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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게 파삭거리며 쫄깃하게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감칠맛을 품은 참치밥전
▲ 참치밥전 고소하게 파삭거리며 쫄깃하게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감칠맛을 품은 참치밥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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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같은 밥풀 한 톨도 남기지 마라
살 같은 밥그릇 딸그락거리지 마라
늘상 터지는 한숨, 소리 내서 씹지 마라

고놈 돈이 웬쑤란다 
고놈 쌀이 사랑보다 더 지독하단다
고놈 밥이 하늘보다 훨 높단다

땀내 배인 쌀 한 톨 함부로 흘리지 마라
피눈물 섞인 쌀밥 젓가락으로 헤아리지 마라
배곯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이소리 '밥'모두

매서운 땡추위와 큰 눈이 잠시 맥을 놓자 이번에는 생필품값이 마구 들썩이고 있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눈 오면 눈 왔다고, 비오면 비 왔다고, 가뭄이 오면 가뭄 왔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가난한 사람 빈 지갑만 후려치는 물가. 가슴에 희망 하나 꼬옥 품고 어쩌지 못하는 가난과 거칠게 싸워도 날이 갈수록 더욱 힘들고 고달픈 세상살이.

이선관(1942~2005) 시인이 쓴 '설마 하느님은 아니겠지'라는 짤막한 시가 자꾸 떠오른다. "부자를 부자로 자꾸 자꾸 만들어주고 /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자꾸 자꾸 만들어주는 /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 설마 하느님은 아니겠지"라는 그 시. 그 시가 요즘 들어 왜 이리도 자꾸 마음을 톡톡 칠까.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자꾸 자꾸 만들어주는 /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 설마" 이명박 대통령은 아니겠지. 

서럽고 마음 쓰리다. 21세기 보릿고개가 따로 없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어렵고 힘에 부칠 때는 식은 밥알 한 톨도 '제 새끼'(?)처럼 아껴야 한다. 그렇다고 식은 밥을 그냥 먹을 수야 있겠는가. 식은 밥은 누룽지를 만들어 먹으면 맛이 아주 구수하다. 식은 밥으로 누룽지보다 더 맛깔스럽게 먹기 위해서는 밥전이 그만이다.   

밥전은 식은 밥에 김치나 새우, 참치, 어묵, 두부 등 우리들 밑반찬으로 눈에 흔히 띠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밥전은 요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 때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는 고마운 음식이기도 하다. 여기에 툭 하면 남아도는 식은 밥을 버리지도 않고 더욱 맛나게 먹을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게 아니겠는가.   

식은 밥으로 누룽지보다 더 맛깔스럽게 먹기 위해서는 밥전이 그만이다
▲ 식은 밥 식은 밥으로 누룽지보다 더 맛깔스럽게 먹기 위해서는 밥전이 그만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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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보다 더 아까븐 밥을 내비리뿟노?"

"누가 수채구녕(수채구멍)에 이 피보다 더 아까븐(아까운) 밥을 내비리뿟노(내버렸나)? 시근밥(식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어 묵으모 울매나(얼마나) 고소한데."
"밥에 쉰내가 쪼매(조금) 나는 거 같아서예. 배앓이 하는 거보다는 내비리는 기(내버리는 것이) 더 나은 기 아입니꺼?"
"야(얘)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가베. 그런 때는 닭이나 오리, 돼지, 소 모이로 주모 울매나 잘 묵는데. 아이구, 이 밥이 너무 아까버서(아까워서) 우짜것노. 쪼매 쓸어 담을라캐도 밥알이 거의 다 수채구녕 속으로 다 들어가뿌고(들어가고) 없으이 이로(이를) 우짜것노."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인 1960년대 끝자락인 그때. 요즘처럼 음식물 쓰레기란 게 아예 없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창원군 상남면(창원시 상남동)에 있는,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 곳곳에서는 여느 집 할 것 없이 닭과 오리, 돼지, 소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길렀다.

