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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딸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갔더니 녀석 참 좋아하더군요. 아빠가 햇님이 있을 때, 밝을 때 일찍 와서 참 좋다는 얘기를 합니다. 사실 저녁에 일정이 있어 일찍 간 것인데, 녀석이 이렇게 좋아해주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둘째 아이도 데려오고, 아내 퇴근까지 시켜준 후 저는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밤 10시쯤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들 자고 있을까봐 살금살금 들어갔지요. 그런데 문소리가 나더니 딸아이가 '아빠~' 하면서 뛰어와 안겼습니다. 하하, 아빠는 사실 이런 맛에 살지요. 녀석이 품에 안기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딸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훌쩍 댑니다.

어린이집 장난감 '슬쩍'한 딸아이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건희 무슨 일 있었어?"

아내가 제가 떠난 후 있었던 일을 쭉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연인즉슨이랬습니다. 제가 어린이집에서 딸아이를 데려올 때보니 바지 주머니가 약간 볼록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어린이집 장난감이었던 겁니다. 딸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 그게 너무 예쁘고, 좋아서 그냥 바지 주머니에 집으로 가져왔더란 거지요. 그리고는 혼자 방에서 놀다 엄마한테 딱! 걸려서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연을 듣고 딸아이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제 눈을 피하면서 괜히 장난감과 책정리를 하는 겁니다. 뭔가 찔린다는 거지요. 애써 저를 피하며 '밤 10시' 가 넘어 '급작스레 청소'를 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제가 물었지요.

"건희, 오늘 어린이집에서 장난감 가져 왔어요?"

녀석, 대답을 못 하고, 청소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자기 것이 아닌데 함부로 가져오는 건 분명한 "도둑질"이기에 제가 그 설명을 해줬습니다. 매우 차분하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굳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지 않고, 차분하고 명료하게 설명해주면 다 알아 듣습니다) 잠시 후 딸아이가 이내 훌쩍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거지요.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사실 저는 딸아이 장난감을 사줘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5년간 약 2~3회 정도 뿐이었지요. 그 순간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지요. 저 역시 조손가정에서 성장하며 장난감이란 게 없었습니다. 그 흔한 초코파이 맘껏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퍼에서 저도 모르게 과자 한 봉지씩 몰래 가져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어릴적의 아픈 기억, 나도 과자를 훔쳤었다

그러다 한번은 이 일이 들통이 났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께 무지하게 혼이 났습니다. 옛날 교육방식대로 원 없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제 가슴을 때린 가장 큰 것은 할아버지의 한 마디였지요.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정혁이 너 정말 실망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비록 형편은 어려워도 늘 "정직"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저를 교육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주시고, 아껴주신 할아버지를 실망시킨 것에 무한한 죄책감을 느꼈더랬습니다. 겨우 7~8세의 나이였지만 너무 죄송했습니다. 몸도 아프고, 맘도 아팠습니다.

건희를 불러 꼭 안아 주었습니다. 제가 과자를 먹고 싶어했던 것처럼 녀석도 장난감이 그저 예뻤을 뿐이었겠지요. 또 제가 할아버지께 죄송함을 느꼈던 것처럼 녀석은 아빠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사실 상황을 정리해보면 건희는 이게 도둑질인 걸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황 파악을 하고 나니 아빠 엄마에게 미안했던 것이었겠지요. 이 녀석, 제 품에 안겨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스스로 깨달아 알아 준 것도 고맙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약속해 준 것도, 제 품에 안겨 솔직한 고백을 해준 것도 고마웠습니다. 또 미안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변변한 장난감 한번 못 사준 것도, 또 남들보다 약간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도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다짐하고,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처럼 모든 교육을 대화로, 차분하게 진행할 것을. 가정교육은 물질이 아닌 아빠엄마와의 신뢰에서 비롯됨을. 가난의 아픔을 알지만 사랑과 행복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그리하여 아파하며 눈물 흘리는 이웃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겠다 말이지요. 아, 아이를 양육한다는 건 정말이지 아프면서도 고귀한 일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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