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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지난 1월 6일부터 크레인을 점거하고 시위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세시봉'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노래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말을 읽은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은 "세시봉과 한진 크레인 위의 김진숙"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문화에도 계급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에도 계급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근대 이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문화'가 '문화상품'이 되고 대중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더 이상 문화에서 계급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이를테면 근대 이전에 거의 모든 민초들은 죽을 때까지 종묘제례악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무산계급도 자산계급이 선호하는 음악으로 알려진 고전음악이나 중간계급이 선호하는 음악으로 알려진 재즈를 얼마든지 즐겨 들을 수 있다. 거꾸로 자산계급이나 중간계급도 록을 듣거나 트로트를 듣기도 한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문화'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문화상품' 구매능력은 계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벤야민 식으로 말하자면 '기술복제시대'에는 계급에 따른 문화적 차이가 많이 희미해졌지만, 무산계급이 라디오를 통해 듣는 고전음악에서는 자산계급이 오페라 공연장에서 듣는 고전음악의 '아우라'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상품' 구매능력의 차이가 곧 계급에 따른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문화적 취향에 따른 '아비투스'(육체에 각인된 기질이나 체화된 성향 혹은 체질을 의미)는 상부구조가 반드시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님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문화에도 계급이 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계급에도 문화가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한국의 무산계급은 무산계급문화를 형성해내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한국에서 무산계급을 튼튼히 구축하는 데 실패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투쟁가나 노동문학이 무산계급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과연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들이 진정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거기에 젖어들게 했다면, 아무리 운동이 처참하게 깨져도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은 계속 투쟁가를 부르고 노동문학을 읽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그렇게 쉽게 운동을 저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쟁가나 노동문학은 '문화'로 존재했다기보다는 '도구'로 존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산계급을 더욱 피 끓는 분노로 몰아넣어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 나가게 만드는 '도구'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철이 되자고 외쳐 봐야 인간은 강철이 아니라 피가 흐르는 인간인지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파도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저 '도구'가 아닌 '문화'로서 향유되려면, 그것을 일상세계에서도 즐길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과연 어떠했나. 우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불렀던 투쟁가는, 그리고 우리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읽었던 노동문학은, 과연 일상세계의 일부로 즐거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었나.

<철의 노동자>를 부르는 가수가 <내가 만일>을 불러야 했고, 노동문학을 하는 시인이 연애시를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이미 운동의 열기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 후에, 그것도 아니면 아예 운동을 떠나버린 뒤에야 가능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린 지금, 잔치는 끝나서 술 떨어지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난 지금, 여전히 미망에 빠져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아니면 철저히 상업주의로 무장한 대중문화의 융단폭격에 그저 속수무책인가.

세시봉의 '낭만'을 즐기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노찾사와 꽃다지의 '정의'로 뛰어들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낭만'과 '정의'는 불가분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낭만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로울 수 있었고, 정의로웠기 때문에 낭만적일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군인들이 정치를 하며 머리와 치마를 단속하고 문학과 음악을 금지하니, '낭만'이 '정의'로 전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90년대 이후로는 역으로 '정의'가 사라지면서 '순수'까지 사라진 형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의 시민들이 기억하는 추억이 노찾사와 꽃다지가 아니라 세시봉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텔레비전에서 세시봉 공연을 지켜보며 미국 노래 위주의 선곡과 기독교적 색채가 두드러지는 노래들의 선곡이 거슬리기는 했다. 그러나 일상세계에서 문득 떠올리거나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은 노찾사와 꽃다지보다는 세시봉에 가깝다.

예전에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를 높이 평가하는 글을 쓰면서, 군가풍 일색인 민중가요의 현실을 우려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과문한 탓인지 민중가요로부터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사람이었네>에 관한 글을 쓴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민중의례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모순된 주장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지만, 나는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한 것, 급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것은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주장하던 '유물변증법'적 사고가 아닌가. 왜 우리는 늘 '유물변증법'적 사고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는가.

'낭만'과 '정의'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듯, 세시봉과 노찾사/꽃다지도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세시봉과 노찾사/꽃다지를 모두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세시봉의 노래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진숙 지도위원은 식음을 전폐하고 트위터를 멈추더니, 결국 트위터에서 탈퇴했다. 그녀의 투쟁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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