해마다 거듭되는 가뭄과 장마, 태풍이 남긴 흉년농사에, 보릿고개까지 있어 버릴 음식도 거의 없었다. 맛국물을 내고 난 뒤 건져낸 국물멸치, 누룽지를 끓여먹다 국물에 한두 톨 남은 밥알 등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음식물 찌꺼기가 조금만 생겨도 집에서 기르는 닭과 오리, 돼지, 소들 몫이었다. 그땐 음식이 그만큼 귀하기도 했지만 남는 음식은 동물이 모두 먹었으니, 사람과 동물이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무쇠 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우물물을 부어 누룽지탕을 자주 끓였다. 가끔 쌀이 몇 개 섞인 보리밥조차 모자라 아이들 누구나 밥그릇 바닥까지 달달 긁어댔으니 식은 밥이 생길 수도 없었다. 그랬으니 밥전이란 음식은 아예 없었다. 내가 밥전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던가.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후다닥 아침밥상 밥전'을 보면서부터다.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밥을 지을 쌀을 아무리 잘 조절해도 툭 하면 식은 밥이 조금씩 남기 때문이었다. 그렇잖아도 냉동실에 누룽지가 가득한데 자꾸만 누룽지를 만들 수도 없었다. 식은 밥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라면을 끓여 말아먹을 수도 없었다. 그랬으니 식은 밥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밥전이 눈에 쏘옥 들어올 수밖에.  

밥전은 식은 밥에 김치나 새우, 참치, 어묵, 두부 등 우리들 밑반찬으로 눈에 흔히 띠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 참치 캔 밥전은 식은 밥에 김치나 새우, 참치, 어묵, 두부 등 우리들 밑반찬으로 눈에 흔히 띠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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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식은 밥을 넣고 그 위에 캔에 든 참치와 달걀을 푼다
▲ 참치밥전 반죽 그릇에 식은 밥을 넣고 그 위에 캔에 든 참치와 달걀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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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좋아하는 참치밥전 재료비는 고작 1800원

"아빠! 나 참치 좋아해. 다른 반찬은 없어도 그냥 캔에 든 참치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어."
"왜? 요즘 참치가 먹고 싶어? 오늘 저녁은 큰딸이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나 만들까?"
"그것 말고. 엄마는 참치에 계란을 풀어 참치전을 참 잘 만드는데..."
"그거야 식은 죽 먹기지. 그래 알았어. 엄마가 만든 참치전이 맛있는지 아빠가 만든 참치밥전이 더 맛있는지 어디 함 겨뤄볼까."

큰딸은 어릴 때부터 참치 캔에 든 연분홍빛 참치를 반찬으로 삼아 밥과 함께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큰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참치 캔만 찾으니, 아내가 안쓰러웠던가 보다. 아내는 그때부터 참치에 계란을 풀고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송송 썬 파, 빻은 마늘 등을 넣고 휘휘 저은 뒤 참치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딸에게 조금 더 영양가 있는 반찬을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0일(일) 저녁 6시. 겨울방학을 맞아 창원에 내려가 있는 큰딸이 21일(월) 저녁에 서울에 도착한다는 손전화가 왔다. 밥반찬으로 참치전이 먹고 싶다는 말과 함께. 아빠로서 어쩌겠는가. 옛말에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은 자기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으로 들어가는 맛있는 음식을 바라볼 때"라고 하지 않던가.

달셋방을 끼고 있는 재래시장인 사가정시장(서울 중랑구 면목동)으로 나갔다. 늘 가는 마트에서 참치 캔 하나 1850원, 막걸리 2병 2000원, 큰딸이 좋아하는 붕어빵아이스크림 3개 1800원을 주고 샀다. 모두 5650원. 달걀과 대파, 마늘, 양파 등 참치밥전을 만들 때 들어가는 다른 재료는 이미 집 냉장고에 있어 참치밥전을 만들기 위해 든 돈은 고작 1800원이었다.  

