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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중요민속자료 제155호 군지촌정사.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 소재한다
▲ 안채 중요민속자료 제155호 군지촌정사.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 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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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넉넉함이 있고 화려하진 않지만 멋을 풍기고 있는 집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주거지 중 으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거기다가 섬진강이 반달꼴로 휘어져 내려오는 물길이 보이고, 멀리 광주 무등산의 기맥을 받아들이는 듯한 집.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이 288에 소재하는 중요민속자료 제155호인 '군지촌정사'가 바로 그런 집이다.

군지촌정사는 이 집의 사랑채를 말하는 것이다. 해주목사와 병조참판을 지낸 심안지의 손자인 심광형이, 조선 중종 30년인 1535년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군지촌정사는 풍수 지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집 터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만큼 주변의 경개가 아름다운 곳이다.

대문채 5칸으로 된 군지촌정사의 대문채는 초가이다
▲ 대문채 5칸으로 된 군지촌정사의 대문채는 초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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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석 대문채 계단 밑에는 하마석이 놓여있다. 사람들이 말을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도록
▲ 하마석 대문채 계단 밑에는 하마석이 놓여있다. 사람들이 말을 타고 내리기에 편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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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바라보고 앉다

섬진강을 끼고 난 길을 달려 군지촌정사로 향했다. 가는 내내 길에는 '전망 좋은 집 - 함허정'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길가에 서 있는 군지촌정사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대문채)로 구분이 되었다. 조선조의 우리사회는 유교적 성향이 강하다 보니, 엄격한 남녀의 구분과 신분의 구별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군지촌정사 앞에 서서보니 커다란 바윗돌 하나가, 대문을 오르는 계단 앞에 자리하고 있다. '하마석(下馬石)'이라고 한다. 평소 사람들과 교류를 즐겨했던 심광형 선생의 집답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나보다. 하기에 대문 앞에 이런 바윗돌을 놓아, 사람들이 말을 타고 오르내리기를 수월하게 했을 것이다.

안채 안채는 모두 네 칸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의 순으로 되어있다
▲ 안채 안채는 모두 네 칸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의 순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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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 앞으로 길게 나 있는 툇마루는 건넌방 앞을 판자문으로 막아 동선을 제한하고 있다
▲ 툇마루 앞으로 길게 나 있는 툇마루는 건넌방 앞을 판자문으로 막아 동선을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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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 안채 뒤편으로 보면 작지만 쓰임새 있게 집을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 뒤편 안채 뒤편으로 보면 작지만 쓰임새 있게 집을 배열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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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채에 올라서기도 전에 뒤편으로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저 섬진강의 물이 때로는 유하게 때로는 격하게 굽이치는 것을, 이곳에서 바라다보았을 것이다. 그 안에 세상사가 다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선생은 그런 섬진강을 내다보기를 즐겨했을 것이다.

초가로 된 대문채, 절로 멋이 들어   

대문채는 5칸 맞걸이 一자형집이다. 행랑채를 겸하고 있는 대문채는 건축 년대가 안채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대문채는 복판에 대문 칸을 두고, 동쪽에 2칸 구들을 놓았으며 서쪽에는 외양간을 놓았다. 그리고 잿간의 순서로 들였는데, 초가로 되어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네 칸 - 자로 된 안채가 정면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서쪽으로 측면 두 칸 부엌을 두고, 다음으로 안방을 들였다. 가운데는 두 칸 대청을 드렸는데, 모두 문을 달아냈다. 그리고 동편으로는 건넌방을 들였다. 그런데 이 안채의 특징은 툇마루가 건넌방 앞까지 연결이 되고, 건넌방 앞에는 툇마루 끝에 판벽으로 문을 달아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건넌방에 있는 사람과 대문채에 있는 사람들이 부딪치지 않도록, 동선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군지촌정사인 사랑채
▲ 사랑채 군지촌정사인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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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사랑채는 정면 세 칸, 축면 두 칸이다. 높은 축대 위에 올려놓았다
▲ 사랑채 사랑채는 정면 세 칸, 축면 두 칸이다. 높은 축대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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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지촌정사의 안채는 높은 축대위에 세워졌다. 축대는 자연석 바른 층 쌓기이며 네 벌대 높이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넓적한 화강암 덤벙주초이다. 안채는 보기에는 조금 답답해 보이지만, 그 좁은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판장문을 달아낸 것이나, 앞으로 길게 대문채를 놓은 것을 보면,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네 사랑이 된 군지촌정사

'군지촌정사'는 마을의 사랑역할을 했다. 그래서인가 사랑채는 담장이 없이 전면이 개방이 되어있다. 다만 안채로 들어갈 수 없도록 대문채와 안채의 담장을, 사랑에 연결을 해 동선을 차단하고 있다.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한 사랑채는 세 칸으로 된 집이다. 가운에 뒤편으로 두 칸의 방을 들이고, 삼면은 모두 개방하여 누마루를 깔았다.

사랑채 가운데 뒤편으로 두 칸 방을 들이고, 삼면을 개방마루를 놓았다
▲ 사랑채 가운데 뒤편으로 두 칸 방을 들이고, 삼면을 개방마루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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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사랑채 창호 위에는 군지촌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서당과 마을 사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 사랑채 사랑채 창호 위에는 군지촌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서당과 마을 사랑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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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언제나 찾아 올 수 있도록 개방을 한 곳. 군지촌정사는 아마도 심광형 선생의 마음 그대로를 담아 낸 집인 듯하다. 두 칸 방을 뒤로 물리고, 삼면을 개방을 해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하였다. 마을의 서당을 겸하기도 했다는 군지촌정사의 사랑채. 그렇게 삼면이 훤히 터진 곳에서 학습을 하던 학동들은, 섬진강 푸른 물길을 바라다보면서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군지촌정사는 2월 26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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