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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을 지키겠다며 농성 중이던 MBC 노조원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당신은 '마지막 퇴근' 길에서 마주한 MBC 노조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MBC를 지키고 살리는 데 힘과 지혜를 내달라"고 말한 뒤 "다 같이 MBC 파이팅을 외칩시다, MBC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당신을 핍박하고 괴롭혔던 정권을 향해 "MBC 파이팅!"을 외쳤던 것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MBC를 떠났고, '엄기영 축출'의 일등 공신이었던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기고만장했습니다. 그 기고만장이 차고 넘쳐 2010년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는 '거침없는 하이킥'을 했지요. 그는 (엄기영 사장 후임으로 들어 온) 김재철 사장과 관련하여 "큰 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김 사장이) 매도 맞고 해서…." "(이번 인사로) MBC 좌파 대청소는 70~80% 정도 정리됐다"는 등의 폭탄 발언을 했지요. 그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우룡 이사장은 당신과 관련해서도 기고만장의 '하이킥'을 날렸습니다.

엄 전 사장은 2월 8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방문진이 뭘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엄 전 사장이 사표를 제출한 다음 날인 2월 9일 인터뷰에서 김(우룡) 이사장은 엄 전 사장의 이 발언과 관련, "뭐긴 뭐냐. 나가라는 것이지. 어차피 내보내려고 했는데, 자기 발로 걸어 나갔으니 120% 목표달성했다"고 말했다.

- 지난해(2009년) 12월 10일 엄 전 사장이 낸 사표를 반려하셨죠.
"대통령이 엄 사장과 막걸리 먹으면서 '조만간 엄 사장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언질을 줬지. 그리고 며칠 뒤 엄 사장이 자기와 본부장들 사표를 (나에게) 들고 왔어. 그 전에 내가 엄 사장에게 '문 걸어 잠그고 이사들 사표 받아 오라'고 시켰거든. 엄 사장은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자기 사표는 반려될 것으로 알고 있었던 거지."

- 사표 수리가 안 될 것으로 알고 사표를 냈다?
"감을 잡았지."

- 그런데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됐죠.
"(엄 사장과) 얘기가 잘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얘기가 잘 안 되더라고. 내 앞에서는 네네…하면서, 돌아서면 뒤통수를 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사표를 내게 했지. … 엄 사장이 나가면서 이제 공영방송을 위한 8부 능선을 넘어섰다. 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

엄기영 사장 적극 옹호했던 최문순 의원

엄 사장, 당신은 같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막걸리 마신 일은 없다고 부인했지요. 어쨌거나 <신동아>를 보면 한나라당에서 추천한 김우룡 이사장이 엄기영 사장을 축출하는 데 일등 공신인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당신은 최문순 의원(민주당)에게 "김우룡 이사장은 매우 부도덕한 인물이다. 그래도 방송 출신이고 MBC 선배라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완전 속았다"고 말한 적도 있지요.

최문순 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김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직후부터 엄기영 사장을 해임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지난 6개월 동안의 속기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모욕과 인신공격, 겁박, 편성개입, 노사관계 개입 등 도저히 견딜 수 없게 하며, 몰아낸 게 아니라 스스로 물러난 것처럼 유도했다. 엄 사장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 굴욕감, 모욕감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당신 축출에 일등 공신이었던 김우룡 이사장을 몰아세우면서 당신을 옹호했던 최문순 의원과 당신은 이제 강원도 지사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당신이 한나라당 입당을 하면서 밝힌 '궁색한 논리'가 지독한 모순덩어리이고, 당신의 한나라당 입당 이후 쏟아져 나오는 조롱과 비판, 야유가 '같은 뿌리'인 집단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당신에게 가한 가혹 행위들

2010년 2월 8일 오후 사퇴의사를 밝힌 엄기영 MBC사장이 여의도 본사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MBC를 부탁한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2010년 2월 8일 오후 사퇴의사를 밝힌 엄기영 MBC사장이 여의도 본사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MBC를 부탁한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진제공 독설닷컴(@dog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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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강원도와 도민을 위한 더 큰 정치, 더 힘 있는 도정을 펼치려면 한나라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도와 도민을 위한 것이다."
"나는 MBC 사장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에 관해 이견이 있었고, 이를 지키려다 좌절돼 MBC사장직을 사퇴한 것이다."
"사장을 사퇴하면서 언론의 자유,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가 꼭 가져야 할 가치이고, 비판정신은 계속 지켜나가길 바란다."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갈등의 관계일 것이다. 후배들이 비판정신은 꼭 가지길 바란다."

그런데 당신이 들어간 한나라당에는 2009년 6월, 당신에게 '응분의 책임'을 요구하는 조전혁·김효재·신지호·안형환·유정현 의원 등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40명도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왜곡과 과장으로 온 나라를 광분시키고, 광우병 촛불시위로 국정을 마비시켜 놓은 <PD수첩> 제작진"을 비판하면서 "<PD수첩> 제작진의 취재와 보도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자체 정화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MBC의 제작 책임자와 최고 경영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의 <PD수첩> 제작진 기소 방침에 대해 "외국의 일이라면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총사퇴해야 할 일"이라며 당신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 말이 불쾌했던지 당신은 MBC 임원회의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부적절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며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언론사 사장 퇴진을 말하느냐"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 가학자의 품 속으로 가버린 당신