내가 지난 2007년 봄에 중랑구 면목동으로 이사를 온 뒤 3번씩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면목동에는 곳곳에 재래시장이 많아 생필품값이 아주 싸다. 여기에 방세마저 큰 부담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생활비가 50% 이상 적게 든다. 내가 벌이가 시원찮아 아등바등하면서도 더 깊은 시름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빻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를 얹고 천일염이나 볶은 소금 약간을 뿌린 뒤 밀가루를 넣어 알갱이가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풀어준다
▲ 참치밥전 빻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를 얹고 천일염이나 볶은 소금 약간을 뿌린 뒤 밀가루를 넣어 알갱이가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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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밥전을 훨씬 더 맛있게 만드는 포인트는 반죽을 한 뒤 30분~1시간쯤 숙성시킨다는 것
▲ 참치밥전 참치밥전을 훨씬 더 맛있게 만드는 포인트는 반죽을 한 뒤 30분~1시간쯤 숙성시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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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케첩에 찍어먹으면 새콤달콤한 맛 깊은 참치밥전

"밑반찬 좀 보낼까? 누가 보면 마누라도 없는 홀아비가 큰딸 밑반찬 만든다고 달셋방에서 궁상떠는 것처럼 보이잖아."
"시장에서 파는 밑반찬은 맛도 깊지 않고 믿을 수도 없잖아. 글구, 나 음식 솜씨 몰라. 명색이 그래도 <오마이뉴스>에 맛 기사를 200여 꼭지나 쓴 사람이야."
"체! 둘이서만 잘 먹고 잘 사는가 보네. 그러면 마누라와 작은딸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창원으로 내려보내던가."
"......"

참치밥전을 만드는 법은 아주 쉽다. 식은 밥이 없다면 밥통 속에 있는 밥을 살짝 퍼내도 된다. 먼저 반죽을 할 만한 그릇에 식은 밥을 넣고 그 위에 캔에 든 참치와 달걀을 푼다. 그 다음으로 빻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를 얹고 천일염이나 볶은 소금 약간을 뿌린 뒤 밀가루를 넣어 알갱이가 뭉치지 않도록 골고루 풀어준다.     

참치밥전을 훨씬 더 맛있게 만드는 포인트는 반죽을 한 뒤 30분~1시간쯤 숙성시킨다는 것. 이렇게 숙성된 반죽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먹기 좋게 한 수저씩 떠서 자글자글 구워내면 끝. 내가 마트에서 막걸리 2병을 산 것도 이 어정쩡한 자투리시간 때문이다. 나는 그 자투리시간에 막걸리 한 잔을 먹으며, 하루를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참치밥전은 금방 프라이팬에서 구워냈을 때가 가장 맛이 좋다. 그렇다고 매일 조금씩 조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내가 큰딸이 오기 하루 앞에 참치밥전을 제법 많이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도 이 때문. 냉동실에 넣어두고 며칠 먹을 참치밥전을 만들 때는 노릇노릇하게 살짝 구워내는 것이 포인트. 그래야 냉동실에 있었던 참치밥전을 녹여 다시 한번 노릇노릇하게 구웠을 때 파삭파삭한 맛이 살아난다.

반죽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먹기 좋게 한 수저씩 떠서 자글자글 구워내면 끝.
▲ 참치밥전 반죽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먹기 좋게 한 수저씩 떠서 자글자글 구워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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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게 파삭거리며 쫄깃하게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감칠맛을 품은 참치밥전. 토마토케첩에 살짝 찍어먹으면 새콤달콤 더욱 깊은 맛이 나는 참치밥전. 세상살이가 참으로 힘들고 고달플 때에는 쌀 한 톨, 식은 밥 한 숟가락,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이라도 '비상식량'처럼 아끼고 또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참치밥전은 요즘 너무 많이 나와 골칫덩어리인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우리들 양식까지 줄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 있으랴. 오늘 저녁, 냉장고 안에 식은 밥이 애물단지처럼 뒹굴고 있다면 서둘러 참치밥전을 만들자. 바삭바삭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참치밥전이 그대 먹을거리에 깃든 시름을 냉큼 내쫓으리라.


태그:#참치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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