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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섹스를 할 때 남자의 성기를 여자의 질 속으로 넣지도 빼지도 못할 난처하고 어려운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간통을 하려는 남자가 막 여자의 질에 삽입을 하려고 하는데, 여자의 남편이 들이 닥쳤을 때를 가정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이 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부딪혔을 때 쓰이기도 하지만, 그 근원이 워낙 속된 표현이라 쓰지 않는 게 좋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이 표현을 쓰는 것을 여러 번 봤는데, 그들이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표현의 근원을 잘 알고서도, 또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이 표현을 쓰는 것인가?-<재미있는 섹스사전>에서

<재미있는 섹스사전>(북카라반 펴냄)은 섹스만을 주제로 한 사전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책이 다루고 있는 그 다양하고 방대한 이야기에 놀란 그런 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섹스 관련 개념어들은 700여 개. 찾아보기 쉽도록 가·나·다 순으로 배열했다.

책에는 우리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나 일이 몹시 난처하게 되어 그대로 하기도 그렇고 중단하기도 뭣할 때, 즉 판단이 쉽지 않을 때 흔히 쓰는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워낙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다. 그런데 어쨌거나 어원은 이처럼 속되기 이를 데 없단다. 이런 뜻이 숨어있음을 알고서는 차마 쓸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별 의심 없이, 때에 따라 간혹 쓰기도 했던 말인지라 다소 부끄럽게 읽었다.

1585년부터 1635년까지 약 50년은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다. 마녀사냥으로 처형된 희생자의 수는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900만 명으로 역사가마다 견해가 다르다. 대부분의 역사서가 마녀사냥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만, 실은 마녀사냥은 '섹스사냥'이기도 했다. 당시엔 남자 의사조차 여자의 몸을 보는 것이 금기였지만, 마녀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여자의 몸을 보는 것은 예외였다. 마녀 혐의를 받은 여자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낯선 남자들이 가득 모인 방에 끌려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역사가 안네 바스토우에 따르면, "간수, 고문자, 사형 집행인 등 모두가 여자 죄수를 조롱하며 즐길 수 있었다. 존경받는 성직자나 재판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다. 마녀에 대한 재판보다는 마녀사냥을 즐겼던 것이다. 즉 이들은 여자를 상대로 절대적인 성적권력을 행사했다. 마녀사냥에서 마녀의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은 여자의 육체를 짓밟는 행위를 은폐하는 승인된 절차였다."-<재미있는 섹스사전>에서

마녀사냥에 관한 설명, 그 전문이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수많은 역사책들이 종교 차원에서만 다뤘기에 섹스만을 주제로 한 이 책 목차만 볼  때는 좀 의아했다. 그런데 섹스사냥이라? 그것도 남성(힘)+종교(권력)들이 대놓고 즐긴 성폭행? 그럼에도 오랫동안 종교문제로만 포장되었다? 이미 몇 백 년 전의 일임에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재미있는 섹스사전>겉그림
 <재미있는 섹스사전>겉그림
ⓒ 북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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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상식과 편견의 벽을 허물다'란 부제가 붙었다. 확실하게,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실눈을 뜨고 바라보거나 더 알아볼 여지조차 없이 외면하는 '편견'만 버리면, 그 어떤 책보다도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리고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설명처럼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 자체 용어들과 딸딸이, 백보지, 빠구리, 조개 보지 등과 같은 은어 및 속어 등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종종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잦지만, 마녀사냥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 그 숨은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유용한 자료들이 많다. 섹스가 관여한 역사, 한 사회 혹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섹스 관련 사건, 오늘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그리고 공공연하게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사실이거나 아니거나와 같은 섹스 관련 상식, 섹스 때문에 생겨난 문화와 풍습, 관련 범죄 등 섹스 관련 다양한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 매춘을 애국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1970년대에 외화 벌이를 위해 매춘의 국책 사업화가 이루어진 과정에서 제기됐다. 박정희 정권은 1973년부터 관광 기생들에게 허가증을 주어 호텔 출입을 자유롭게 했고 통행금지에 관계없이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행사를 통해 '기생 관광'을 국제적으로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1973년 6월에는 문교부 장관이 나서 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했다. 주한 미군도 이러한 국책사업의 주요 고객으로 등장했다. 기지촌 여성들을 '가장 더러운 여자들'로 낙인찍으면서도 동시에 '외화를 버는 애국자들', 심지어 '민간 외교관' 이라고 칭송하는 일이 벌어졌다. 외국 바이어를 상대하는 여성들도 애국자의 반열에 들었다.(중략)-<재미있는 섹스사전>에서

마녀사냥에 이어지는 개념어들은 마녀 젖꼭지, 마담뚜, 마조히즘, 마찰 도착증, 매춘 애국론, 매춘·포르노 육성론, 메두사의 웃음, 메이드 카페, 명우회, 명월이 생식기, 모의섹스, 모텔시간대여금지법, 모텔형 비디오방, 모텔 회전율, 무모증, 묻지마 관광, 미아리 텍사스 등이다.