그랬던 당신이 그들의 품속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설명이나 논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 참으로 고약스럽고 구차스러운 변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한나라당 강원도당 사무실에서 한나라당 입당과 함께 4·27 강원지사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한나라당 강원도당 사무실에서 한나라당 입당과 함께 4·27 강원지사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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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당신은 한나라당에 '힘'이 있다고 하여 그 쪽을 선택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행한 선택이 아니고, '힘'을 좇아서 간 기회주의적 처신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지난번 민주당 후보였던 이광재 지사를 당선시킨 다수의 강원도민들의 '선택'은 '힘없는 패자들'의 선택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셋째, "정부와 언론에 관해 이견이 있었고, 이를 지키려다 좌절돼 MBC사장직을 사퇴한 것"이라는 발언은 방송 현실과 관련지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현 정부의 방송장악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걸 막지 못해 사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의 대전제는 이 정권이 방송장악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는 것이지요. 그거야 당신이나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러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언론의 자유를 이처럼 훼손하고 말살시키려는 그 정권의 정치집단인 한나라당에 들어가는 이유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방송 장악, 민주주의 훼손은 괜찮고, '힘 있는 강원도 건설'을 위해서는 그렇게 민주주의 훼손, 방송 장악하는 정권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당신이 즐겨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은 아닌지요.

특히 앞에서 보았듯이 당신이 MBC에서 축출될 때까지 이 정권이 당신에게 가한 능욕, 조롱, 모멸은 가당치 않았는데, 그래서 그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MBC를 떠났는데, 그렇게 능욕, 조롱, 모멸을 한 그 정권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당찮은 당신의 논리와 변명, 그리고 조롱과 야유

이런 당신의 발언과 주장은 너무도 많은 모순을 담고 있는데, 그 지독한 모순은 지난 1년 동안 당신이 MBC '고문'으로 있으면서 매달 1000여만 원 보수에다 에쿠스 승용차와 운전자 등의 '혜택'을 누린 고약스럽고 구차스러운 것에서 상징적으로 보게 됩니다.

당신의 선택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우리사회의 수구 기득권 세력인 한나라당과 그 세력의 '절친'인 조중동, 그리고 이른바 '보수 논객'들에서도 비난과 조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몇 가지만 모아보았습니다.

한나라당은 2008년 봄의 광우병 선동 책임자인 엄기영 전 MBC 사장을 강원도 지사 후보로 영입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보수의 윤리도, 여당의 책무도, 법치주의 원칙도 포기하였다. 공적 1호를 공직에 앉히려는 한나라당은 조폭과 창녀의 윤리도 없다. 미친 것은 미국소가 아니라 한나라당인 듯하다.… 한나라당의 미래는 어둡다.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다.  (조갑제 전 <월간 조선> 대표)

나는 한때 그를 좋아했다.… 무엇보다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고 일갈하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정치권의 제의가 쇄도했다. 특히 민주당은 몸이 바짝 달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를 후보로 영입하려고 당 대표 등이 문지방이 닳도록 찾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언론인으로 남겠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에지 있는' 거절이었다.… 비겁하다. 그는 '내가 출마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강원도민 핑계를 댔다.… 더 딱한 건 이런 '엄기영 당원'을 맞는 한나라당이다. 원수처럼 미워하고 쫓아내려 했던 사람들, 집단성명까지 냈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주연배우 엄기영이 등장한 한국 정치의 단막극은 앵커 시절 그의 멘트처럼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다. (<중앙일보> 박승희 국제부문 차장 칼럼 '엄기영의 염치')

한나라당과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간 것은 한국 사회의 정신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공동체를 기만하는 지식인이나 그런 행동을 조장하는 집권당이나 도덕적 책임이 똑같다.… 이런 탈선의 합작은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유권자의 이성을 유린하는 것이다.… 2008년 여름이라면 이명박 정권은 사춘기였다. 초기 내각파동이 있었지만 정권은 국정의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순정을 짓밟은 게 광우병 촛불 폭력이다. 당시 촛불 허위난동에 용감히 맞섰던 인물 중 하나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다. 당이 훗날 그를 최고위원으로 영입한 것은 그의 소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런 정권이 지금은 거꾸로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방송사의 사장 출신을 끌어들였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봉숭아 학당'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이제는 대놓고 도덕적 레드 라인(금지선)마저 넘고 있다. 지사 자리 하나에 정권의 가치를 팔아버리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느 유명한 지식인과 표 몇 장에 정신이 구제역에 걸려버린 집권당…그들이 추어대는 탈선의 탱고에 이 봄이 어지럽다.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 칼럼 '엄기영과 한나라당 - 탈선의 탱고')

오고 있는 찬란한 봄을 명예롭게 맞이하시기를

이들뿐 아니라 수구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당신과 한나라당을 비판했습니다. 그런 비판과 조롱을 보면서, 당신과 한나라당의 '동거'가 과연 오래 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권과 여당이 생각과 가치관과 지향하는 바가 거의 비슷한 동지적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조폭과 창녀의 윤리'라느니, '탈선'이니, '정권의 가치를 팔았다'느니 하는 비판과 야유를 듣는다면, 그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기영 사장께서 지금이라도 지혜로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강원도민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했지만, 나라 전체를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짧은 소견의 탓이었다, 강원도를 위해서는 백의종군의 자세로 하겠다, 그런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게 마지막 남아 있는 자긍심과 명예를 지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고 있는 찬란한 봄을 평화롭게, 명예롭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태그:#엄기영, #정연주, #최문순,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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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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