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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학작품은 제목만 보아도 느낌이 오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내 사랑, 사북>(이옥수, 사계절), <열일곱 살의 털>(김해원, 사계절),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정유정, 비룡소), <닌자 걸스>(김혜정, 비룡소), <나는 죽지 않겠다>(공선옥, 창비), <완득이>(김려령, 창비) 등과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나는 즐겁다
 나는 즐겁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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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 작품을 더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2011년 첫 달에 출간된<나는 즐겁다>(김이연, 사계절)가 그것이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꿈 많은 청춘의 시기"라고도 한다. 가장 분명한 것은 "밥 두 공기는 먹어야 배가 부른 시기"라는 것이다.(132면) 청소년기는 고민도 많고 그래서 탈도 많은 시기이지만, "밥 두 공기는 먹어야 배가 부"를 만큼 혈기왕성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청소년소설은 이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의 생명력을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청소년소설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개운치 않은 징후가 포착된다. 스탠리 홀이 말한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a period of storm and stress)"라는 특징만을 부각시킨 작품들이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눈에 띈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기도 하며,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그런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다양한 특징들 가운데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측면만을 특권화하다 보면, 다른 다양한 측면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청소년소설에서 임신·낙태·자살 등의 소재를 다루는 것은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소재들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청소년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칫하면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인 것이다.

<나는 즐겁다>의 주인공은 '이란'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다. 그녀의 오빠 '이락'은 게이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대충 어떤 소설일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즐겁다>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겪는 고난과 극복 혹은 좌절이라는 소재주의의 함정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이락'의 남자친구 '정지민'은 '이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이(gay)는 '즐겁다'는 뜻이야. 그리고 나는 그저 그러고 싶을 뿐이야"(82면) 따라서 <나는 즐겁다>라는 제목은 "나는 게이다"로 바꾸어 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즐겁다>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게이(gay)'라는 단어가 가진 '즐겁다'라는 뜻이 오늘날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오늘날 이 땅의 청소년들 가운데 자신 있게 "나는 즐겁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모두는 오늘날 이 땅의 청소년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살고 있다'라기보다는 '살아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졸업식 날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을 할까? 경찰을 배치해서 그러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숨 막히게 억누르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 원인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할 뿐. 혹은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면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포기해버렸을 뿐.

'이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 아주 어릴 때는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딱히 과학자나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무조건 위인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보다 빼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어른들은 늘 말했다. (…)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외모나 공부로는 날 샜다. (…) 중3쯤 되면, 자기 수준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안다. (…) 이미,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은 정해졌다. 여기에서 더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 (…) 시시하다. 내 인생 이제 고작 십육 년 지났는데. 남은 인생, 다 결정된 것만 같다. (…)"(127면)

아무리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원에서 강사들이, 학습지 광고에서 연예인들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해도, 결국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 그런데 아무리 수행평가니 입학사정관제니 해도, 이 땅의 교육제도는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해야 하며,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명문대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하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이란'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 데에는 두 가지의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이란'이 뜻하지 않게 '영양실조'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영양실조'라는 밴드명은 '이란'을 밴드에 데려온 '여유미'가 겪게 될 일을 암시한다)의 보컬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오빠 '이락'의 커밍아웃이다. 이 두 가지의 평범하지 않은 계기들을 통하여 '이란'은 '즐겁게 살기'에 관하여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고민은 실천과 통일됨으로써, 진정한 '앎'이 되고 '삶'이 된다.

게이인 '이락'이 겪는 고난은 가슴 한 쪽이 시려올 만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란'과 그들의 아버지는 '이락'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이락'에게 화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락'이 사회적 차별로 인하여 겪는 부당한 일들을 지켜보며, 성소수자에 관한 두 사람의 인식은 변화하게 된다.

'이란'의 밴드 '영양실조'의 드러머 '계서 아줌마'가 시민단체 상근자라는 설정, '영양실조'의 공식적인 첫 공연이 '레인보우 페스티벌(성소수자 페스티벌)'이라는 설정, '이락'을 인정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나중에는 '청소년 동성애자를 둔 부모를 위한 가이드'를 읽게 된다는 설정, '이락'이 동성애자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모임인 '즐거운 사람들의 집'에 나가게 된다는 설정 등을 통하여 이 소설이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성소수자운동에 관하여 꼼꼼하게 조사 연구했으며, 성소수자인지적 관점에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애썼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주제적 측면 이외에도 이 소설의 장점은 많다. 문장은 짧고 경쾌하여 술술 읽히고,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또한 '이락'을 보는 '이란'과 그들의 아버지의 관점 변화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제각기 개성이 넘치는 '영양실조' 멤버들의 인물 설정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즐겁다>는 즐거운 소설이다. 다루고 있는 소재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에는 시종일관 짜릿한 락(樂) 스피릿이 충만하다. 간간이 터져 나오는 유머는 작품에 재미를 더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란'은 말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오빠는 그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오빠는, 과연 답을 찾았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적어도 오빠가 신나게 살고 있다는 것."(176면)

청소년들은 '무엇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 무엇은 명문대 학생, 돈 잘 버는 사업가, 세계적인 운동선수 등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기'가 아니라 '자신이 되기'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음으로써 '자신이 되기'에 힘쓸 때, 비로소 "신나게 살" 수 있고 "나는 즐겁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나게 살"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나는 즐겁다"라고 말하고 싶은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태그:#나는 즐겁다, #사계절, #김이연, #청소년소설,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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