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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7월 9일, 재일교포 유학생 신분으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인권침해를 당했던 김병진씨

김병진씨는 재일교포 3세 모국 유학생이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3년 7월 9일 오후 2시경 그는 서울 신림동 집 앞에서 국군 보안사(현 기무사) 수사관들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어둡고 싸늘한 지하실에서 같은 해 10월 초까지 약 3개월간 간첩혐의로 장기 조사를 받았다. 보안사는 그를 영장 없이 장기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잔인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하며 진술을 강요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공소보류' 처분을 받고 1984년 1월 1일 보안사 대공처 수사과 소속 군무원으로 강제 임용되어 1986년 1월 31일까지 약 2년간 근무했다.

 

보안사의 구금은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고 그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은 폭행·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 더욱이 보안사는 1983년 10월 19일 이 사건 조사 결과를 언론에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김병진씨에 대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함으로써 그는 물론 가족의 명예와 인권을 침해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09년 11월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확인한 바 있다. (관련기사 : 간첩 혐의 유학생 어떻게 보안사에서 일하게 됐나)

 

당시 진실화해위는 보고서를 통해 "국가는...신청인(김병진씨) 및 관련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명박 정부는 김병진씨에게 전혀 사과하지 않았고 그가 받은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음은 지난 23일 서울시내 한 사무실에서 김병진씨와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진실규명 이뤄졌는데도 구제나 보상 받을 길 전혀 없어"

 

 1983년 7월 9일, 재일교포 유학생 신분으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인권침해를 당했던 김병진씨

- 1983년 일본에서 모국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다. 그 후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칠 것이다. 지금도 후유증이 있나?

"3년 전 병원에서 '노동력 상실'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잘 안 쉬어진다. 보안사 요원에 의해 연행될 당시 생후 두 달 반 된 아들이 있었는데 나도 나지만 조국이라고 찾아온 나라에서 아내가 어린 젖먹이와 홀로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1986년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당시 불안한 상황에서 아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은 고통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말도 다 표현할 수 없다."

 

-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은?

"과거사 사건에 관한 구술증언을 위해 방문했다. 엉터리·거짓 역사가 아닌 올바로 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보안사에서 수감 중 혹은 그 후에 강제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1988년 <보안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 후 한국입국 금지, 그 책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금서 조치, 책 8천 권 압수, 출판사 사장 수배 등으로 시달렸는데 2009년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된 후에 한국정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나?

"손해배상 소송을 했는데 시효 3년이 지났다고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 논리라면 노태우 정권 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말인데 당시 수배당하고 입국이 금지된 상황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국의 법체계가 이해 안 된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한국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는데도 한국에서 법적으로 내가 구제나 보상 받을 길이 전혀 없다. 이해가 안 간다."

 

-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이 불법 구금 조사를 하면서 사모님을 윤락녀, 아드님을 고아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는데 그 후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가 있었나?

"진실화해위에서 조사했지만 가해자인 보안사 수사관들 중 딱 1명만 조사에 임했고 대부분 가해자들은 조사를 피했다. 그러나 조사받은 그 보안사 수사관조차 나에 대한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을 전면 부인했다. 가해자들 중 해외로 도망간 수사관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서 법적·제도적 정비되었으면 "

 

 1984년경 김병진씨가 서울 보안사 직원 아파트에 살던 당시의 가족사진

- 2009년 진실화해위는 선생님 사건 관련 정부에 대한 권고문에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동안 한국정부에서 그러한 조처를 취했다고 보는가? 국가나 기무사에서는 사과했나?

"2009년 당시,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 후 국가 책임부서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한다고 통보받았다, 그런데 진실화해위 활동은 2010년 12월에 끝났는데 지금껏 두 달이 되도록 한국정부로부터 아무런 사과나 조처를 한다고 통보받은 적이 없다. 물론 가해자나 한국 정부의 사과도 전혀 없었다. 지난해 한국에 와서 기무사를 방문하고 사과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문 앞에서 냉대만 받았다."

 

-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이영조씨로 바뀌고 진실화해위에 여러 가지 파란이 많았는데 현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과거 법정에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분들은 지금 재심청구 등을 통해 힘들지만 국가의 보상이 최소한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내 사건처럼 피해자가 재판도 없이 불법연행·구금·고문을 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현재 한국의 법체계 아래 피해자가 전혀 법적대응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부디 앞으로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와서 내 사건과 같이 국가가 저지른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의 인권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된 민주국가 아닌가. 그동안 한국에서 간첩조작으로 낙인찍힌 재일교포가 100여 명인데 이런 법적·제도적 맹점 때문에 명예회복은 극소수인 단 3명만 되었다.

 

내 삶의 반생은 한국정부에 의해 망가졌다. 잡혀 들어가고, 고문받고, 강제로 보안사에서 근무하면서 억울하게 나처럼 고문 받는 피해자들의 비명을 들어야 했고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봐야 했다. 또 나와 같이 피해를 당한 처자식에게 어떻게든지 내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그럴 힘이 없어서 안타깝다."

 

- 그래도 재일교포로서 모국에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한국의 과거사 정리는 끝난 것이 아니라 중도 좌절되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는 꼭 재일 한국인, 재일교포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한국정부가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진실화해위의 활동이나 역할 등 그 존재가 일본에서는 홍보가 잘 안 됐다. 그리고 알았더라고 생활고 때문에 또는 가해자인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으로 조사 신청을 못 하거나 안 한 재일교포 분들도 많다. 억울하게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더라도 피해 신청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 쉽지 않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가지 재일교포들의 애로사항을 향후 한국정부가 헤아려 주고 적절한 조치를 해주었으면 한다. 재일교포도 한국국민인 것을 명심해 달라.

 

일본에서 매일 한국에 관련된 뉴스를 보면 기쁜 소식 보다는 답답한 뉴스가 많다. 우리 후손들이 오늘 절망하기보다는 희망을 갖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선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우리가 후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교포 이충성 축구선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는 극도의 경쟁체제와 심한 사회적 배타성 때문에 나와 조금만 다르면 그냥 '왕따' 시켜버리고 배척한다. 좀 더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민감하고 포용해 주는 인정 넘치는 따듯한 조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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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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