이중 '매춘 애국론'은 오늘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 환경이 잘 조성되었다는 우리의 성매매 현실에 국가가 이처럼 대놓고 한몫 든든하게 기여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이처럼 시사적인 것들을 꽤나 많이 다루고 있다. 매춘 애국론 외에도 ▲ 탈북자 이모씨가 "김위원장도 이 약을 먹고 정력이 좋아졌다"는 허위전단 광고를 뿌려 원가 1만 2천 원짜리 약을 30만 원에 팔아 5억 2500만 원을 챙긴 김정일 정력제 사기 ▲ 2007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꽃뱀 컬렉트콜의 실체 ▲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미신으로 일어난 최악의 비극인 백백교 사건(1937) ▲ 1997년 7월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청소년 음란 비디오 '빨간 마후라' ▲ 1999년 4월에 발생한 순결증명서 사건과 1998년에 발생한 스와핑 강요사건 ▲ 유시민의 조개 줍기 논란 ▲ 2008년 1월 25일에 종결된 나훈아 괴담 등 ▲ 여자 화장실 몰래카메라 사건▲ 박진영 누드 사건 ▲ 옥소리 간통사건 등 발생 당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등을 다룬다.

지면상 이 정도만 열거하지만, 이들 내용 외에도 그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섹스 관련 상당수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썩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군대송과 군대위문공연의 효과, 나비작전, 광해군 비방, 동맹속의 섹스, 씨받이 면회, 김본좌, 박카스 아줌마, 백상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건, 꿀벅지, 서종삼과 이봉익, 박찬호와 박세리 음담패설 등도 솔깃하고 재미있게 읽은 것들. 책을 덮고도 생각나는 것들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매매의 기회가 잘 보장된(?) 나라다. 주택가에서 학교 주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유사 성매매 업소들이 즐비하다. 심지어 검사들의 성상납 의혹까지 불거지고 해외에서 한국인들의 성매매가 국제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한국 남성들의 성매매 행각은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공개적으론 성 표현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 바로 이런 이중성이 마땅히 심각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주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선구자들의 연구마저 마땅치 않게 보는 풍토를 낳은 것이다.

구전과 고전, 정사와 야사, 밀담에서 논쟁, 세태 고발에서 성담론, 황색잡지부터 학술문헌에 이르기까지 섹스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금기와 성역을 완전히 탈피하고 파괴한 이 책은 성과 관련된 역사는 물론 각종 은어와 속어, 음담패설까지 여과 없이 공개한다. 이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담론과 성문화의 이중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저속하다거나 민망해 보이는 내용들 역시 실제 우리 사회와 개개인이 행하고 있는 통속적인 문화 현상임을 인정하고 토로하자는 의도다. 모쪼록 이 책이 독자들에게 재미와 정보는 물론 유익하고 건강한 성담론을 형성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재미있는 섹스사전> 머리말 중에서

저자의 이와 같은 말에 평소 어느 정도 동감했기에 이 책을 별다른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그러나 선뜻, 쉽게 읽지 못했다. '섹스'라는 말에 공연히 민감해져 까닭 없이 부끄러워하고 난감해하는 청소년을 둘이나 둔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책 제목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신경이 쓰였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은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게 "엄마는 변태야!"라는 농담과 함께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토록 민감한 제목의 책을 두 아이에게 틈나는 대로 읽어 보라고 권했다. 애초 나만 읽으려했던 책인데 말이다. 또 책을 읽다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어른으로 살아갈 훗날의 한국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사회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고 부끄럽게도 청소년 개입 성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는 이 시대에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과 그 친구들에게 이 책이 '섹스 관련 지식 습득과 더불어 건강한 섹스 가치관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재미있는 섹스사전>|강준막 (지은이)|북카라반|2011-01-20|17,000원



태그:#섹스, #사전, #매춘 애국론, #마녀사냥, #북카라반(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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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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